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시장은 어디에나 있다. 소형 가전 제품이 대표적이다. 가전 제품이라고 하면 삼성전자나 LG전자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대기업이라고 해서 모든 제품을 만들 수는 없다. 휴아코 임장재(50) 대표가 소형 가전 제품 업계에 발을 들인 이유다.
임 대표는 자사 브랜드 ‘휴빅’을 내걸고 대기업이 접근하지 않는 틈새 분야에서 제품을 하나씩 출시했다. 기존 제품에는 없는 기능을 추가하거나, 비슷한 성능을 합리적인 가격에 개발하는 전략이었다. 대표적으로 가성비 무선 진공 청소기를 개발해 출시 후 1년도 되지 않아 판매량이 8000대를 넘어섰다. 임 대표를 만나 틈새시장에서 살아남는 법을 들었다.
◇한 끗 차이가 있는 생활 가전 브랜드
휴아코의 휴빅은 생활 가전 전문 브랜드다. 가정용 압축기를 시장에 내놓으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비닐 팩에 식재료를 넣고 압축기의 버튼을 누르면 비닐 팩 속을 진공 상태로 만들어 주는 기기다. 과자나 곡물은 물론이고 육류, 생선, 과일, 김치, 국물류까지 위생적으로 포장해 보관할 수 있다.
또 다른 주방 기기로는 슬로우쿠커가 있다. 고온 고압 스팀을 이용해 식재료를 익히는 기기로 달걀 한판을 통째로 삶을 수 있는 크기와 타이머 기능이 강점이다.
요즘 최고 히트 상품은 무선 청소기다. 휴빅 진공 청소기는 1.9kg의 가벼운 무게에 고성능 BLDC(브러시리스) 모터를 탑재했다. 330W 출력으로 최대 흡입력은 2만2000PA이다. 작은 먼지는 물론 커피콩까지 빨아들일 수 있다. H13급 헤파필터를 장착해 0.3㎛(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미세먼지를 99.97%까지 걸러준다.
욕실청소기 퓨어는 분당 400회의 충분한 회전력으로 간편한 욕실 청소를 도와준다. 6개의 브러시 툴이 있어 공간이나 용도에 맞게 바꿔가며 사용할 수 있다.
◇일찍 알아챈 온라인 시장의 힘
넉넉한 가정 형편은 아니었다. “형님이 공업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요. 하루빨리 형님을 도와 일하겠다며 한양공고 자동차과에 진학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형님이 공업사를 접게 되면서 전공을 살리기 어려워졌어요. 1996년 김포대 정보통신과에 입학했죠.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했지만 한 학기에 400만원이라는 학비를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1년 만에 휴학계를 내고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으로 웹마스터 학원에 등록했어요. 1년간 공부해 받은 수료증을 들고 취업 시장에 나섰죠.”
1990년대는 인터넷 통신, IT 열풍이었다. “웹마스터 수료증은 큰 스펙이 됐습니다. 1999년 LG전자 홈쇼핑 전문 판매점에 입사했습니다. 디오스 냉장고, 통돌이 세탁기 등 LG전자 제품을 들고 홈쇼핑 시장에 나갔죠. 그전까지만 해도 대형 가전을 오프라인이 아닌 비대면으로 판매한 사례가 거의 없었어요. 처음엔 반응이 뜨듯미지근했지만 2년쯤 지나자 반응이 오더군요. 홈쇼핑 방송만 꾸준히 해도 월 100억원의 매출이 나왔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매출이 나오는 날이 이어졌다. “마냥 좋진 않았어요. 난 아직 젊은데 ‘도전’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대학때부터 관심이 있었던 ‘온라인’ 분야에서 경험을 쌓고 싶었어요. 2003년 기존 회사의 자회사로 자리를 옮겨 LG전자 모니터를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온라인 시장은 ‘메인 노출’ 하나로 모든 게 결정되는 곳이었죠. 옥션, G마켓 등 온라인몰 PM에게 계속 연락하고 얼굴을 비추면서 설득했습니다. 그렇게 월 매출을 수백만원 규모에서 2억원까지 올렸어요.”
온라인 판매와 영업에 있어서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성과를 냈다. “2012년 자동차 보수용품 전문회사로 이직했는데요. 전국 100여 개 거래처를 직접 다니면서 제품을 알렸어요. 경쟁사에 뺏겼던 곳은 한 달에도 몇 번씩 방문했죠. 노력이 가상했는지 다시 주문을 주더군요. 그간 IT부터 자동차용품까지 다양한 제품을 다루면서 새로운 판매 유통 경로를 뚫는 일 하나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이젠 내 사업을 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죠.”
◇소형 가전 브랜드 ‘휴빅’ 개발노트
1. 좋은 유통망보다 ‘나만의 제품’이 우선이다
2015년 전자제품 B2B 전문점 ‘휴아코’를 설립했다. “포스코·교보생명같은 대기업에 LG전자 TV·세탁기 같은 제품을 납품했습니다. 이후 소형 가전으로 눈을 돌렸어요. 대기업에서 손대지 않는 틈새시장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스팀 다리미로 유명한 소형 가전 브랜드가 새로운 유통망을 고민하고 있기에 온라인으로 판매해 보겠다고 나섰습니다. 그간 쌓아온 노하우를 살려 온라인쇼핑몰에 제품을 올렸는데요. 한달만에 1000만원의 매출을 냈습니다.”
이후 온라인 판매 실적이 오르자 해당 브랜드는 돌연 납품 중단을 선언했다. “알고 보니 온라인 판매 관련 팀을 꾸려 직접 관리하겠다고 나선 거였어요. 해당 기업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결정이죠. 하지만 애써 온라인 유통망을 뚫어놓고 버림받았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배운 교훈도 있었어요. 결국 ‘나만의 제품’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죠. 자사 브랜드를 만들어 그간 닦아둔 온라인 유통이란 길을 제대로 활용해 보자는 결심으로 이어졌습니다.”
2. 가장 큰 수요는 ‘온라인’에 있다
소형 가전제품 전문 브랜드 ‘휴빅(HUBIC)’을 만들었다. “‘Human Best in Class’의 약자로 ‘사람 중심으로 최고의 가치를 전달한다’는 브랜드 철학을 담았습니다. 첫 제품으로 주방용 진공 포장기를 택했어요. 중국 공장에서 받아 본 샘플은 손볼 곳이 많았습니다. 액체류를 포장할 때 기기 안에 액체가 들어가 쉽게 고장이 나더군요. 물이 새더라도 본체로 들어가지 않고 바닥으로 떨어지게 구멍을 뚫었습니다. 또 배터리를 장착해 ‘유선’에서 ‘무선’ 방식으로 바꿨어요. 집안 어디든 가져가서 사용할 수 있도록 했죠.”
제품을 완성한 후 홈쇼핑 방송을 준비했다. “주방 가전의 특성상 온라인보다 홈쇼핑에서 수요가 많을 것이라 판단했어요. 인서트(근접 촬영) 등 사전 영상 제작에만 2500만원이 들었습니다. 홈쇼핑 편성표 한 타임을 따내는 비용도 회당 500만원이에요. 그에 비해 판매량은 방송 회당 800대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광고비와 수수료를 떼고 나면 오히려 적자를 보는 수준이었죠. 타개책은 역시 온라인이었습니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에서 실시간 랭킹 1위를 찍더니 2000개의 주문이 밀려오더군요.”
3. 신제품 아이디어는 가까운 곳에서 찾아라
새로운 제품을 찾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뒤질 필요가 없다. 작은 불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 “장모님께서 구운 달걀을 만들기 위해 슬로우 쿠커를 자주 사용하셨는데요. 타이머 기능이 없어 매번 직접 알람을 맞춰두고 전원을 꺼야 한다며 답답해하셨죠. 타이머나 예약 기능이 있으면, 1만원 정도 더 비싸도 사시겠냐 여쭤보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당연하지!’ 하시더군요. 그렇게 탄생한 제품이 휴빅 슬로우 쿠커입니다.”
같은 제품군이라도 차별화 포인트를 꼭 하나씩 담았다. “관련 제품들의 상세정보와 비교해 봤을 때 다른 점이 적어도 하나는 있어야 합니다. 욕실 청소기의 경우 ‘모터’와 ‘방수’에 차별점을 뒀어요. 기존 욕실 청소기는 분당 회전수가 너무 적어 조금만 힘을 줘도 회전이 멈추고, 묵은때가 잘 지워지지도 않았죠. 여러 번 테스트해 본 결과 가장 적당한 수준이 분당 400회였어요. 여기에 IPX6의 방수 등급까지 넣었죠. 파도처럼 강력하게 쏟아지는 물에서도 거뜬하다는 뜻입니다.”
4. 하나를 얻고 싶으면 하나를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휴빅 더포스 진공청소기 개발 과정은 테스트와 수정의 연속이었다. “가성비 청소기라는 콘셉트로 출발했어요. 청소기 본체와 각종 부품, 거치대까지 포함해 10만원 초반대로 만들어보자는 기획이었죠. 샘플을 받아보니 사용시간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무선 청소기라면 LG, 삼성 가릴 것 없이 겪는 문제였죠. 이미 BLDC라는 고가형 모터를 쓰고 있기 때문에 흡입력은 아쉬울 게 없는 수준이었어요. 흡입력을 조금 줄여 사용 시간을 늘리기로 했습니다. 1단 기준 35분에서 50분으로, 가장 강한 3단을 기준으로는 15분에 23분으로 늘렸죠. 흡입력은 25.19kPa(킬로파스칼)에서 24.7kPa로 약 10% 정도 줄였습니다.”
소비자의 반응은 뜨거웠다. 2024년 8월 출시 이후 1년도 되지 않아 약 8000대가 팔렸다. “차기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바닥 청소의 마무리는 물걸레죠. 2024년 하반기부터 스팀청소기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최종 샘플은 늘 직접 일주일간 사용해 봅니다. 실사용자들이 겪을 법한 불편한 점들을 찾기 위해서죠. 스팀 청소기의 경우 마지막에 스팀 분사량을 1단 기준 분당 12~16g에서 18g, 2단은 25~32g으로 올렸습니다. 출력 와트 수를 올려야 해서 KC인증 등 각종 인증을 모두 새로 받아야 했죠.”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어
휴아코를 설립한 이후 임 대표는 유명 연예인의 심정을 백번 공감하고 있다. “소비자의 댓글 하나에 일희일비합니다. ‘이런 제품이 필요했다’, ‘잘 쓰고 있다’ 같은 댓글을 보면 그날 하루 종일 행복한데요. 가끔 ‘중국에서 이상한 물건 가져왔다’는 식의 댓글이 달릴 때도 있어요. 사용 방법에 대한 안내가 부족했다는 글에는 직접 전화를 드리기도 하죠. 모두에게 사랑 받는 건 욕심이란 걸 알면서도 포기가 안 되네요.”
2024년 휴아코의 매출은 36억원이다. 이 중 자사 브랜드인 휴빅의 매출은 약 33%인 12억원이다. “저를 지탱하는 힘은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이라는 자부심입니다. 제가 항상 꿈꾸는 순간이 있는데요.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이 근황을 물어볼 때 ‘휴빅’이라는 브랜드를 하고 있다고 하면 ‘이미 쓰고 있다’고 답하는 장면을 늘 상상합니다. 휴빅을 통해 온라인 시장에 발을 디딘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오프라인 시장까지 넘보고 있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지금이 행복합니다.”
본 기사에 소개되는 제품의 가격에는 조선몰 운영 등에 필요한 판매수수료가 포함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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