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중동 전쟁 대응’을 명분으로 26조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했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 몫 예산도 1조9374억원에 이릅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수출기업 긴급 지원(4622억원)도, 소상공인 경영안정(5852억원)도 아닙니다. ‘스타트업 열풍 조성’ 명목의 8031억원입니다. 중기부 추경예산의 41%나 되는 액수입니다.
그 안에서도 유독 눈길을 끄는 항목이 있습니다.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에 배정된 1550억원입니다. 전국에서 5000명을 선발해 단계별 오디션 방식으로 창업을 지원하는 이 사업은, 전쟁 피해 수출기업 물류비를 보전하는 수출바우처(1000억원)보다 많은 예산을 받았습니다. 중동 전쟁과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자료는 찾기가 어렵습니다.
모두의 창업은 네이버 대표 출신인 한성숙 장관이 올 초부터 트레이드마크 정책으로 밀어붙인 사업입니다. 추경이 확정되기도 전에 기존 사업 예산부터 끌어다 집행했을 정도입니다. 강승규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예비창업패키지(260억원)·창업중심대학(176억원)·혁신소상공인창업지원(192억원) 등에서 628억원을 떼어내 사업을 먼저 시작했습니다. 예산을 빼앗긴 예비창업패키지는 지원 인원이 750명에서 300명으로, 사업화 자금 상한은 8000만원에서 4000만원으로 반 토막 났습니다. 올해 초 사업 설명회에서 전년도 기준으로 안내받고 계획을 세웠던 예비창업자들은 공고가 나온 뒤에야 내용이 바뀐 것을 알았습니다.
중기부는 “예비창업패키지의 보육 기능을 강화·개편한 것이 모두의 창업”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겹치는 대상을 두고 기존 사업을 줄여 새 사업을 만든 것이라면, 이는 개편이 아니라 간판 갈이입니다.
이번 추경 1550억원을 더하면 ‘모두의 창업’에 투입되는 총액은 2178억원에 달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1년에 한 번은 너무 적다”고 주문하자, 연내 두세 차례 더 열 수 있는 예산을 ‘전쟁 추경’으로 한꺼번에 확보한 셈입니다. 전시 재정의 긴박함을 빌린 2000억원짜리 창업 오디션이 부디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성과를 내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