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3월 서울 삼성동에 있는 한 은행 지점에서 투자 상담을 하던 기업인 A씨는 귀가 솔깃해졌다. 정기예금 금리가 2%대밖에 안 되는데 은행 직원이 4%대의 펀드를 추천해준 것이다. 그 전까지 회삿돈을 정기예금 등 원리금 보장이 되는 상품에 주로 가입했던 A씨에게, 이 은행 직원은 “원금 보장이 되고, 연 4.4% 확정 금리를 지급한다”고 안내했다.

국내 금융사들은 2015년부터 점포 운영 비용을 줄이고, 소비자들의 금융상품 선택권을 넓히자는 취지로 은행과 증권, 보험 등이 결합된 복합점포를 늘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 사모펀드 사고가 잇따라 터지자 은행과 증권사가 서로 판매 책임을 떠넘기는 등 소비자 보호는 뒷전이라는 지적이다.


A씨가 고심 끝에 투자하기로 결정하자 약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투자 계약서를 들고 찾아온 사람은 아까 그 은행 직원이 아니라 이 은행 계열의 증권사 직원이었던 것이다. A씨는 “그래도 같은 계열사니까 별일 없겠지”라 생각하고 30억원을 투자했다.

그런데 A씨의 걱정이 2년 뒤 현실이 됐다. 이 펀드에서 사고가 나서 이자는 물론 원금까지 돌려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A씨가 은행을 찾아가자 은행 직원은 “증권사 책임”이라고 했고, 증권사는 반대로 “은행에 찾아가보라”며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 A씨가 은행과 증권사에 각각 피해 보상을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우린 다른 회사라 책임이 없다”는 말뿐이었다.

작년부터 사모펀드 사고가 연이어 터지자 이 펀드가 주로 판매된 복합점포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복합점포는 금융 계열사 간 시너지를 극대화하자는 취지로 도입된 지점들이다. 30일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감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국내 은행권의 복합점포는 216개에 달한다. 2015년 88개에 불과했던 복합점포가 5년 만에 2.5배나 늘어난 것이다.

복합점포는 2003년 금융지주사 제도가 도입되면서 법적 근거가 마련됐는데 급증하기 시작한 것은 2015년 이후다. 그 전까진 업권 간 물리적 공간이 분리돼야 하는 등 규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2014년 10월 복합점포 관련 규제가 풀리면서 복합점포들이 우후죽순 늘어났다. KB금융은 2015년 14개였던 복합점포가 현재 81개로, 하나금융도 같은 기간 18개에서 38개로 늘었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도 현재 18개의 복합점포를 운영 중이다.

그러나 문제는 고객을 유치할 땐 같은 지점에 있는 은행과 증권사가 긴밀히 협조하지만, 문제가 생겼을 땐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은행 직원이 상품을 잘못 안내한 뒤 증권사 상품을 가입했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는 것이다.

실제로 A씨는 증권사 측에 “은행이 펀드 피해자들에게 투자 원금의 50%를 선지급한 것처럼 일부 원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 증권사는 “은행의 판매 프로세스는 당사와는 무관하다”는 공문을 보냈다. 특히 은행이 “원금 보장과 확정 금리를 제공하겠다”고 표기한 제안서에 대해 증권사 측은 “몰랐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A씨와 은행 직원이 통화한 녹취록에 따르면, 이 제안서는 은행 직원이 같은 복합점포에 있는 증권사 임원으로부터 전달받아 제공된 것이었다.

다른 은행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금감원에 따르면, 한 장학재단이 2018년 11월 11억원 규모 정기 예금 만기가 도래하는 시점에 B은행 직원은 같은 지점에 있는 계열 증권사 직원을 소개했다. 이 증권사 직원은 이 장학재단에 라임의 무역금융펀드를 판매했다. 당시 이 펀드는 부실률이 76%에 달한 상태였다. 금감원 조사 결과 당시 판매 과정에서 은행 지점장은 “원금 손실이 발생하면 변상을 약속한다”는 손실 보전 각서까지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은행 직원이 고객을 복합점포의 증권사 직원에게 소개해 상품 가입을 유도하면 KPI(핵심성과지표)에서 가산점을 받는다는 것 역시 위험상품 판매를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은행과 증권사가 서로 책임을 회피하자 결국 계열사를 총괄하는 금융지주사가 책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감원은 지난 10월 라임펀드를 판매한 은행을 검사한 뒤 모회사인 지주회사에도 검사 의견서를 보냈다.지주사가 복합점포의 은행과 증권사에 권한과 책임을 명확하게 하지 않아 사고를 키운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23일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지주회사 제재에 대해 “내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이번 사모펀드 사고로 복합점포 확산세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오프라인 은행 창구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비용 효율성 측면에서 복합점포가 유리한 면이 있다”며 “고객 입장에서도 다양한 상품을 소개받을 수 있기 때문에 복합점포 확산을 막기보단 이번에 드러난 문제들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