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사회주의라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국민연금을 별도 독립기구로 분리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연금을 운용하는 기금운용위원회라도 독립성을 갖도록 해서 정부 입김이 반영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가 4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서스틴베스트 본사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의결권 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의 류영재 대표는 지난 4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기업들의 지배 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국민연금 스스로가 지배 구조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했다. 국민연금은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후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고 있다. 2019년엔 조양호 당시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 이사로 선임되는 데 반대표를 던졌다. 이에 대해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 경영에 간섭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류 대표는 ‘기금운용위 독립'을 해결책으로 내세웠다.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는 국민연금에서 투자 의사 결정을 맡는 기금운용위는 20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고, 관계 부처 차관급 인사 5명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구조다. 정부 입장이 의사 결정 과정에 핵심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환경(Environment)과 사회적 책임(Social), 기업 지배 구조(Government) 등 ESG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취임으로 ESG는 글로벌 투자 업계의 화두가 됐다. 국민연금도 지난해부터 ESG를 투자 의사 결정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

류 대표는 “ESG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법과 제도를 모두 반영하는 근본적인 변화”라며 “국민연금 지배 구조가 제대로 갖춰져야 국내에서 ESG가 안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ESG 정책은 정부 규제보단 시장 원리로 접근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ESG를 중시하겠다는 국민연금부터 정부 간섭에서 자유로운 독립적인 지배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국내 ESG 정책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정부가 내놓은 ESG 정책은 2030년까지 모든 코스피 상장 기업들에 ESG 공시를 하도록 한 것”이라며 “ESG 공시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고, 선진국은 물론 아시아의 말레이시아와 인도도 도입한 제도인데 10년 뒤에 하겠다는 것은 너무나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류 대표는 1983년 메리츠종금증권에 입사해 10여 년간 증권사에서 일한 뒤 2000년대 초반 유럽에서 유학할 때 ESG 경영이 확산되는 모습을 보고 2006년 서스틴베스트를 설립했다. 그는 “장부상 자산 가치를 중시하는 기존 회계 기준으로 평가하면 미국의 아마존보다 월마트의 기업 가치가 더 높다”며 “그런데 지금 월마트 시가총액은 400조원으로 아마존(1700조원)과 비교가 안 될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ESG는 기존 회계 장부로는 산정할 수 없는 부분까지 기업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유용한 기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국내 1호 ESG 펀드로 불리는 장하성펀드(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에 대해서는 오히려 “ESG를 왜곡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ESG의 지배 구조(G)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주주를 비롯한 모든 이해 관계자들의 이익을 확대하자는 것”이라며 “장하성펀드는 단기적인 주가 부양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결국 미래 주주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구조”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