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개인들의 주식 투자가 대폭 늘어나면서 상장지수펀드(ETF)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다. ETF는 특정 증시 관련 지수나 자산가격의 등락을 그대로 따라가는 식으로 설계된 일종의 ‘패시브 펀드’인데, 증시에 상장돼 일반 주식 종목처럼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다. 동학개미운동으로 ‘주린이(주식+어린이)’가 늘면서, 투자 위험이 높은 종목 투자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믿을 만한 ETF 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자산운용사들도 ETF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치열한 ‘ETF 운용보수’ 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운용사들, ETF 수수료 줄줄이 인하
KB자산운용은 지난 6일 미국 ‘나스닥100 지수’를 추종하는 ‘KBSTAR미국나스닥100 ETF’를 상장했다. 이 펀드의 총보수는 연 0.07%에 불과하다. 전 세계 14개 ‘나스닥100 ETF’ 중에서 가장 낮다. 앞서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지난달 29일 총보수가 연 0.09%인 KINDEX미국나스닥100 ETF를 출시해 최저 보수 기록을 세웠는데, 일주일도 안 돼 보수가 더 낮은 상품이 등장한 것이다.
신규 ETF가 ‘보수 인하’로 선공(先攻)을 펼치자, 기존에 있던 ETF들도 재빨리 총보수 인하로 대응하고 있다. 국내 최초의 나스닥 지수 추종 ETF이자 관련 ETF 중 점유율 1위(88%)인 ‘TIGER미국나스닥100 ETF’를 운용하는 미래에셋은 12일부터 해당 상품의 총보수를 0.49%에서 KB와 같은 수준인 0.07%로 낮춘다고 발표했다. 미래에셋은 미국 ‘S&P(스탠더드앤드푸어스)500 지수’를 추종하는 ‘TIGER미국S&P500 ETF’의 보수도 0.3%에서 0.07%로 낮추기로 했다. 현재 나스닥100지수 ETF의 보수로 0.45%를 받고 있는 삼성자산운용도 내년에 출시하는 나스닥 ETF의 총보수는 0.05%로 할 방침이다. 전 세계에서 나스닥100지수에 투자하는 ETF(14개)의 순자산 규모는 151조원 정도인데, 이 중 압도적인 점유율(순자산 145조원)을 보이는 미국의 ‘인베스코QQQ트러스트’의 총보수는 0.2%다. 국내 운용사들이 받는 최저 보수(0.07%)의 3배에 달한다.
나스닥 ETF뿐 아니라 최근 상장된 다른 ETF도 0.1% 미만의 ‘쥐꼬리 보수’를 받고 있다. 삼성과 KB가 지난 10일 상장한 ‘FnGuide K-뉴딜 디지털플러스 ETF’의 총보수는 0.09%인데, 미래에셋이 지난달 출시한 국내 첫 K-뉴딜 ETF인 ‘TIGER BBIG K-뉴딜 ETF’보다 0.31%포인트 낮다. 국내 상장 ETF 전체 평균 보수가 연 0.3%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최근 상장되는 ETF들은 ‘거품’을 거의 걷어낸 것이다.
◇"마케팅 전략의 일환‥.실제 수익률 영향은 미미할 수도"
ETF 보수 인하 경쟁은 후발 주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국내 ETF 시장은 삼성과 미래에셋이 각각 55%, 24%가량의 점유율(순자산 기준)을 차지하며 양분하고 있는데, ETF 시장이 점점 커지다 보니 후발 주자들도 더는 뒷짐만 지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ETF 시장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3조7452억원으로 지난해(1조3332억원)와 2018년(1조4619억원) 평균보다 각각 181%, 156% 늘었다.
하지만 투자자 관점에서 봤을 때 ETF 총보수 인하가 실질 수익률 개선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지적이 많다. 먼저 증권사 매매 수수료 문제가 있다. ETF는 일반 주식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증권사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사고팔아야 하는데 이때 최대 0.3~0.5% 수준의 ‘매매 수수료’를 증권사에 내야 한다. 증권사마다 각기 다른 수수료 정책을 펴고 있는 만큼 꼼꼼히 비교하지 않고 거래할 경우, 총보수를 절약한 것보다 훨씬 많은 지출이 일어날 수 있다. ETF 거래량 부족 등에 따른 ‘비효율 매매’가 이뤄질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ETF를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이 적다 보면 내가 원하는 가격에 사거나 팔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기 때문에 수익률이 떨어질 수 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ETF 보수는 대량으로 매수하는 기관투자가나 일부 장기 투자자 정도를 제외하면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는 아주 미미한 금액”이라며 “투자자를 조금이라도 뺏어오기 위한 업계의 마케팅 전략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