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2일 “가상화폐 거래소가 (국내에)200개가 있지만 다 폐쇄될 수 있다. 9월 달 돼 갑자기 폐쇄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은 위원장은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 답변에서 “특정금융정보법 시행으로 가상화폐 거래소 등록을 받고 있는데 현재까지 등록한 업체는 없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은 위원장의 발언은 강제 폐쇄를 언급한 것은 아니다. 가상화폐 거래소에 실명 계좌 이용을 의무화한 특정금융정보법이 오는 9월부터 적용되면 이에 따라 등록을 하지 않는 가상화폐 거래소는 영업이 중단된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광풍이라고 할 정도로 과열된 가상화폐 투자와 최대 200개로 추산되는 국내 거래소 난립에 대해 폐쇄라는 단어까지 사용하면서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최근 가상화폐 시장은 상장 첫날 30분만에 10만%나 폭등하는 가상화폐가 등장하면서 과열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투자자의 절반 이상이 2030 세대들이 주도하고 있어 사회 문제로까지 번질 조짐을 보인다. 은 위원장은 이날 “가상화폐 투자자 보호가 미흡하다”는 질의에 대해 “금융 투자자로 전제가 되야 (정부의) 보호 의무가 있다”며 “정부가 모든 것을 다 보호해줄 수는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가상화폐를 규제 대상인 금융상품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은 위원장은 “가상화폐 분야를 공식화하고 제도화하면 투기 열풍이 더 불까봐 고민이 된다”고 했다.

코인 상장때 심사 허술… ‘벌집 계좌’로 거래내역도 불투명

최대 200개까지 추산되는 국내 가상 화폐 거래소는 하루 거래 규모가 30조원에 육박하지만 관리·감독의 사각지대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2일 국회에서 “(국내) 거래소가 다 폐쇄될 수 있다”라고 경고한 것은 거래소들이 난립하면서 거래 내역 공개 등이 투명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거래소들은 9월 24일까지 실명 거래 조건을 갖춰 금융위원회에 신고를 마쳐야 한다. 만약 신고를 하지 못하게 되면 극단적인 경우 실명 계좌 거래를 하는 기존 4대 거래소(업비트·빗썸·코빗·코인원) 외에 나머지 100개 이상 거래소 전부가 문을 닫을 수 있다.

◇거래량 부풀려 투자 부추겨

국내 한 가상 화폐 거래소는 가상 화폐 거래량을 허위로 입력해 고객들의 투자를 부추겼다가 적발됐다. 2018년 1월 이 거래소 대표 A씨 등 간부 4명은 거래량이 많은 것처럼 보이려 차명 계정을 만들고 허위로 가상 화폐와 원화 잔고를 입력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작년 8월 “허위 정보로 회원들이 가상 화폐에 투자하게 만들었다”며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봤다.

/로이터 연합뉴스

일부 거래소에서는 임원들 명의로 계좌를 만들어 가상 화폐를 사고파는 ‘자전(自轉) 거래’를 하는 방법으로 거래량을 부풀리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소 운영이 투명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경우들을 적발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미국의 경우도 지난 2019년 3월 가상 화폐 투자사 비트와이즈가 미국 연방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가상 화폐 거래소 81곳 중 71곳은 비트코인 거래가 사실상 한 사람이 동시에 사고파는 자전거래를 통해 거래가 활발한 것처럼 위장한 ‘워시트레이딩(Wash Trading)’을 하고 있다. 정제용 울산대 교수는 “한국은 미국보다 이런 일이 더 많이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구체적인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거래소별로 가상 화폐를 상장시키는 기준이 다른 데다 투명하게 공개돼있지 않은 것도 문제다. 2018년 4월엔 한 거래소 대표 B씨가 특정 기업이 발행하는 가상 화폐를 상장해주는 대가로 6700만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받은 것이 검찰에 적발됐다. 이 거래소는 한때 국내 거래 규모 4위에 달하는 가상 화폐 거래소였지만, 이 같은 범행이 드러난 뒤 2019년 4월 거래가 중단됐다.

◇내부 정보 이용해도 처벌 근거 모호

가상 화폐 업계에선 호재가 될 만한 공시나 가격이 급등할 수 있는 정보가 알려지기 전에 거래소나 대형 투자자들이 이런 내부 정보를 공유하고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금융권 가상 화폐 담당자는 “최근 한 가상 화폐 업체 대표에게 코인을 추천받았는데 2~3일 뒤부터 그 코인이 급등하기 시작해 6배 오르더라”고 했다.

이 같은 내부 정보 이용 투자의 경우 회사 임직원이 내부 정보로 부당 이득을 취득하더라도 처벌이 쉽지 않다. 금융위 측은 “가상 화폐는 금융 자산이 아니기 때문에 금융 관련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하지만, 경찰 측은 “사기는 일단 타인의 재물을 편취해야 하는데 가상 화폐의 경우 입증이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9월까지 신고 못 하면 퇴출

4대 거래소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거래소의 경우 투자자 실명 계좌를 이용하지 않고 있다. 대신 거래소에서 개설한 하나의 은행 계좌에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무통장 입금하는 ‘벌집 계좌’ 방식으로 운영된다. 금융 당국이나 은행으로서는 투자자들이 입금을 한 내역까지 확인할 수 있지만, 그 이후 단계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실명 계좌 이용을 요구하는 것이다.

금융위는 은행들이 거래소의 건전성을 자체적으로 판단해 계좌 연결 여부를 결정하게 했다. 은행들은 자칫 부실 거래소와 투자자 실명 계좌 거래를 맺었다가 사후에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부담감에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그 결과 지난달 25일부터 신고를 받기 시작했지만 금융위에 접수된 신고 건수가 없다. 가상 화폐 거래소가 9월까지 금융위에 신고하지 못하면 퇴출된다.

그러나 일각에선 은 위원장의 발언이 시장에 겁을 주려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신고 기한까지 아직 5개월이나 남았고 실제 신고를 준비 중인 거래소들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