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에 취해 있을까요?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의 미래를 탐색해 보시죠.

박지은 콘트롤엔 대표. /더비비드

코로나 사태로 면역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헬스케어·뷰티 제품을 만드는 스타트업 ‘콘트롤엔'은 특정 연령대와 기능에 따라 세분화된 건강기능식품을 만든다. 어린이 헬스케어 브랜드 티오비보(TIOVIVO)와 3050세대를 주 타깃으로 하는 헬스케어 브랜드 리드마인(RhythMine)을 운영한다. ‘지친 자신을 위해 창업했다'는 박지은(48) 대표를 만났다.

◇문학 청년이 교수의 꿈 접은 이유

콘트롤엔의 대표 상품은 리드마인 무화과 콜라겐이다. 스틱형 젤리 형태로 무화과농축액이 93.49% 들어갔다. 콜라겐은 체리, 석류, 자몽 등 맛 일색인데 색다른 맛으로 차별화를 하고 있다. 3개월 만에 온라인몰과 백화점 등에서 초도물량 1만2000세트가 완판됐고, 시리즈 별로 생산을 하고 있다.

박지은 대표가 창업한 콘트롤엔이 만드는 제품. /더비비드

20대였던 90년대 초반엔 교수를 꿈꿨던 문학 청년이었다.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해 중국 시를 공부했죠. 공부는 즐거웠어요. 복병은 의외 곳에 있었습니다. 다른 학교와 학술 교류를 할 때, 여학생과 남학생을 대하는 교수님의 태도가 다르다는 걸 발견했거든요. 저와 동기들에겐 ‘여자들은 이렇게 공부해도 시집가면 끝이다’고 말했던 교수님들이 남자 대학원생들은 미래의 동료로 대하시더군요.”

고이 키운 꿈을 접고 등 떠밀리듯 사회로 나왔다. 다행히 판은 그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중국으로 진출하려는 기업이 크게 늘고 있었어요. 중국어 가능 인력을 높게 쳐줬죠. 저 역시 간헐적으로 중국어 번역 일을 하다 한 콘텐츠 회사의 중국 시장조사 담당자로 취업했습니다.”

회사 생활을 하던 중 우연히 ‘아로마 요법’에 입문했다. 와인 공부하듯 아로마를 탐구했다. “지인에게 아로마 오일을 선물 받았는데, 너무 좋더군요. 알아보니 유럽이나 호주 같은 국가에서는 아로마가 대체 의학으로 통하더라고요. 아로마테라피의 매력에 푹 빠져 취미 삼아 관련 자격증을 준비했어요. 퇴근 후 아로마 향이 몸에 미치는 영향과 원리를 공부했죠.”

서구 선진국에선 이미 아로마를 활용한 화장품이 많았다. 한국 소비자에게 이를 소개하고 싶어 2003년 지인과 천연 화장품, 유기농 화장품을 수입하고 유통하는 회사를 차렸다. “당시 미국, 영국, 호주, 이탈리아 등지의 7~8개 브랜드와 독점 계약을 맺고 천연, 유기농 화장품을 들였어요. 백화점에도 입점하고 선릉에 오프라인숍까지 열었죠. 하지만 사업의 지속가능성이 부족해 보였어요. 그 당시만 해도 유기농 화장품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낮았거든요. 게다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마케팅 비용을 쏟아내야 했고 오프라인 매장 운영비, 인건비도 감당하기 어려웠어요. 매출은 괜찮았지만 좋은 영업이익을 내지 못해서 2006년 사업에서 철수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중 만난 뜻밖의 복병

독일계 천연 화장품 회사 근무 시절. /본인 제공

독일 유기농 화장품 회사의 브랜드 매니저로 4년 가까이 일하다가 2009년 대기업 헬스뷰티 회사 화장품 MD로 전직했다. “유통사 MD경력은 없었지만 수입 화장품의 수입 절차, 법규, 수입원가 등에 대한 이해가 있다는 점을 인정받아 MD로 입사하게 됐습니다. 일은 재미있고 보람찼어요. 제가 기획한 제품이 진열될 때마다 소비자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짜릿해 했죠.”

하지만 감정 소모가 컸다. “매장에서 재고가 떨어졌다는 연락을 받으면 거래처에 제품을 보내 달라고 요청해야 합니다. 주로 손님이 많은 주말에 이런 일어나, 휴식 중인 거래처 분들에게 전화하는 일이 부지기수였죠. 남에게 험한 소리를 못 하는 성향이라, 매장과 거래처 양측의 볼멘소리를 혼자 감내했습니다. 저도 가정이 있는데, 매 주말 예상치 못한 일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 힘에 부쳤어요.”

이후 이직을 여러번 하며 초창기 브랜드나 조직을 키우는 역할을 맡았다. 화장품 브랜드의 마케팅 본부 이사, 줄기세포 배양액 제조사, 클렌징 티슈 및 마스크팩 제조사의 상품기획실장 등을 거쳤다.

◇번아웃으로 퇴사한 워커홀릭이 창업한 이유

박 대표는 교수를 꿈꾸다 뒤늦게 꿈을 접고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다. /본인 제공

20년 넘게 신규 조직을 이끌다 보니 번아웃이 왔다. “제가 직접 수신인이 아닌 참조한 메일에도 확인했다는 회신을 일일이 보내는 꼼꼼한 성격입니다. 이렇게 일하니 회사와 관련된 모든 연락이 제게 오더라고요. 지쳤습니다. 휴식이 필요한 것 같아 2019년 퇴사했어요. 한숨 돌릴 겸 2주간 스페인 여행을 떠나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었죠.”

쉬는 동안에도 함께 일하자는 연락이 끊임없었다. 그 손길이 신사업의 실마리가 됐다. “리뉴얼을 앞둔 화장품 브랜드의 총괄 본부장이 돼 달라는 성형외과 원장님의 부탁, 신규 사업 관련해 조언해달라는 옛 동료의 요청이 줄을 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바라는 신상품 기획이나 팀빌딩은 40대 중반인 저보다는 30대 후배들의 몫이라고 생각해 고사했죠. 그런데도 제안을 계속 받으니까 이참에 사업자를 내고 내 일을 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2020년 1월 헬스뷰티 케어 스타트업 콘트롤엔을 설립했다. 가장 잘하는 화장품 사업부터 시작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사업 방향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신사업을 펼치기엔 시장 상황이 너무 안 좋았죠. 새로운 영역을 찾다 건강기능식에 주목했습니다. 간편하게 건강을 관리하는 건강기능식과 간편식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거든요.”

30~50대 여성을 위한 헬스케어 브랜드 ‘리드마인’을 만들었다. ‘나만의 리듬’이라는 뜻이다. “그동안 화장품 업계에서 1020 세대를 대상으로 일했어요. 이젠 제 또래 세대의 고민에 공감하는 브랜드를 만들기로 했죠.”

◇'많이 먹으면 살쪄요' 솔직함으로 어필

백화점 매대에 진열된 리드마인 무화과 콜라겐 상품을 살펴보고 있는 박 대표. /본인 제공

‘몸이 예전 같지 않다’던 친구들의 고민에 콜라겐 제품을 떠올렸다. “40대부터 체내 콜라겐 합성 능력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20대의 절반 수준이죠. 콜라겐이 부족하면 관절이 불편해지고 모발과 손톱도 얇아져요. 잔주름은 깊어지죠. 무작정 달려오다 번아웃이 온 여성들이 자신을 보듬어줄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미용과 건강관리에 탁월한 콜라겐이 제격이었죠.”

젤리형 콜라겐 시장의 대세는 타트체리, 석류, 자몽 맛이었다. 안정적이면서도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 “무화과를 넣은 콜라겐은 국내 최초입니다. 사실 무화과는 젊은 세대에게 친숙한 과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저희 세대에겐 어릴 적부터 먹고 자란 애틋한 기억이 있는 과일이죠.”

7개월 동안 샘플 테스트만 열댓 번을 거쳤다.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데 집중했다. “들어간 성분이 4가지뿐입니다. 콜라겐과 무화과농축액의 합만 98.49%에 달하죠. 1박스(14포)당 무화과 100개가 담긴 양입니다. 콜라겐의 경우 동물 콜라겐보다 흡수율이 높은 저분자 피쉬콜라겐을 썼구요. 동물 콜라겐 입자는 흡수율이 2%에 불과하지만 생선 콜라겐은 입자가 작아서 흡수율이 84%나 돼요.”

창업 1년 만에 판매처를 빠르게 확대했다. 세련됨보다는 친숙함으로 다가간 덕이다. “구매자들에게 전화로 ‘하루 3개 이상 먹으면 살찐다’는 등 제품 섭취법을 솔직하게 설명했어요. 시력이 저하되는 50대 이상 소비자를 위해서 ‘디자인적으로 예쁘지 않다’는 만류에도 굴하지 않고 제품 안내 책자 폰트를 크게 키웠죠. 그렇게 했더니 입소문이 나서 3개월 만에 초도물량이 다 나갔어요. 주요 온라인몰 뿐 아니라 백화점 팝업 스토어까지 진출했습니다.”

◇전 직장 동료들이 팀원으로 합류

박지은 콘트롤엔 대표. /더비비드

창업으로 번아웃을 극복했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시밭길에 동참한 팀원들의 존재가 가장 큰 힘이다. “6명의 직원이 함께하고 있는데, 대부분 전 직장 동료들입니다. 연봉을 낮추고 온 팀원도 있습니다. 미안하고 고맙죠. 회사 식구들의 상황이 제 선택에 좌우된다고 생각하면,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창업 후 세상의 모든 대표를 존경하게 됐어요. 정답이 없는 길을 걷고 있으니까요.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앞으로도 낀 세대들의 건강 증진에 힘쓸 계획이다. “소비자에게 필요한 것을 만들어주는, 소비자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브랜드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