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은행 등 금융사가 사모펀드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팔면 전체 판매액의 50%까지 과징금이 부과된다. 한 은행이나 증권사가 사고가 난 펀드를 5000억원에 판매했다면 해당 은행, 증권사는 2500억원까지 과징금을 물어낼 수 있는 것이다. 금융사가 펀드를 판매하면서 벌어들이는 수수료가 전체 투자금의 1~2% 수준이란 점을 감안하면, 잘못된 상품을 팔았다가 문제가 생기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게 되는 셈이다.
또 펀드 등 금융상품 내용도 모르고 고객에게 판매한 은행 직원은 최대 1억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금융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령 제정안’을 27일 입법예고했다. 이 법은 내년 3월 25일부터 시행된다.
◇"은행은 안 팔면 그만이지만"… 중소형 운용사는 어쩌나
1조6000억원대 손실을 낸 라임펀드는 우리은행에서 3577억원, 신한은행에서 2769억원이 팔려나갔다. 이번 시행령이 적용됐다면 우리은행은 최대 1788억원, 신한은행은 1384억원을 과징금으로 내야 한다. 여기에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가 판매사들에 제시하는 보상액은 과징금과는 별도이기 때문에 판매사 입장에선 번 돈은 물론 창구에서 판 전체 판매액보다 더 많은 돈을 물어줘야 할 수도 있다. 최근 라임펀드에 이어 옵티머스펀드까지 잇따라 사고가 터진 가운데 금융 당국을 중심으로 판매사들에 ‘무한 책임’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확산하자 아예 사모펀드 판매를 속속 중단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시행령 발표로 이 같은 추세는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펀드를 잘못 팔면 금융사 한 곳을 망하게 하겠다는 아이디어가 제도화된 것”이라며 “본업이 예금, 대출인 은행이야 펀드 안 팔면 그만이지만, 은행 같은 판매처를 잃은 중소형 운용사들은 하나둘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금융 당국은 제재 강도를 높이긴 했지만 수위는 합리적으로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위반 행위의 고의성, 소비자 피해 규모, 시장 파급 효과, 위반 횟수 등을 고려하고, 내부 통제 기준 이행 등 위반 행위 예방 노력, 객관적 납부 능력도 따진다는 방침이다.
윤상기 금융위 금융소비자과장은 “그동안 일관된 규정이 없어서 아무리 대형 금융 사고가 발생해도 과징금을 부과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다만 융통성 없이 작은 잘못만 해도 과하게 과징금을 부과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판매 직원이 펀드 구조 모르면 불법… 소비자가 원하면 ‘계약 무효’ 가능
이번 시행령엔 판매 규제를 구체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우선 은행, 증권사 등 금융사가 자산운용사 펀드를 대리 판매할 경우에도 판매사가 직접 상품 설명서를 작성해야 한다. 판매사의 ‘상품 숙지 의무’도 도입돼 상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은행 직원이 고객에게 상품을 권유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만약 상품을 제대로 모르고 판매하면 ‘설명 의무 위반’이 되며, 해당 직원은 1억원 이하 과태료를 물거나 내부 징계 대상이 될 수 있다.
새로운 소비자 권리로 ‘청약 철회권’이 도입됐다. 대출 상품은 14일, 보장성 상품은 15일, 투자성 상품은 7일 이내에 금융사의 위법 행위가 없더라도 계약을 철회할 수 있다. 다만 주식 매매처럼 이미 투자를 한 뒤 손실을 보고 “투자를 철회하겠다”고 요구할 순 없다.
은행, 보험사, 금융투자사, 여신전문회사, 저축은행 등 금융사들로 한정됐던 금융소비자보호법 적용 대상도 신협, P2P 업체와 금융위에 등록된 대부 업자까지 확대된다. 네이버 등 빅테크 기업들도 금융 관련 업무를 할 땐 금소법이 적용된다.
이명순 금융위 금융소비자국장은 “네이버라는 이름만으로 금소법 적용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네이버가 대출 모집인으로서 대출성 상품을 대리하거나 중개한다면 금소법을 적용받게 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