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로 실물 경제가 큰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 어느 해보다 힘든 고용상황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어려움 속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취업난을 극복하고 있는 청년들을 통해 희망을 전하는 ‘2030 취업 분투기’를 연재합니다.

28살 동갑내기 커플 박미진, 정진성 씨는 풋풋한 스무 살 대학 캠퍼스에서 만났다. 8년간 학업, 입대, 취업 등 중요한 순간을 함께한 이들은 지난해 12월 정식 부부가 됐다. 이제 막 연인에서 부부가 된 두 사람을 만나 취업과 인생 분투기를 들었다.

캠퍼스에서 만나 8년 교제 후 최근 평생의 연을 맺은 정진성, 박미진 부부. /더비비드
◇유명 제약회사, 주류 제조사 재직 커플의 탄생

우리나라 생산 현장의 최전방에 있는 부부다. 아내 박미진 씨는 하이트진로 청주공장 품질관리팀에서 근무 중이다. QC라고도 불리는 품질관리팀은 전반적인 공정을 관리하는 조직이다.

남편 정진성 씨는 종근당 천안공장의 생산 담당자다. 종근당에서 취급하는 다양한 제품 중에서도 항생제인 페니실린 생산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두 사람의 사랑이 싹튼 곳은 충청남도 논산에 있는 한국폴리텍대학 바이오캠퍼스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박미진 씨와 전라북도 정읍 출신의 정진성 씨는 살아온 배경도, 성격도 달랐지만 학과 동기(바이오품질관리과)라는 공통점으로 묶이며 2014년 인연의 싹을 틔웠다.

두 사람은 한국폴리텍대학 바이오캠퍼스를 졸업 후 유명 제약회사, 주류 제조사의 생산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박미진 씨 제공

- 진로 선택의 기준이 궁금합니다.

(진성) “어릴 적엔 공부에 흥미가 없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과 진학상담을 하면서 사회에 빨리 진출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니 한국폴리텍대학 바이오캠퍼스를 추천해 주시더라고요. 당장 취업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는데 학업을 하면서 빠른 취업까지 할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입학을 결심했습니다.”

(미진) “저는 공부에 손 놓은 학생은 아니었어요. (웃음) 다만 학업보다는 취업에 우선순위를 두고 진로 고민을 했었죠. 어머니 친구 자녀 중에 한국폴리텍대학 바이오캠퍼스 졸업 후 제약회사에 입사한 분이 있었어요. 그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수시로 지원해서 입학하게 됐습니다.”

- 바이오품질관리과는 무엇을 공부하는 전공인가요.

“안전하고 효과 있는 의약품의 생산을 위한 원료 입고, 제조 및 포장 등 모든 공정 관리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제도를 ‘GMP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공정 과정에서 GMP 시스템을 충족시키는 업무를 QC라고 하는데요. 바이오품질관리과에서는 GMP와 QC와 관련한 용어, 기초 이론뿐만 아니라 기초 화학과 QC 업무 시 사용되는 설비에 대해서도 지도합니다. 성분 분석은 QC 업무의 중요한 축 중 하나인데요. 성분을 분석하는 기계에 대한 이론은 물론 기계를 직접 다뤄 보기까지 합니다. 제약회사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설비로 실습하기 때문에 졸업 후 취업 시 빠르게 실무에 투입될 수 있죠.”

두 사람은 김세찬 교수가 이끄는 C조 출신이다. C조는 교수와 제자 간 교류가 활발한 편이었다. /박미진 씨 제공

- 두 분이 연애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미진) “같은 조 친구로 만났어요. 같은 과 동기가 30명 정도 되는데, 담당 교수님을 중심으로 조를 나눠서 활동하거든요. 저희는 김세찬 교수님이 이끄는 C조 출신이죠. 같은 조로 묶이면서 자연스럽게 같이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함께 식사하고 공부도 하면서 정이 들었던 것 같아요. 지도 교수님이 연애금지명령을 내리셨는데 그걸 어기고 연인이 됐죠.”

(진성) “제 경우 보다 확실한 계기가 있었어요. 군 입대 전 신체검사를 받느라 강의에 참석하지 못한 적이 있어요. 미진이에게 강의 내용을 공유해달라 부탁했더니 학교 도서관에 데려가서 필기한 것도 보여주고, 놓친 내용을 설명해 주더라고요. 상냥한 모습에 호감이 커졌습니다. 사실 이전부터 미진이에게 관심이 있었어요. 제가 소심하고 숫기가 없는 편인데요. 그런 제게 먼저 다가와 말 걸어주고, 사람들과 두루 어울리는 미진이의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필기 사건을 계기로 확 가까워져서 서로 가까이 지내다가, 제가 고백했어요. 그게 2014년 5월의 일이었죠.”

◇사귄 지 100일도 안 돼 입대, 뜻밖의 결말
정 씨는 만난 지 100일도 안 돼 입대했다. /박미진 씨 제공

좋은 시간은 짧았다. 같은 해 8월 정 씨가 입대하면서 만난 지 100일도 안된 새내기 커플은 생이별을 해야 했다. 주변 사람들은 두 사람이 곧 헤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 씨 역시 여자친구가 곧 자신의 곁을 떠날 거라고 생각했다.

- 연애 초기부터 아주 큰 위기를 겪으셨네요.

(진성) “강원도 인제군 원통에 있는 최전방 부대에 배치됐어요. 주말마다 서울에서 면회 오는 미진이의 존재가 큰 힘이 됐죠. 사실 저를 떠나도 할 말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럴 일 없도록 이 관계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습니다. 짬이 나는 대로 전화 통화를 했고, 편지도 많이 주고받았어요. 휴가 나오면 무조건 미진이가 1순위였죠. 군인 월급을 열심히 모아서 데이트 비용으로 쓰고, 부대에서 여행 일정표를 짰어요. 소홀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죠.”

(미진) “현재 시부모님에게 죄송할 정도로 제게 열과 성을 쏟는 게 느껴졌어요. 덕분에 물리적인 빈자리만 느꼈을 뿐 심적으로 공허하다고 느껴본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수신자 부담으로 전화 통화를 하다가 통신비만 20만원 넘게 나온 적도 있어요. 놀란 아버지 앞에서 시치미를 뗀 기억이 나네요. 소위 말하는 ‘곰신(고무신)’이었지만 그리 힘든 시간은 아니었어요.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다가 지칠 때쯤 휴가 나온 진성이와 추억을 만들 수 있어서 좋았어요.”

박미선 씨는 하이트진로 청주공장 품질관리팀에서, 남편인 정진성씨는 종근당 천안공장의 생산 담당자다. /더비비드

- 아내분이 훨씬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지 않았나요.

(미진) “맞아요. 진성이가 군 복무 중인 2015년 8월에 현 직장에 입사했습니다. 원래 동아 ST나 삼성바이오로직스 같은 제약회사에 취업하고 싶었어요. 여러 곳 면접을 봤는데 다 떨어져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교수님께서 하이트진로에 저를 추천해 주셨어요. 3점대 후반 대로 학점도 좋은 편이고 학교 활동을 열심히 했는데, 그 점을 높게 평가받은 것 같아요.”

◇2점대 학점 받던 남자친구 과탑 만든 당근과 채찍의 비밀

학생끼리 시작된 연인 중 한 명이 먼저 취업을 하면 헤어지는 경우가 많다. 삶의 우선순위와 고민의 결이 달라져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정 씨가 전역 후 캠퍼스에 돌아왔을 때, 박 씨는 월급 모으는 재미에 빠진 사회 초년생이 돼 있었다. 불과 2년 만에 두 사람의 목표가 달라져 있었다.

먼저 사회에 진출한 박 씨는 정 씨가 학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중간 중간 여행을 떠나 서로 독려하는 시간도 가졌다. /박미진 씨 제공

- 학교에 돌아오니 어땠나요.

(진성) “아내가 연봉도 높고 유명한 기업에 취업하니까 오기가 발동했어요. 이 친구와 만남을 이어가려면 나도 이에 준하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요. 남자의 자존심이란 게 있잖아요. 알아주는 기업에 취업하겠다는 강력한 목표를 설정하고 미친 듯 공부에 매진했어요. 남들이 청춘을 즐길 때 책을 펼쳤고, 데이트할 때도 공부를 했어요. 시험 기간에는 새벽 3~4시까지 공부했어요. 고등학생 땐 밤새 게임을 했던 제가 공부 때문에 올빼미가 됐어요.”

- 아내의 존재가 긍정적인 촉매제 역할을 한 셈이네요.

(진성) “맞아요.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됐어요. 자기가 공부했던 방식들을 제게 알려주기도 했죠. 너무 고마웠어요. 그 따뜻한 마음을 가슴에 새기며 공부한 덕에 전역 후 과에서 1등을 했습니다. 입대 전 2.87이었던 학점은 4점대로 올랐죠.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 많이 바뀌었어요. 살면서 처음으로 목표라는 게 생겼으니까요.”

(미진) “옆에서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준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집에서 장녀입니다. 제 아래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요. 가끔 남편이 남동생처럼 구는 거예요. 공부가 힘들다고 발을 동동 굴리거나 기분이 좋지 않다고 할 때면 따끔하게 현실적인 조언을 했어요.”

(진성) “말은 그렇게 해도 누구보다 다정한 연인이었어요. 미진이와 함께 배낭 메고 여행도 많이 가고, 맛있는 것도 자주 먹으러 다녔죠. 유선상으로만 채찍질할 뿐 만나면 한없이 사랑스러운 여자친구였어요. 그저 제 옆에 아내가 있는 것만으로도 당근이었죠.”

여느 커플처럼 많은 위기를 겪었다. 박 씨는 위기 극복의 비결로 남편의 넓은 마음을 꼽았다. /더비비드

- 그래서 원하는 곳에 취업했나요.

(진성) “학점이 확 오르니 그만큼 많은 기회가 주어졌어요. 유수의 기업에 추천해 주겠다는 제의를 많이 받았죠. 하지만 아내의 직장을 기준으로 지원할 기업을 고르다 보니 많이 고사했어요. 맨몸으로 취업 시장에 뛰어드니 승률이 그리 높지는 않더군요. 서류만 10번 이상 떨어진 것 같아요. 회사의 인지도와 연봉을 따져가며 깐깐하게 지원한 끝에 2016년 여름, 두 회사의 서류 전형에 합격했습니다. 그 중 더 끌리는 곳을 택해서 면접을 보고, 2017년 종근당에 취업했습니다.”

- 목표달성에 이르기까지 위기는 없었나요.

(미진) “지금까지 수많은 위기를 겪은 것 같아요. 사회초년생일 때 회사 생활에 적응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쏟았는데, 당시 학생이었던 남편과 공감대가 형성이 안되더라고요. 말이 통하지 않아서 많이 다퉜죠. 어린 나이에 취업하다 보니 다른 이성 소개도 많이 들어왔어요. 남편도 불안했을 것 같아요.”

- 위기는 어떻게 넘겼나요.

(미진) “남편의 역할이 컸어요. 서운하거나 속에 쌓인 걸 다 내뱉는 타입인데요. 남편이 그런 성향을 다 감내해 줬어요. 제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게 눈에 보였죠. 그 많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동력은 남편의 태평양 같은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미래와 사랑, 둘 다 놓치고 싶지 않다면 ‘이것’부터 찾으세요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 예식을 치르고 정식 부부가 됐다. /박미진 씨 제공

캠퍼스 커플로 출발한 두 사람은 각각 8년 차, 6년 차 직장인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서 예식을 치렀다.

사랑과 꿈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이룬 청년들의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됐다. 얼마 전 22학번 후배들에게 간식을 사주고, 취업 및 진로설계에 대한 간담회를 진행했다. 두 사람의 모바일 청첩장 방명록은 축하하고 감사하다는 후배들의 글로 도배됐다.

- 두 분이 하는 일을 자세히 알고 싶어요.

(미진) “제가 소속된 청주공장에서는 소주, 리큐르, 과실주 종류를 생산하는데요. QC팀은 유통 전 제품이 사내 규격이나 법적 기준에 맞게 잘 제조됐는지 확인합니다. 공정 단계별 제품의 알코올 PH, 산도, 당 등의 분석 업무를 실험실에서 수행하죠. 품질을 보증하기 위해 탱크에 있는 술뿐만 아니라 완제품이 된 것을 무작위로 샘플링해서 검사를 실시합니다. 주종이나 제품 종류별로 기준치와 분석법이 달라서 까다로운 작업입니다. 소수점 하나만 잘못 읽어도 생산 지연, 회수, 파기 같은 큰 손해가 발생하니 신중해야 하죠.”

(진성) “약물 중에서도 페니실린 생산과 포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연도별, 분기별 생산 일정에 맞춰 작업을 진행하죠. 약물의 종류는 액상으로 된 주사제나 알약, 캡슐 형태의 고형제 등으로 나뉘는데요. 이 중에서도 정제와 캡슐제와 물에 타 마시는 건조 시럽의 생산을 진행합니다.”

(왼쪽부터) 남편인 정진성 씨와 아내 박미진 씨. /더비비드

-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요.

(진성) “직장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가 없으면 일이 잘 안 돌아갈 정도로 직무 능력이 뛰어나고 존재감이 큰 구성원이 되고 싶습니다. 어서 내 집 마련도 하고 싶어요.”

(미진) “지난 8년간 저 스스로를 위해서 투자와 발전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회사를 정직하게 다니는 게 다인 줄 알았죠. 뒤돌아보니 이룬 게 아무것도 없더군요. 아쉬움이 남아있던 4년제 학사 학위에 도전하고 싶어요. 재테크 공부도 열심히 해서 미래에 대비할 거예요. 물론 가장 중요한 건 건강이 아닐까요? 운동도 해야겠네요. 일도 하고 공부도 하려면요.”

- 공부와 사랑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청춘이 많은데요. 이들을 위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미진) “두 사람의 접점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그 접점에서 함께 성장하세요. 저는 욕심이 많아서 둘 다 놓치기 싫었어요. 둘을 포용할 수 있는 중간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죠. 남편 역시 학점을 드라마틱하게 올렸고요. 저희는 운 좋게 같은 학과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 시너지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섣불리 사랑을 포기하지 마세요. 함께 성장하면 됩니다.”

(진성) “어느 영역이든 최선을 다하세요. 저는 먼저 사회에 진출한 아내에게 자격지심을 느낄 겨를이 없었어요. 공부할 땐 책에, 연애할 땐 옆 사람에게 집중하느라 다른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거든요. 미진이는 존재 자체로 큰 동기부여가 됐어요.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같이 달리고 싶은 긍정적인 경쟁자였죠. 아내가 없었으면 작은 것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으로 그쳤을지도 몰라요.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