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마자 물린다’

한국 증시에서 ‘사물주(사면 물리는 주식)’로 꼽히는 은행주. 한국거래소 기준 KRX은행 지수는 올해 28% 하락해 17개 업종 중 최악이다. 초저금리, 배당제한, 정부간섭 등 은행주를 짓누르는 악재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개미들은 “사물주를 사모으는 사람들의 의식 구조를 1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돈냄새만 찾아다니는 해외 큰손들이 신한지주에 1조2000억원을 베팅했다고 하니 호기심이 발동한다. 홍콩 소재 사모펀드인 ‘어피니티 에쿼티 파트너스(AEP)’와 ‘베어링 프라이빗 에쿼티 아시아(BPEA)’는 지난 7일 신한지주의 제3자 배정 보통주 유상증자에 참여해 신한지주의 지분 약 4%를 확보한다고 밝혔다. 주당 매입 가격은 2만9600원.

신한금융그룹

여의도의 증시 전문가 A씨는 “한국 은행주가 역대급으로 싼 시점에서 해외 사모펀드들이 우리나라의 대표 은행주에 1조2000억원을 베팅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쌀 때 사재기했다가 가격이 오르면 처분하는 사모펀드 속성을 이해한다면 투자자들이 절대 놓쳐선 안 되는 타이밍”이라고 말했다.

A씨는 이어 “특히 어피니티는 한국계 매니저들이 주축인데 국내에서 고수익을 올린 대표적인 홍콩계 사모펀드"라며 “오비맥주와 음원 서비스 기업 로엔엔터테인먼트(멜론)를 매매해 6조원대 차익을 낸 것으로도 유명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단 현재 시점까진 어피니티와 베어링은 한국 증시의 ‘사물주’ 때문에 쓴맛을 보고 있다. 이달 초 유상증자 소식이 알려진 이후 신한지주 주가는 연일 하락해 25일엔 2만7350원에 마감했다. 유증 가격(2만9600원)은 고정되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 돈도 납입하지 않았지만(28일 예정) 가만히 앉아서 900억원 넘게 손해본 셈이다.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 사옥

그런데 이번에 신한지주에 거액을 베팅한 어피니티와 베어링은 공교롭게도 둘다 지난 2012년 교보생명에 투자한 뒤 아직까지도 엑싯(투자회수)하지 못해 물려있는 재무적 투자자(FI)들이다.

당시 어피니티와 베어링은 IPO(기업공개)를 기대하면서 교보생명 지분 14.28%를 사들였는데, IPO가 미뤄지면서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2018년 어피니티와 베어링 등 FI들은 교보생명 신 회장 측에 IPO 조건을 지키지 않았으니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을 행사하겠다고 압박했지만, 신 회장 측은 풋옵션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면서 반발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 4월엔 어피니티와 베어링 측에서 신 회장 소유의 성북동 고급 주택에 가압류까지 걸었다.

단군 이래 주가가 최대로 저렴해져서 ‘참담하다(윤종규 KB금융 회장)’는 말까지 나오는 은행주에 거액을 투자한 어피니티와 베어링, 과연 수년 후 이들이 수조원대의 차익을 거두면서 엑싯할 건인지, 아니면 교보생명 투자 때처럼 강제 장기투자를 하게 될 것인지, 흥미진진한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