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 등으로 원·달러 환율이 한때 1500원을 넘어서자 중소기업계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 원자재를 해외에서 들여오는 국내 중소 제조업체들의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어서다.
4일 중소기업 업계에 따르면 최근 진정세를 보이던 환율이 지정학적 리스크로 다시 급등하면서 수입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중소 제조업체들의 원가 부담과 경영 불확실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연평균 원·달러 환율이 1422원을 기록하며 1400원대가 ‘뉴노멀’로 불렸다. 환율은 지난달 말 1420원까지 떨어졌으나 미국과 이란의 갈등 격화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겹치면서 이날 장중 한때 1500원을 돌파했다. 환율이 1500원을 넘은 사례는 1997년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환율 급등은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중소 제조업체의 원가 부담으로 직결된다. 굴착 장비 부품 제조 등 핵심 원자재를 중국에서 수입하는 중소기업들은 환율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을 떠안는 구조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도 3배 가까이 오른 상황에서 환율까지 오르면 수익이 더 떨어진다”며 “제품을 팔아도 손에 쥐는 게 없고, 그렇다고 일을 안 할 수도 없어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환율로 인한 환차손 발생도 중소기업 피해를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1월 중소기업 36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고환율 관련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환율 급등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응답한 기업이 51.4%에 달했다. 이 가운데 환차손 발생과 고환율로 인한 생산비용 증가를 꼽은 기업이 절반을 넘었다.
수도권의 한 기계 부품 제조 중소기업은 해외에서 원자재인 알루미늄과 아연 등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환율 상승으로 환차손을 겪었다.
업체 관계자는 “1300원대였던 환율이 2024년말부터 1400원을 넘어 원자재 계약을 한 뒤 결제 시점에는 예상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급해야 했다”며 “이번에 환율이 1500원선에 닿으면서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을지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계는 미국과 이란 사태가 조기에 안정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분쟁이 장기화할 경우 원자재 수입 기업뿐 아니라 수출 기업도 사업 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 중소기업의 중동 권역 수출액은 9조5000억원, 수출 기업 수는 1만3956곳에 달해 중동 시장의 비율도 적지 않다.
정부는 고환율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정책을 마련한 상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고환율 장기화 시 피해가 발생할 원·부자재 수입 중소기업·소상공인의 대출 만기연장 등을 검토하기로 결정했다. 수출기업 중심의 환리스크 정책 지원을 원·부자재를 수입하는 내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까지 확대했다.
김희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시급한 부분은 대출 만기연장 등이 맞다”며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석유화학, 플라스틱, 섬유업계 등이 큰 영향을 받아 꾸준한 모니터링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환율 위험 대비는 위기 상황에서 갑자기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평상시부터 관리해야 하는 문제”라며 “정부가 직접적으로 지원하기 어려운 만큼, 기업들이 환율 변화로 손해를 보면 손실을 일부 보전해주는 환변동보험 등을 활용해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