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미국 뉴욕시의 나스닥 본사 외벽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 나스닥 ETF’가 국내 증시에 상장된 것을 축하하는 문구가 등장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제공

최근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블랙록과 맥쿼리가 국내 공모펀드 시장에서 철수하자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ETF(상장지수펀드) 때문”이란 해석이 나왔다. 최근 몇 년간 급성장한 ETF가 주식형 펀드를 대체하면서 펀드 운용으로 먹고사는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의 입지가 좁아졌다는 것이다.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2010년 6조447억원이었던 국내 ETF 순자산은 20일 현재 58조5549억원까지 불어나며 60조원 돌파를 앞두고 있다. 지금 상장돼 있는 ETF는 대부분 특정 지수를 추종하도록 만든 패시브형이지만, 앞으로 운용사들이 자율적인 운용을 통해 초과 수익을 노리는 액티브 ETF가 출시되면 ETF 시장이 더 성장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자동차, 반도체 ETF 준수한 수익률

ETF(Exchange Traded Fund)는 말 그대로 펀드를 거래소에 상장시켜 투자자들이 주식처럼 편리하게 거래할 수 있게 한 상품이다. 사고팔기가 쉽고, 소액으로도 우량주에 분산 투자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수수료도 기존 펀드보다 낮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선호하는데, 이는 결국 자산운용사 입장에서는 수수료(운용보수) 수익 감소로 이어진다.

지난해부터 ETF들은 주가 상승에 힘입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삼성자산운용에 따르면 KODEX 자동차 ETF의 경우 최근 1년 동안 120.69%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 69.66%의 2배 가까운 수익률을 기록한 것이다. 미국 빅테크 기업에 투자하는 ETF의 수익률도 좋았다. 엔비디아·애플·알파벳(구글) 등 미국 대표 기술주 10종목에 투자하는 ‘KODEX 미국 FANG 플러스’의 최근 1년 수익률 역시 98.72%로 높은 수준이었다.

투자 대상별 ETF 수익률

삼성전자·SK하이닉스, 대만 TSMC 등에 투자하는 기존 반도체 ETF 등의 수익률도 좋은 편이었다. 수익률은 KODEX 한국대만 IT 프리미어(80.39%), KODEX 반도체(76.75%), KODEX MSCI Korea TR(70.91%) 순이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내놓은 ‘TIGER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 나스닥 ETF’는 지난 9일 상장 이후 7거래일 만인 지난 19일 순자산 1000억원을 넘어섰다.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를 추종하면서 엔비디아, 인텔 등 해외 반도체 기업에 투자하는 ETF다.

◇액티브 ETF 출시되면 시장 더 커질 듯

금융위원회가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수를 거의 그대로 추종하는 패시브 ETF의 평균 수수료율은 지난 2월 기준 0.165%였다. 비슷한 형태로 지수를 추종하는 주식형 인덱스 펀드의 평균 수수료율 0.512%에 비해 낮은 편이었다. 금융위는 “ETF는 투자자가 증권시장에서 직접 거래하는 반면, 인덱스 펀드는 투자중개업자(증권사 등)를 통해 판매되기 때문에 판매 비용의 차이가 전체 수수료율 차이가 발생하는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고 했다.

실제로 주식형 인덱스 펀드는 판매 수수료율이 0.248%인 반면 ETF의 판매 수수료율(지정 참가 회사 보수)은 0.008%로 극히 낮다. 실제로 KB자산운용이 지난 9일 출시한 KB STAR 미국S&P500 ETF(S&P500지수 추종)의 경우 전체 수수료율이 0.021%로 같은 지수를 추종하는 상품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액티브 ETF가 출시되면 ETF 중심으로 펀드 시장이 재편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수를 그대로 추종하기보다는 자율적인 운용으로 초과 수익을 노리는 액티브 ETF는 2008년 미국에서 출시됐다. 혁신 기업에 투자하는 ‘아크 인베스트'의 ETF들이 대표적인 액티브 ETF다. 지난해 9월 기준 전 세계 ETF 자산 중 3.4% 정도를 액티브 ETF가 차지했다. 반면 국내에선 작년 7월 액티브 ETF가 허용돼 주식형 액티브 ETF는 아직 국내에 3개밖에 없다. 금정섭 KB자산운용 ETF전략실장은 “최근 목돈 마련과 노후 자금 확보를 위해 ETF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주식형 액티브 ETF가 활성화되면 ETF가 더 많은 투자 수요를 흡수할 수 있어 ETF 시장의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