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금융회사 검사를 나간 금융감독원 검사역들이 피감기관 직원들에게 슬리퍼를 요구하고 주변 맛집 리스트까지 정리하라고 해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금감원 눈치를 봐야 하는 금융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금감원의 갑질은 사실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닙니다.

금감원도 이런 문제를 인식해 2012년부터 ‘권익보호담당역’을 지정해 금융사 임직원들이 부당한 요구를 받을 경우 권익보호를 신청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권익보호담당역은 금감원 감찰실 국장이 겸임을 합니다. 신고 절차는 매우 간단합니다. ‘갑질’을 당한 금융사 직원이 금감원 홈페이지나 이메일을 통해 검사 업무 과정에서 어떤 부당한 요구가 있었는지만 적어 제출만 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8년째 유지되고 있는 이 제도는 잘 운영되고 있을까요.

5일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최근까지 권익보호담당역에게 권익 보호를 신청한 건수는 단 한 건뿐이었습니다. 그나마 올해 접수됐던 유일한 신청 건에 대해서도 금감원은 “위법·부당한 검사가 아니고 검사 절차상 중요한 흠결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결론 냈습니다. 별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죠.

최근 5년간 신청 건수가 한 건뿐이었으니, 그만큼 금감원 검사역들의 ‘갑질’이 사라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불행히도 그렇진 않은 것 같습니다. 권익보호담당역 제도 시행 이후인 2017년 12월에 금감원이 추가로 도입한 ‘권익보호관’ 제도와 비교해보면 실태를 알 수 있습니다. 권익보호관은 권익보호담당역과 이름은 비슷하지만, 금감원 직원이 아닌 외부 인사를 위촉합니다. 현재는 국민권익위원회 직원이 권익보호관을 맡고 있습니다. 금감원 국장이 겸임하는 권익보호담당역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2018년 권익보호관에게 총 43건의 권익 보호 신청이 들어왔습니다. 이 중 3건은 검사 과정에서 부당함이 인정됐습니다. 작년에도 27건이 신청돼 3건이 인용됐고, 올해는 71건(인용 10건)이나 신청이 들어왔습니다. 금융회사들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격인 권익보호담당역을 피해 외부 인사가 맡는 권익보호관 쪽으로 달려간 것이죠.

한 시중은행 직원은 “팔은 안으로 굽을 텐데 어떻게 금감원에 직접 신고를 할 수 있겠냐”고 하소연합니다. 주기적으로 금감원 검사를 받아야 하는 금융사로선 보복 감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은 “권익보호담당역도 권익보호관처럼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