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은 장기 투자자 아닌가요? 왜 자꾸 팔아치워서 코스피 발목을 잡는 건가요?”
설 명절을 하루 앞둔 10일 오후 3시 30분, 개인 투자자들은 장 마감 후 연기금의 순매도 금액을 확인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날 하루 종일 700억~800억원 수준의 순매도 규모를 유지하던 연기금이 장 막판에 무더기로 주식을 내던지면서 최종 순매도 금액이 3200억원으로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연기금의 매도 폭격에 대장주인 삼성전자도 흔들렸다. 이날 삼성전자는 오후 3시 19분만 해도 주당 8만2300원에서 거래됐지만 종가는 8만1600원으로 주저앉았다.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기금은 지난해 12월 24일 이후 이날까지 32일 연속 국내 주식을 순매도하고 있다. 역대 최장 순매도 기록이다. 이 기간 중 연기금의 순매도액은 10조8100억원이 넘는다.
과거 연기금의 연속 순매도 기록은 2009년(8월 3일~9월 9일)의 28일이었다. 순매도 금액은 2조6323억원이었다.
서울 증시의 투자자 분류 체계상 연기금은 연금, 기금, 공제회 등이다. 구체적으로는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공제회, 행정공제회, 우정사업본부 등이 있다.
국민연금이 주축이 된 연기금은 자산 배분 재조정 차원에서 국내 주식을 팔고 있다.
지난해 국민연금은 해외 주식 비중을 높이는 대신 국내 주식 비중을 2025년까지 15% 내외로 축소하는 내용을 담은 중기 자산 배분 계획을 발표했었다. 2021년 말 목표 국내 주식 비중은 16.8%다.
그런데 작년 11월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 운용 기금의 국내 주식 보유 비중은 19.6%나 됐다. 작년 12월 말부터 한국 증시가 급등했기 때문에 국내 주식 비중과 목표치의 괴리는 더욱 커졌을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연기금의 국내 주식 매도 랠리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노동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민연금의 중기 자산 배분안을 고려할 때 국내 주식 비중은 2025년 말까지 15% 내외로 단계적으로 하락할 예정”이라며 “현 코스피 수준이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 단순 계산하면 연말까지 가능한 연기금 순매도 규모는 30조원”이라고 분석했다.
노 연구원은 이어 “연기금의 올해 하루 평균 코스피 순매도 속도를 고려하면 6월 초에는 목표 비중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며 “순매도 속도는 6월 전에는 둔화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전망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현 정부가 연금 개혁을 시도조차 하지 않아 향후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국민연금도 언젠가는 자산을 팔아서 연금을 줘야 하니까 지금 (국내 주식 비중을) 조금씩 줄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