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브레인 박웅찬 대표. /더비비드

어릴 때는 왜 그렇게 피아노 학원에 가기 싫었을까. 작은 연습실에 갇혀 똑같은 곡을 몇 번이나 쳐야 하는 일은 고역이었다. 연습 한 번에 빗금을 하나 그어야 하는 규칙을 깨고 두 개, 세 개씩 긋기도 했다.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뻔뻔하게도 했다. 지금은 후회한다.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이를 보면 부러움에 시선을 뗄 수가 없다.

소리를 인식해 악보를 넘겨주는 서비스 ‘피아노키위즈’를 개발한 클레브레인 박웅찬(25) 대표를 만났다. 그와 이야기를 나눈 후 ‘어쩌면 내게도 한번 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피아노키위즈는 악보를 자동으로 넘기는 데 그치지 않고, 인공지능(AI) 선생님을 따라 2마디씩 따라 치거나 손 모양을 보여주는 기능도 담고 있다.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AI 선생님이 피아노 소리를 모두 듣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표에게 피아노를 진짜 재미있게 치는 방법을 들었다.

◇수학 시간 지나고 음악 시간이 왔다

박 대표는 세종과고, 대구과학기술원 출신이다. /더비비드

세종과학고등학교를 나와 2019년 대구과학기술원에 입학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도 하기 전에 단체 채팅방에서 한 선배가 창업팀을 모은다는 공지를 올렸어요. 당시 팀 이름이 클레브레인(클리어 브레인 웨이브)이었죠. 뇌파를 측정해 ‘딥러닝(인간의 뇌 구조를 모방한 구조로 복잡한 데이터 패턴을 학습하고 예측하는 기술)’으로 분류하는 프로젝트에 흥미가 생겼습니다. 팀에 합류해 온갖 아이디어를 쏟아부었지만 사업화하기엔 부족했던 터라 6개월 만에 프로젝트는 끝이 났어요.”

팀 클레브레인에 함께 들어갔던 19학번 동기 두 명과 함께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지금의 클레브레인 공동 창업자인 송대건·김찬중 이사다. “친구의 지인이 대치동 학원에서 일하고 있는데, 채점과 오답 노트를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든다는 어려움을 전해 들었어요. 그때부터 수학 문제 풀이 피드백 AI 설루션을 개발했죠. 결과는 꽤 성공적이었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개발로 돈을 버는 경험’을 할 수 있었죠.”

성공 경험이 있음에도 입시 교육 시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끝없이 경쟁해야 하는 분야라고 느껴졌어요. 단기적으로 빠르게 개발해서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송 이사가 꺼내든 문제가 ‘악보’였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자동 악보 넘김 기술’을 만드는 게 소원이었다더군요. 악보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기술 개발 없이 종이나 PDF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연주할 때마다 다음 페이지로 넘겨야 하는 번거로움도 여전했죠.”

◇피아노 한 곡 쉽게 완주하는 법

서울시 마포구 프론트원 건물 지하 1층에 마련된 피아노키위즈 테스트배드. /더비비드

신개념 피아노 악보 뷰어 개발에 착수했다. 연주할 때 자동으로 악보가 넘어가려면 ‘피아노 음원 분리 기술’과 ‘연주 위치 실시간 추적 기술’이 필요했다. “국내에선 연구되지 않던 분야였기에 해외 논문을 참고하며 한 땀 한 땀 만들었습니다. 가령 AI가 악보를 자동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오선의 간격, 음표의 크기가 균일하고 정확해야 해요. 색이나 모양을 바꿔가며 악보를 하나하나 그리기도 했죠. 수많은 오류와 실패를 마주한 끝에 관련 기술을 고도화할 수 있었습니다.”

2022년 2월 클레브레인 법인을 설립했다. 같은 해 11월 자동 악보 넘김 기능을 탑재한 ‘피아노키위즈’의 베타 서비스를 출시했다. 만 1년도 되기 전에 유료 마케팅 없이 3만명 넘는 사용자가 유입됐다.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어릴 적부터 피아노학원을 다니다 중학생 때 그만뒀는데요. 이후에 악동뮤지션의 ‘얼음들’이란 곡을 듣고 혼자 연습해 봤지만 쉽지 않더군요. 피아노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곡을 재미있게 연습하고, 연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피아노키위즈를 스마트폰에서 실행한 모습. /피아노키위즈 공식 홈페이지

피아노를 연주하며 한 번쯤 어렵다고 느꼈을 법한 모든 상황을 가정하고, 필요한 기능을 하나씩 더했다. “음표 하나하나에 계이름이 함께 보이도록 하거나, 임시 조표가 붙은 부분을 빨간·파란색으로 표시해 주고, 2마디씩 따라 칠 수 있도록 하는 기능까지 추가했습니다. 피아노를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어도 좋아하는 곡의 악보를 띄워놓고 게임을 하듯 연습할 수 있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피아노 위에 올려놓고 피아노키위즈를 실행하기만 하면 선생님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예요.”

2025년 상반기 구독 서비스를 출시했다. 연 구독료는 10만원대다. 피아노키위즈에 등록된 악보들과 학습 프로그램까지 사용할 수 있다. “악보에도 저작권이 있습니다. 피아노키위즈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와 계약을 맺어, 각 곡마다 연주되는 만큼 원저작자에게 저작권료가 돌아가도록 하고 있습니다.”

피아노키위즈 인기 차트. /피아노키위즈 공식 홈페이지

피아노키위즈의 악보 인기 순위는 일반 음원 순위와 일견 비슷해 보인다. “요즘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가 특히 인기입니다. ‘골든(Golden)’, ‘유어 아이돌(Your Idol)’이 1·2위를 다투고 있죠. 히사이시 조의 ‘Summer’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OST인 ‘언제나 몇 번이라도’는 꾸준히 사랑받는 곡이고요. 일반 음원 순위와 비교해 데이식스(Day6)나 루시(LUCY)같은 밴드 곡들이 눈에 많이 띄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곡 자체에 피아노가 들어가면 더 연주하고 싶어지죠.”

​◇음악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

클레브레인 박웅찬 대표. /더비비드

클레브레인은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가 운영하는 스타트업 보육기관 프론트원의 입주기업이다. 프론트원 건물의 지하 1층에서는 피아노키위즈의 테스트배드(성능 검증 시스템)를 체험해 볼 수 있다. “악보만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개인 맞춤형 레슨 서비스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다음 손 모양을 알려주거나 연주 후 피드백을 들려주는 이른바 ‘AI 피아노 선생님’을 만드는 중이죠.”

지난 8월에는 피아노키위즈 글로벌 서비스도 론칭했다. “론칭 전 주요 국가를 대상으로 테스트했을 때 영국·미국·캐나다·호주 등 영미권에서 반응이 좋았습니다. 특히 영국에서의 지표가 가장 좋아서 영국을 중심으로 전략을 구상하는 중입니다. 해외 음원 저작권을 해결하기 위해 이미 관련 기관과 계약도 맺었습니다. 음악은 만국 공통의 언어라고 하죠. 악보만큼 아름다운 언어도 없을 겁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나라 사람이든 관계 없이 피아노키위즈를 찾게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