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가치가 초강세다. 2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는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전날보다 7.5원 급락한 1131.9원에 마감, 작년 3월 22일(1130.1원) 이후 1년 7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중순 1180원대였던 환율은 한 달 사이 50원 급락했다. 특히 1160원대가 깨진 지 사흘 만에 1150원대가 깨졌고, 1140원대에서 1130원대를 찍고 1120원대 코앞까지 가는 데는 이틀밖에 걸리지 않는 등 하락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원·달러 환율 급격한 하락

미국 대선을 2주 앞두고 대규모 경기 부양책 합의가 임박했다는 소식에 달러화 가치가 약세를 보이는 데다, 3분기에도 플러스 성장을 기록한 중국 위안화 강세 기조에 발맞춰 원화도 동조화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위안화는 이날 역외시장에서 달러당 6.65위안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2018년 7월 이후 가장 강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지난 10년간 평균 환율은 1125원. 해외 투자은행(IB) 등은 연말 환율 하단을 1120원으로 보고 있고, 내년엔 이보다 조금 더 내려갈 수 있다고 전망한다.

◇트럼프? 바이든? 누가 되든 달러 더 풀린다

바이든의 민주당 진영은 코로나 극복을 위한 2조2000억달러(약 2500조원) 의 추가 부양책 패키지를 최근 하원에서 통과시켰다. 다급한 트럼프 대통령도 부양책 덩치를 점점 키우고 있다. 코로나 치료 후 백악관에 복귀하면서 “추가 경기 부양책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가 증시 급락에 놀라 하루 만에 입장을 번복했던 트럼프 측은 20일(현지 시각) 종전보다 1000억달러 더 쓴 1조9000억달러 패키지를 민주당에 제안했다. 결국 누가 되든 약 2조달러가량이 추가로 풀릴 전망이다. 미국 GDP(국내총생산)의 10%에 달하는 규모다. 미국은 3월 코로나 확산 이후 총 네 차례에 걸쳐 이미 3조달러를 풀었다.

코로나·대선 같은 단기적인 이슈만 문제가 아니다. 미국 경제가 앞으로 구조적으로 꺾일 일만 남았기 때문에 결국 달러 가치가 ‘하락’ 수준이 아니라 ‘붕괴’할 것이라 보는 학자도 있다. 스티븐 로치 미국 예일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가계·기업·정부의 저축을 모두 합친 순 저축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데다 경상수지가 적자인 상황 등을 근거로 들면서 “미국 경제가 다시 고꾸라지는 ‘더블딥’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내년까지 달러화 가치가 35% 급락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지난 14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한 발언을 보면 당분간 환율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시장 전문가들은 판단한다. 이 총재는 “7월 이후 미 달러화 지수가 급락하고, 위안화가 크게 절상되는 가운데서도 원·달러 환율은 상대적으로 완만하게 하락해 디커플링(분리) 되는 모습을 보였다”며 “9월 중순 이후부터는 원화 강세가 빨라졌는데, 그간의 디커플링이 해소되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 환율 하락세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취지다.

다만 같은 날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위안화 강세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이나 원화 강세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진행되는 모습”이라고 평가하면서, 외환 당국의 시장 개입 여지를 남겼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주요 IB들이 예상하는 4분기 원·달러 환율 하단은 1120원, 내년 환율 하단은 1050원 선이다.

◇쌀 때 사두자… 달러예금 수요 몰려

환율이 급락할수록 쌀 때 달러를 사두려는 사람도 몰린다. 하나은행은 지난달 1달러부터 넣을 수 있는 ‘일달러 외화적금’을 출시했는데, 출시 한 달여 만에 1만 계좌·가입 금액 100만달러를 돌파했다. 이 은행이 여태껏 출시한 외화적금 상품 중 가장 불티나게 팔렸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8월 거주자 외화예금은 885억4000만달러로 전월 말 대비 11억4000만달러 늘어나며 역대 최대치였고, 9월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달러예금 잔액도 479억496만달러(약 54조2100억원)로 지난 3월 이후 13조원 가까이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