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태양광 발전이 많은 낮 시간대 전기 요금을 낮추고 밤 시간대 요금을 올리는 방식의 전기 요금제 개편을 추진하는 가운데, 주물·단조·표면 도금 등 전기 사용량이 많은 뿌리 중소기업들이 “요금이 오히려 오를 수 있다”고 우려를 표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업종들은 그동안 심야 경부하 요금을 활용하기 위해 야간 조업을 늘려 왔기 때문에 요금 체계가 바뀌면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낮 시간대 전기 요금을 낮추고 저녁 시간대 요금을 올리는 방향의 계시별 전기 요금제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 태양광 발전량이 많은 낮에는 전기 요금을 낮추고, 해가 지는 저녁에는 요금을 높여 전력 수요를 조정하겠다는 취지다. 또 심야 경부하 요금은 인상하고 최대부하 요금은 낮추는 방안도 함께 논의되고 있다. 기후부는 이 같은 개편안을 이달 중 확정할 계획이다.
◇“24시간 공장 많은데 요금 오를 수도”
문제는 전력 의존도가 높은 뿌리 제조업의 생산 구조다. 주물·단조·표면도금 등 업종은 매출의 20~30%를 전기요금으로 사용할 정도로 전력비 부담이 크다. 전기로를 껐다 켜는 과정에서 전력 소모가 커 24시간 공장을 가동하는 곳도 많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전기요금 개편안의 뿌리업종 영향 관련 의견 청취 결과 조사 대상 기업 중 절반 가량은 “요금제 개편 이후 전기료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뿌리 업종 38개사를 대상으로 진행됐고, 그중 26개사(68%)는 24시간 가동, 2개사(5%)는 야간 중심 가동 체제를 운영하고 있었다. 주간 중심 가동 기업은 10개사(26%)에 그쳤다. 특히 단조와 열처리 업종은 24시간 또는 야간 중심 가동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응답 기업들은 낮 요금 인하·저녁 요금 인상 정책에 대해 “주간 중심 조업 기업은 요금이 내려갈 수 있지만 야간 중심 또는 24시간 가동 기업은 오히려 인상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다만 구체적인 요금 인상·인하 폭이 제시되지 않아 실제 영향은 판단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많았다.
◇“조업 시간 바꾸기도 현실적으로 어려워”
정부는 봄·가을철 주말 전기 요금을 낮추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응답 기업들은 주말 인건비 부담과 주 52시간제, 거래처 생산 일정 등을 이유로 주말 조업 확대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응답 기업의 70% 이상은 전기 요금 절감을 위해 조업 시간을 바꾸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조업 시간을 조정하면 인건비와 관리비가 증가하고 거래처 일정과도 맞지 않는 반면 전기 요금 절감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긴급 조사다 보니 표본이 작고 24시간, 야간 가동 기업 중심으로 응답이 집중됐을 수 있지만 뿌리 업종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큰 것은 사실”이라며 “추후 정부 측에 관련 의견을 전달할 계획”이라고 했다.
현장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온다. 경북의 한 주물업체 대표는 “주야를 풀가동하는 공장 입장에서는 낮 요금을 내리고 밤 요금을 올려도 체감 차이가 크지 않다”며 “오히려 그동안 저렴하던 심야 전기 요금을 왜 올리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중소 제조업 경쟁력을 고려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기후부는 별도 구제책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기후부 관계자는 “시뮬레이션 결과 낮 시간 조업이 많은 경우 전체 전기 요금이 줄어드는 형태가 나타난다”며 “특정 업종에 대한 별도 면제나 예외 조항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계시별 요금제와 함께 지역별 차등 요금제를 도입해 뿌리 업종을 비롯해 심야 가동 비율이 높은 제조 기업의 전기료 부담을 줄여주는 보완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