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뉴딜' 전략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뉴시스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정관계 인사 로비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라임 펀드와 옵티머스 펀드 같은 펀드 사기 사건은 왜 계속 발생할까?

금융업계의 규율 유지와 공정한 관리 감독에 주력해야 할 정부가 직접 민간 금융회사의 ‘펀드매니저’처럼 정책 펀드를 만들고 홍보에 나서면서 민간 펀드업계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와 비교하면 한국 금융투자업계는 무엇이 문제일까?

이 의문들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월스트리트맨’ 출신의 권경혁 써미트투자자문 대표(61)를 만났다. 권 대표는 지금은 BoA(뱅크오브아메리카)와 합병된 유명 투자은행 메릴린치의 뉴욕 본사에서 18년간 근무했다. 이후 삼성증권 전무를 거쳐 2011년부터 써미트투자자문 대표로 일하고 있다.

그는 “라임 사태와 옵티머스 사태는 한국 금융투자업계에 만연해 있는 모럴 해저드를 금융감독 당국이 엄격히 관리하지 못해 생긴 현상”이라고 비판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이 ‘펀드매니저’로 활동하는 점에 대해서는 “월가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16일 오후 3시 30분 서울 서초동 양재역 근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늦가을에 잎이 떨어져 가지가 앙상한 가로수가 창 밖으로 보였다.

미국 투자은행 메릴린치 뉴욕 본사에서 18년간 일했던 권경혁 써미트투자자문 대표./김기훈 기자
권경혁 써미트투자자문 대표

메릴린치에서 잔뼈가 굵은 월스트리트맨

―미국에서 어떤 일을 했나?

“1977년 고교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미시간주 GM 본사 전략기획실에서 3년간 근무하다가 후계 경영진을 양성하는 GM 펠로우십 프로그램에 합격해 시카고대학 경영대학원을 다녔다(1987~1989년). 졸업 후 GM에 돌아가지 않고 투자은행인 메릴린치 뉴욕 본사에서 1989년부터 2007년 12월까지 18년을 근무했다.”

―메릴린치는 세계적인 투자은행인데, 거기서 한 일은?

“채권 운용부터 시작해 나중에 그만둘 때는 리스크 매니지먼트(투자자산 위험 관리) 그룹의 COO(최고운영책임자)를 지냈다. 내 밑에 직원이 550명이었다.”

뱅크오브아메리카가 인수한 투자은행 메릴린치의 뉴욕 맨해튼 본사 건물./위키피디아

―한국에 오게 된 계기는?

“삼성그룹에서 금융 부문의 삼성전자를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그 계획의 하나로 삼성증권의 제안을 받았다. 2008년 1월부터 삼성증권 전무로 일하다가 2011년에 써미트투자자문을 인수해 대표로 일하고 있다.”

―투자자문사 대표로 그동안 어떤 일을 했나?

“처음 5년간 한국 고객들의 돈을 받아 한국 주식에 투자했다. 그러다가 2016년에 고객에게 돈을 다 돌려주고 한국 주식에서 완전히 손을 땠다. 이후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바이오 주식을 한국 투자자들에게 조언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한국 주식 시장을 포기한 이유

―한국 주식을 포기하고 미국 주식을 선택한 이유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한국 여의도와 미국 월스트리트의 금융 투자 문화가 하늘과 땅 차이만큼 달랐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의 마인드(정신 자세)가 전혀 달랐다.”

―어떻게 달랐나?

"미국 투자자들은 대부분 장기 투자를 한다. 그러나 한국 투자자들은 너무 단기 투자에 연연했다. 여의도 주식시장에서는 주가가 회사 가치에 따라 움직이기보다는 작전 세력들에 의해 좌우됐다. (투자자에게 공개되지 않은) 기업 내부자 정보에 의존한 거래가 만연했다.

또 시장의 유동성(자금) 규모가 너무 작아서 돈이 이리저리 움직이는데 따라서 주가 변동이 너무 컸다. 변동성이 크면 주가 예측이 어렵다. 나는 장기 투자 전략을 썼기 때문에 단기 투자로 수익을 내기가 어려웠다.

한국의 투자 문화는 월스트리트와 차이가 컸다. 여의도 문화는 내가 추구하는 금융투자의 가치관과는 거리가 멀었다. 기업 분석보다 내부자 정보를 캐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는 것이 정상인가? 그래서 철수했다. 투자자들에게 돈을 돌려주고 끝냈다."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미국 뉴욕증권거래소./UPI 연합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국의 증권거래 중심지 한국거래소./연합뉴스

―투자자들에게 돈을 돌려줄 때는 어느 정도 수익이 난 상태였나? 아니면 원금 손실이 발생한 상태였나?

“2016년 상반기에 써미트투자자문은 전년말 대비 약 20%의 이익을 낸 상태였다. 여의도 투자자문업계에서 최상위권에 속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코스피지수는 소폭 마이너스였다. 수익률이 좋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연말 만기 이전에 계약을 끝냈는데도 민원을 제기하지 않았다. 자문료도 모두 받았다.”

―자문료라면?

"매년 고객 위탁금의 1%를 기본 보수(수수료)로 뗀다. 그리고 투자 수익이 나면 그 투자 수익의 15%를 성과 보수로 자문사가 추가로 갖는다. 기본 수수료는 매년 초에 먼저 받을 수도 있고, 나중에 연말에 정산하면서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떤 고객들은 손실이 나면, 계약에 따라 의무적으로 줘야 하는 기본 수수료도 안주려고 한다. 그래서 성과가 나쁘면 계약 만기 이전에 돈을 돌려 주기도 쉽지 않다. 다행히 나는 성과가 좋을 때 돈을 돌려주고 한국 주식에서 손을 뗐다. 성과가 나쁠 때 손을 떼려고 했다면 민원도 생기고 수수료도 받지 못했을 수 있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했나?

“한국 주식에서 손을 떼고 미국 바이오 주식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 주식에 투자하면서 느낀 한국 금융투자업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한국 금융시장에서는 거래와 관련된 중요 정보가 개인 네트워크를 통해서 전달되고 있었다. 나는 미국에서 생활해 한국 네트워크가 부족했다. 그래서 한계를 느꼈다.”

라임과 옵티머스 사태

라임과 옵티머스 펀드가 정관계에 로비를 한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이것도 일종의 비공개 내부자 정보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투자 수익을 늘리려 한 행위이다. 권 대표의 월스트리트 경험과 비교해 보기로 했다.

금융감시센터 회원들이 지난 10월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본원 입구에서 '라임, 옵티머스 사태 관련 불법 행위자 중징계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시스

―미국에서도 라임과 옵티머스 같은 사태가 자주 일어나나?

“미국에서도 이러한 펀드 사기 사건이 일어나기는 한다. 그러나 한국보다 훨씬 드물다. 또 미국의 경우 정관계와 연관된 금융 사건은 별로 기억이 안난다. 반면 한국은 수시로 정치권이나 정부와 관련된 금융 사고가 터진다.”

―미국에서도 금융업자들이 워싱턴에 로비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금융협회 차원에서 워싱턴에 로비스트로 등록하고 투명하게 로비를 한다. 그러나 정책을 바꾸기 위한 로비이지 개별 금융회사나 개별 펀드의 이익을 노리는 로비는 아니다. 금융 산업뿐 아니라 모든 산업들이 그렇게 워싱턴 로비를 한다.

이 로비 절차는 매우 투명하다. 예컨대 협회가 정치인들에게 하는 정치 헌금의 규모도 한도가 정해져 있다."

―왜 한국 금융인들은 협회 차원이 아니라 개개인들이 청와대나 검찰, 국회에 선을 대려고 한다고 보나?

“금융 사업에 비리가 있고 부정이 있기 때문이다. 넓게 보면 정치 사회 문화가 글로벌 수준으로 아직 선진화가 안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고 제도적 발전도 이뤘지만 아직 문화나 관행이 그만큼 뒷받침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옵티머스 펀드 사태를 일으킨 옵티머스자산운용의 사무실/뉴시스

낙후된 한국 투자 문화

―한국 투자업계 문화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체험 사례가 있나?

"내부자 정보를 이용한 거래가 많다고 생각한다. 한번은 작전 세력이 나에게 와서 ‘같이 한 번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한국 주식시장은 아사리판(난장판)이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그렇게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거절했더니 ‘한국 물정을 모른다’고 빈정댔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쌓은 경력이나 신조에 어긋난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에서 성공한 재미 교포 1세로서 자부심이 강했던 측면도 있다. 자부심까지 버리면서 신조에 어긋난 비즈니스를 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례를 하나 더 든다면?

"한국의 한 수출 제조업 기업가가 해외 투자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투자설명회(IR) 자료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왔다. 한국 투자자들은 단기 투자 성향이 강해 장기 투자를 하는 해외 기관 투자자들을 주주로 끌어들이는 것이 목적이었다. 자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 기업가가 나에게 조만간 해외에서 큰 수주가 발생한다고 했다.

여의도 투자자들은 이런 정보를 받으면 대체로 그 회사 주식을 산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내부자 정보라고 간주해 주식을 사지 않았다. 월스트리트 기준으로 볼 때 이런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사서 이익을 얻으면 내부자 거래로 간주해 큰 처벌을 받는다. 실제로 이 주식은 내가 정보를 얻은 한달쯤 뒤에 50% 가량 올랐다."

처벌이 강한 미국

―미국에서도 중요한 투자정보를 얻으려고 월스트리트맨들이 혈안이 되어 사방으로 뛰어다니지 않나? 한국과 미국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나?

“미국에서도 이런 인적 네트워크에서 얻은 정보로 투자하는 내부자 거래가 없지 않다. 하지만 감독 당국이 엄격히 조사하고 책임도 무겁게 매긴다. 한국에서는 이런 감독 기능이 약한 것 같다. 한국의 금융시스템은 규제는 정말 많은데, 시스템이 투명하게 기능할 수 있는 감독 활동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미국증권거래위원회. 증권 거래가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정보 공개 시스템을 만들고 불법과 부정을 조사해 처벌한다./위키피디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는 결국 정부와 감독당국인가?

“감독 기관이 강하게 법과 규칙을 집행해 투자 문화를 바꾸는 수 밖에 없다.”

―라임과 옵티머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인가?

“그렇다. 철저하게 조사해서 법을 어긴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이런 일이 재발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정부가 부추기는 펀드 ‘모럴 해저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에 경기 진작을 위해 뉴딜 정책을 쓰겠다고 선언한 뒤 자금 조달을 위해 ‘뉴딜 펀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정책 자금과 민간 투자자의 자금을 함께 섞은 형태의 펀드이다. 발표 직후 문 대통령은 ‘펀드매니저’로 나섰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10월 16일 오후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제3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뉴시스

―미국 기준으로 보면 한국 투자업계에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현상이 만연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한발 더 나가면 한국에서는 민간 부문의 모럴 해저드를 넘어, 정부나 감독당국이 직접 펀드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민간 부문의 모럴 해저드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미국도 정부가 펀드를 만드는 사례가 있나?

“미국의 경우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양적 완화(통화 확대) 조치를 하면서 기금(펀드)을 조성해 채권 매입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통화정책 차원에서 하는 것과 행정부가 사업용 펀드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미국은 산업을 지원할 때 감세를 통해 기업이나 가계에 세금 혜택을 주는 쪽으로 지원을 한다. 정부가 국책 펀드를 만드는 경우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왜 미국에서는 펀드 사업을 민간에게 맡기고 정부가 안하나?

“펀드 활동은 투자 수익을 얻기 위한 것이므로 원래 정부의 역할이 아니다. 정부는 조세 정책과 재정 정책을 사용해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취약한 경제 부문을 지원하는 활동을 한다.”

국민 세금으로 펀드 손실도 보전

―은행 예금이나 채권과 달리, 펀드나 주식 투자는 투자 원금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전제로 깔고 있다. 그런데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뉴딜 펀드’ 발표 때 손실이 날 경우 정책 자금이 35%까지 손실을 우선 부담하는 상품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래서 민간 투자자들은 손실을 볼 가능성이 없다거나 손실이 나더라도 정부가 세금을 써서 손실을 보전해 줄 것이라는 관측이 시장에서 나왔다. 미국에서도 이런 금융 정책이 가능한가?

“이런 게 문화의 차이이다. 한국은 개발도상 시대에 금융을 정부가 통제했기 때문에 아직 관치금융의 유산이 남아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금융이 민간 부문에서 시작했다. 그래서 정부에서 이런 발언이 나올 수 없다. 정부의 역할은 펀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금융 시스템이 제대로 기능하도록 규칙을 정하고 감독을 하는 것이다. 선진 금융의 흐름에 비추어 보면 낙후된 정책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 9월 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 참석해 '새로운 도약, 뉴딜 금융'에 대해 보고하고 있다./뉴시스

―은 위원장은 뉴딜 펀드가 국채 수익률 이상의 이익이 날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나중에 국정 감사 때 이 발언이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수정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펀드나 주식 투자는 원래 손실이 나면 최악의 경우 원금이 100%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데도 감독 당국의 수장이 펀드 투자가 원금 보장은 물론 이익까지 날 것이라고 발언하면 국민들이 펀드 투자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되고 펀드업계 운영자들도 이러한 행태를 모방해 모럴 해저드가 더 심해지는 것 아닌가?

“다시 말하지만 펀드는 원래 민간 금융이 하는 일이다. 정부가 펀드를 직접 만들고 ‘펀드매니저’로 나서면 민간 금융이 위축되고 여러가지 부작용이 생긴다.”

―정부가 직접 하지 않고 금융권의 팔을 비틀어 펀드를 만들어 팔라고 한다면 그것도 문제 아닌가?

“이런 발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비판 받는 대통령의 주식 발언

―문 대통령은 올해 상반기 코로나 사태가 한창일 때 침체된 주식 시장을 살리기 위해 연기금들이 주가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를 사서 주가를 부양하겠다는 발언도 했다. 대통령이 연기금을 동원해 주가 부양에 나서겠다고 발언하는 것이 적절한가? 대통령 지시를 따랐다가 예컨대 국민연금에 투자 손실이 생기면 국민세금으로 메워야 하지 않나?

"미국은 연기금이 모두 독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대체로 정부의 감독을 받는 기관이다. 그래서 이런 문제가 생긴다. 한국의 연기금 운용 방식은 개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이 이렇게 발언한 것은 참모들에게서 제대로 조언을 받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대통령의 발언은 상당히 강한 메시지를 시장에 전달하기 때문에 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 뜻밖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올 3월에 미국 주식시장이 폭락했을 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식 투자를 유도하고 백악관 경제보좌관이 ‘지금이 주식을 살 때’ 라고 언론 인터뷰를 했다가 월스트리스트 전문가들이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대통령의 주가 예측이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백악관 수장들이 주가나 펀드의 움직임이나 수익에 관해 발언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 사태 직후 주색 투자 관련 발언을 했다가 월스트리트의 강한 비판을 받았다. 사진은 지난 11월 6일 백악관 브래디 브리핑 룸에서 발언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AFP 연합

―정부가 주식 투자 손실을 세금으로 보전해주면 저소득층의 사람들에게 지원되어야 할 국민 세금이 돈 있는 사람들의 투자 손실을 메워주는 셈이 된다. 그 결과 빈부격차가 더 심해지는 악영향이 나타난다. 미국의 경우 펀드 등의 주식투자 손실을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떠안아 준 사례가 있나?

“정부가 금융 위기 때 금융회사에 세금을 지원한 적은 있었지만, 펀드의 경우에는 그런 사례가 없었다.”

나스닥으로 되돌아가다

권 대표가 한국 주식 투자를 그만 둔 이유를 충분히 들었다. 그래서 그가 새롭게 시작한 미국 바이오 주식 투자로 화제를 돌렸다.

지난 4월 23일 밤 뉴욕 맨해튼 타임스 스퀘어의 나스닥 빌딩 전광판에 의료산업 종사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문구가 새겨져 있다./로이터 연합

―미국 주식 시장에도 여러가지 종목이 있는데 왜 바이오 주식인가?

“미국 주식 시장을 견인하는 삼두마차는 IT(정보기술), 금융, 바이오이다. 그런데 삼두 마차 가운데 최근에 바이오가 급부상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신약 개발을 미국 바이오 제약사에서 독점하고 있고, 인구 고령화도 지속되고 있으며, 새로운 희귀 질환이 계속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두 마차 가운데 바이오 산업의 성장성이 제일 좋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10년은 대세가 이러한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금융 전문가로서 제약주나 바이오주를 평가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어떤 방식으로 바이오 기업들을 평가하고 투자 대상을 선별하나?

“바이오주는 규모가 작은 제약회사들이다. 신약 개발에 특화된 소규모 제약회사들이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회사가 3300개 정도 되는데 이 가운데 바이오 주식이 770개 정도이다. 이 770개 업체 중에서 우량하고 전망이 좋은 회사들을 100개 정도 집중 연구해 투자자문을 해주고 있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대표적인 바이오 기업들을 편입한 헬스케어 ETF(상장주식펀드) 'IBB'. 그러나 여러 종목의 주가를 평균한 ETF로는 다른 주식과 수익률 측면에서 차별하기는 어렵고. 성장성이 있는 개별 바이오 종목을 찾아내야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미국 바이오 투자 실적

―지금까지 마국 바이오 투자 실적은?

“2018년에 연수익률 64%, 2019년에 59%를 올렸다. 2020년에는 지금까지 15%로 상대적으로 낮다.”

―연도별로 왜 그렇게 실적이 차이가 나나?

"2018년과 2019년에는 주력 종목으로 선택한 기업들이 임상실험에서 크게 성공했다. 1년 반동안 저평가된 몇 종목을 분할 매수하면서 각 투자업체들의 임상 실험 결과를 지속적으로 검증했다. 성공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저위험으로 분류했고 사전에 정한 투자한도를 꽉 채운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줬다.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예상외로 악화된 영향 때문에 임상 실험과 신약 승인이 지연되면서 연초에 좋았던 수익률이 낮아졌다."

미국 제약회사 리제너론의 연구진들이 지난 10월 미생물 반응장치 앞에서 실험 결과를 관찰하고 있다./리제너론

바이오 주식은 살 때인가?

―내년 이후는 어떻게 될까?

"코로나 사태가 내년 중반에 정상화되면 코로나 사태 때문에 저평가를 받고 있던 일부 바이오 종목의 주가가 상승할 것이다. 바이오 부문에서는 아직 이러한 저평가된 주식이 많아서 장기투자 관점에서는 지금이 투자하기 좋은 시기라고 본다.

다만 무리하게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하지 말고, 안정적 수익률을 얻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이오 사업은 투자를 하면 성과가 나오기까지 10년 이상 걸린다. 그래서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위험도 크고 수익도 높은 ‘고위험 고수익’ 사업인데, 위험하지 않나?

“일반적으로 바이오 종목은 큰 수익이 나지만 투자위험도 그만큼 큰 ‘고수익 고위험’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연구를 잘하고 전문 지식을 갖고 투자위험 관리를 잘하면 ‘중위험 중수익’ 종목으로 만들 수 있다.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일반 주식들은 지정학적 리스크, 경기 변동, 금리 정책 등 예측하기 어려운 거시 경제 변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예컨대 산유국의 생산 정책 변화,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이 어떻게 전개될지 어떻게 예측할 수 있나?

반면 바이오 주식은 이런 것에 신경을 안써도 된다. 임상 실험에 성공하느냐, 신약 승인을 제대로 받느냐, 시장이 얼마나 크냐에 따라 주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펀더멘틀(기업 가치) 연구가 다른 주식보다 더 투명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바이오 산업에는 투자하지 않나?

"한국에서는 진정한 바이오 산업이 없다고 본다. 코스닥에 상장된 회사들이 몇곳 있는데 투자자들이 모두 단기적으로 접근하고 투자 자금의 규모도 작아서 투자 위험이 매우 높다.

한국 시장은 바이오 뿐 아니고 모든 주식이 ‘고위험 저수익’이다. 너무 단기적이고 작전세력이 많기 때문이다. 주식의 가치를 정확히 평가할 수 없다."

최기영(왼쪽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이 11월 18일 인천 연수구 송도의 연세대 인천 글로벌 캠퍼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바이오 산업' 행사에 참석해 정부의 바이오 산업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뉴시스

바이오 주식에 투자 하려면

―바이오 전문가가 아닌데, 바이오 주식에 어떻게 접근하나?

“바이오 투자를 하려면 금융 투자의 노하우와 바이오 산업의 전문성을 알아야 한다. 나는 금융 투자의 노하우는 익숙하다. 바이오에 대한 전문 지식은 작지만, 투자자로서 알아야 하는 핵심 요소만 정확히 알면 된다. 꼭 바이오 주식을 투자한다고 해서 바이오 박사 학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문성이 너무 많아도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하는데 장애물로 작용한다. 이것은 내 의견이 아니고 바이오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바이오 투자자로서 알아야 할 핵심 요소라면?

"임상 시험에 성공할지 실패할지, 신약 승인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시장 규모는 어떤지, 경쟁 업체의 임상실험 데이터는 어떤지 등이다. 이런 것은 조사를 하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의료 전문가들의 의견을 많이 참조하면 된다. 관련 논문도 많이 읽고.

바이오 투자는 확률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특성이 있다. 임상 승인을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 신약 승인을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확률적으로 계산해야 한다."

―미국 바이오 주식에 접근하는 방식은 한국의 인맥 중심 투자 문화와 많이 다른 것 같다.

“많이 다르다. 미국 바이오 주식 투자는 연구를 많이 하고 자료에 대한 판단을 잘해야 한다. 발표된 사항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회사의 경영진과 의사 소통을 많이 해야 한다. 임상결과가 나오면 성공과 실패가 극명해지는데, 바이오 회사들이 실패를 감추기 위해 포장을 많이 한다. 이러한 부분들을 자료에서 잘 찾아내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사람 만나서 내부자 정보 캐내는 일에 시간을 대부분 쏟는 한국과 투자 문화가 다르다.”

바이오와 제약 연구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슨'의 인터넷 홈페이지.

주목할 만한 코로나 관련주

―최근 화이자와 모더나가 코로나 백신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앞으로 코로나 사태는 어떻게 전개될까?

"코로나 사태가 끝날지 여부는 두가지 관점에서 판단된다. 하나는 효능이 있고 안정성이 검증된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하듯이 변형된 바이러스가 어느 정도 생기느냐 하는 점이다. 효능이 검증된 백신이 나와도 바이러스가 변형되면 약 효과가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코로나 사태는 계절성 독감처럼 지속적으로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 내년에 다른 백신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백신 개발 경쟁의 일부 후발 주자들은 바이러스를 2개, 3개 탑재한 새로운 백신 개발을 시작했다.

예를 들면 내가 투자하고 있는 한 회사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스 바이러스, 메르스 바이러스가 동시에 탑재된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이미 연구를 성공리에 마무리했고 미국 FDA(식품의약국) 승인을 받았기에 임상 1상 실험을 12월에 시작한다.

코로나 백신 개발에서 앞서가고 있는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의 코로나 백신 모형./AFP 연합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제 부문에 대한 투자 전망은?

"백신은 미국에서 30개 회사가 임상 실험을 하고 있다. 반면 치료제는 미국에서만 수백개 회사가 달려들고 있다. 주로 항암제로 인한 부작용을 치료하는 약이나 세포의 면역을 강화시키는 약들이 치료제로 개발되고 있다. 이미 유통되고 있는 약들이다. 최악의 경우 백신 개발에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많은 치료제들이 내년 중반에는 등장할 것이므로 정상적인 사회생활 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은 치료제가 렘데시비르 하나 밖에 없지만 이것보다 더 효과가 좋은 치료제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 약값이 매우 비싸지만 미국에서는 의료보험의 지원을 받는다.

바이오 투자자 관점에서 보면 화이자나 모더나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 전용 백신을 개발하는 기업의 주가는 이미 많이 올랐다. 그러니 바이러스 여러 개를 동시에 목표로 삼는 후발 기업들에게 투자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또 치료제 업체들이 아직 주가가 저평가된 상태이므로 그런 치료제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이익을 낼 가능성이 높다."

미국 제약회사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코로나 치료제 렘데시비르./로이터 연합

한국 투자문화를 선진화하려면

늦가을 햇볕이 밝고 따스할 때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2시간이 넘자 창밖이 어두워지면서 세상이 어둠 속으로 잠기기 시작했다.

―결론을 지어보자. 한국의 투자 시스템을 미국처럼 선진화하려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처럼 감독 기능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의 기존 문화, 특히 내부자 거래 문화는 단기간에 바꾸기 어렵다. 그러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감독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특히 금융투자업계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는 정책을 정부가 먼저 추진하면 안된다. 정부는 시장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공정하게 경쟁하고 잘 돌아가도록 ‘운동장’을 만들고 감독하는 업무에 그쳐야 한다."

월스트리트 출신인 권경혁 써미트투자자문 대표가 지난 16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더 이상 한국 주식에 투자하지 않고 미국 나스닥의 바이오 주식으로 투자 대상을 바꾼 사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김기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