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이 노동 규제 강화와 대외 불확실성이라는 복합 악재에 직면하고 있다. 이른바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산업 현장의 파업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충돌로 국제 유가까지 상승하면서 중소기업의 생산 물량은 줄고 비용 부담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10일 본격 시행되면서 중소기업계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사용자의 범위를 기존 근로계약 당사자뿐 아니라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까지 확대했다. 또한 노동조합의 쟁의 범위도 기존의 근로조건뿐 아니라 기업의 경영상 판단까지 넓어졌다.

◇원청 파업, 협력 中企 직격탄…‘생산 감소·R&D 지원 단절’ 우려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하청업체 노동조합이 원청업체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에는 원청 기업 노조 중심으로 교섭이 이뤄졌지만, 앞으로는 하청 노조도 원청 사용자에게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대기업 생산공장 앞에서 노동조합이 파업 집회를 열고 있다. 10일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하청업체 노동조합이 원청업체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뉴스1

실제로 소규모 노조의 비중도 상당하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2월 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조합원 30명 미만의 소규모 노조는 2421개로 전체 노조 6125개의 39.5%를 차지한다. 이러한 구조에서 교섭 요구와 노사 갈등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중소기업 현장에서 제기되고 있다.

중소기업계는 특히 원청 기업의 파업이 협력 중소기업의 생산 물량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완성차업체나 대형 제조업체에서 파업이 발생하면 생산량이 줄고, 협력업체에 내려오는 주문 물량이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 부품업체 A사 대표는 “완성차 업체에서 파업이 늘어나면 협력업체는 물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이미 수익성이 낮은 상황에서 생산량까지 감소하면 경영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주 52시간 근로제 때문에 생산량을 탄력적으로 늘리기도 어려워 대응 여력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조선, 철강, 건설 등 대규모 협력업체 구조가 형성된 산업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나온다. 노란봉투법을 통해 보다 수평적인 원·하청 관계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법 개정 취지와는 달리, 실제 현장에서는 노사 분쟁이 확대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협력 구조가 오히려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대기업이 노동 분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국내 부품업체 대신 해외 부품을 사용하는 사례가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병채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교수(한국중소기업학회장)는 “대기업과 협력 중소·중견기업의 관계는 단순 납품 구조를 넘어 대기업이 협력업체의 연구개발(R&D)을 지원하고 생산성과 품질을 함께 높이는 협력 모델로 발전해 왔다”며 “원청과 하청이 동시에 노사 분쟁에 휘말릴 경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협력 생태계 구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제도 보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양옥석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예상되는 부작용을 보완할 정책적 장치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며 “사업주의 방어권을 일정 부분 보장하고 원청과 하청이 동시에 노사 분쟁에 휘말리는 상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동 리스크에 유가 급등…제조업 비용 부담

이재명 대통령은 10일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과 협력 중소기업 경영진을 초청해 ‘상생 간담회’를 개최한다. /뉴스1

중동 정세 불안도 중소기업의 부담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군사적 충돌이 확산되면서 국제 유가가 상승하고, 원자재 가격 변동성도 커지고 있다.

지난 9일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유가 상승은 기업의 생산 비용과 물류비를 동시에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생산 물량 감소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에너지 비용과 원자재 가격까지 상승할 경우 중소 제조업체의 경영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10일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네이버 등 대기업과 협력 중소기업 경영진을 초청해 ‘상생 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번 간담회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협력 우수 사례를 공유하고 협력 모델 확산 방안을 모색한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산업 현장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 방안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중소벤처기업부 한성숙 장관도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다.

국내 한 대학의 경영학 교수는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노사 갈등 리스크가 커진 상황에서 정부가 상생 협력을 강조하면서 산업 현장에서 혼란이 나타날 수 있다”며 “노동 정책 변화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협력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면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