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보유 비율 목표치를 재조정하면서 올 초부터 순매도를 이어온 국민연금의 매도세가 진정될 전망이다. 국민연금은 9일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전체 자산 중 국내 주식 비율을 현행 기준보다 높이기로 결정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9일 국내 주식에 대한 투자 비율 상한선을 기존 18.8%에서 19.8%로 1%포인트 높이기로 결정했다. 왼쪽 사진은 이날 회의 석상에 착석한 김용진(오른쪽) 국민연금 이사장 뒤편으로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기금운용위원장)이 걸어가는 모습. 회의장 밖에선 개인 투자자들 모임인 한국주식투자연합회 회원들이 국민연금의 최근 주식 대량 매도로 주가 상승세가 꺾였다며 규탄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현재는 전략적 자산 배분을 고려한 국내 주식 비율 허용 범위가 목표치(16.8%)의 ±2%인데 ±3%로 1%포인트 확대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국민연금의 전략적 자산 배분 국내 주식 허용 한도는 14.8~18.8%에서 15.8~19.8%로 바뀌게 된다. 3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율은 19.1%로 추정되므로, 허용 범위 내에 들어가게 된다. 기금운영위원회 위원장인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4개월 연속 허용 범위 이탈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시장 대응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16조 순매도 행진 멈추게 된다

국내 증시에서 855조원을 굴리는 큰손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율은 1월 말 기준 21%로, 올해 말 목표치(16.8%)를 크게 웃돌고 있다. 코스피가 3000을 돌파하면서 주가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국내 주식 보유 비율이 정해져 있는 국민연금 등 연기금은 올 들어 16조4800억원이 넘는 순매도를 기록했다. 연기금 내에서 국민연금의 비율이 큰 만큼, 대부분의 순매도 금액은 국민연금 몫이었을 것으로 해석된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은 작년 12월 24일부터 지난달 12일까지 연속 51거래일간 코스피 시장에서 순매도 행진을 이어갔고, 3월 15일과 16일에 순매수로 돌아섰다가 다시 17일부터 지금까지 18거래일째 매도 우위를 지속했다.

개인 투자자들은 ‘연금이 주가 상승의 발목을 잡는다’면서 비난했고, 국민연금은 여론에 밀려 2011년 이후 바뀌지 않았던 국내 주식 목표 비율 허용 한도를 10년 만에 처음으로 조정했다.

이번 기금위 결정의 핵심은 국내 주식투자 비율 목표치(16.8%)는 건드리지 않는 대신, 전략적 자산 배분(SAA) 허용 범위(±2%→±3%)를 조정한 것이다. 전술적 자산 배분 한도는 현행 ±3%에서 ±2%로 조정 축소해 국내 주식의 총 허용 범위는 ±5%가 유지됐다.

원칙적으로 국민연금은 목표치의 ±5%까지 자산 보유가 가능하다. 하지만 전략적 자산 배분 허용 범위(±2%)를 넘기게 되면 기금위에 보고해야 하는 등 제약이 많아서 실무선에서는 ±2%를 기준으로 주식 비율을 조절한다.

◇4개월 연속 허용 범위 이탈

국민연금은 기금 운용 지침에 따라 전체 자산에서 국내 주식 비율을 올해 말 16.8%로 맞춰야 한다. 지난 1월 말 전체 적립금 855조원 중 국내 주식은 180조원으로 21%에 달한다.

여전히 목표치 대비 높은 수치이므로 2~3월에도 국민연금은 주식을 연일 팔았다. 이에 지난 3월 말에는 국내 주식 비율이 19.1%까지 낮아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원래 지침대로라면 18.8%까지 낮춰야 해서 2조6000억원가량 추가로 더 처분해야 하지만, 기금위의 투자 비율 상한 확대 결정으로 더 이상 팔지 않아도 된다.

반면 기금위의 이번 결정이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자산 비율을 줄여나가겠다는 대원칙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작년 말 기준 국내 주식 투자 상한은 19.3%(17.3%+2%)였는데, 이번 결정으로 올해 말 목표치는 19.8%(16.8%+3%)까지 늘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김용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최근 “기금 규모가 갈수록 커지기 때문에 국내 주식 보유는 축소가 해답”이라고 입장을 밝혔었다.

◇동학 개미 요구에 이례적인 기준 변경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달 26일 국내 주식 매도 압력을 낮추기 위한 안건을 논의했지만 4.7 재보궐 선거를 의식해 결론을 내지 못했다. 선거가 끝난 뒤 열린 이날 회의는 리밸런싱(목표 비율 조정)에 대해서만 논의하는 ‘원포인트 회의’였다. 기금위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국민연금의 줄매도에 대해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기계적인 행동’이라며 비판해 온 개인 투자자들은 기금위의 이번 결정에 안도하는 분위기다. 코스피가 더 오를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대량 순매도가 잠잠해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연금 지급 등을 위해 국민연금이 보유 주식을 처분해야 하는 시점이 되면 국내 증시에 큰 충격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은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