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임금 근로자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OECD 국가 중 6위지만,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31위로 한국이 선진국 중 거의 유일하게 노동집약형 경제구조를 갖는 국가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KOSI) 연구실장은 5일 벤처·스타트업의 근로시간 운용 및 일하는 방식 혁신 방안을 주제로 열린 ‘2026년 제1차 KOSI 심포지엄’에서 이 같은 조사를 발표하며 “근로시간 단축 시 생산성 구조의 전환을 통해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에서 주 4.5일제를 비롯해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생산성 향상이 선행 과제란 점이 다시 한 번 국제적인 노동생산성 비교를 통해 강조된 것이다.
노민선 실장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1859시간으로 OECD 국가 중 6위였다. 이는 1위인 멕시코(2308시간)보다 449시간 짧고, OECD 평균(1708시간) 대비 151시간 긴 수준이다. 문제는 한국의 근로시간 감소 폭이 남들보다 빠르다는 것이다. 2020년에서 2024년 사이 한국은 근로시간이 68시간 줄었지만, OECD 평균은 도리어 36시간 늘었다. 일본은 15시간, 이스라엘은 99시간이 늘어났고, 미국도 9시간만 줄어들었다.
OECD와 일본생산성본부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과 G7의 근로시간과 노동생산성을 함께 비교한 결과는 더 충격적이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57.5PPP US$로 31위다. 근로시간과 정반대로 하위권인 것이다. 반면 미국은 근로시간은 1810시간으로 한국과 비슷하나 노동생산성은 116.5PPP US$로 최상위권에 속했다.
노 실장은 이를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첫째는 미국처럼 근로시간이 길고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높은 ‘성과 중심형’, 둘째는 독일·프랑스·영국처럼 근로시간이 짧고,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높은 ‘효율 추구형’, 셋째는 일본처럼 근로시간이 짧고,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낮은 ‘현상 유지형’이다. 우리나라는 근로시간이 길고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낮은 ‘노동집약형’이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코로나19 회복 국면에서 대·중소기업 간 노동생산성 격차가 확대된 것도 변수다. 한국생산성본부에 따르면, 중소 서비스업의 노동생산성은 2023년 기준 중소 제조업의 24.6% 수준에 불과했으며, 대기업 제조업 대비 중소 제조업의 노동생산성 비율은 2020년 36.1%에서 2023년 32.8%로 감소했다. 중소기업의 경우 생산성을 더더욱 끌어올리는 것이 급선무란 뜻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소기업 상용 근로자 수는 최근 10년간 28.6% 늘었고, 비율 역시 2015년 61.6%에서 작년 71%로 10%포인트 가까이 늘었다. 노민선 실장은 “이 같은 중소기업 현장에서 근로시간 단축은 매우 어려운 과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AI 및 스타트업 연구·개발 분야에 대해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거나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활용 기간을 대폭 확대하는 등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하고 일하는 방식을 혁신해야 한다”고 했다.
주제 발표 후에는 배규식 전 한국노동연구원장을 좌장으로, 산업계·학계·연구계 전문가들이 종합 토론에 참여했다. 박환수 한국SW·ICT총연합회 사무총장은 “AI·SW·R&D 직무는 몰입과 연속적 사고가 필수적인 만큼 근로시간 운용은 총량 규제 중심에서 프로젝트 단위로 전환하고, 근태·성과 관리 도구, AI 전환과 교육을 묶은 통합적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스타트업을 세워 활동하고 있는 최대우 애자일소다 대표는 “AI 기반 업무 자동화 등을 통해 노동시간은 줄이고 생산성은 높이는 방향으로 일하는 방식을 재설계하고 있다”며 “벤처·스타트업이 먼저 실험하고 성과를 공유하는 것이 생태계 전체의 혁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안준모 고려대 교수는 “AI·첨단 기술 분야는 시장 선점을 위한 고강도 경쟁 현실을 고려한 유연한 노동 여건 운용이 필요하다”고 했다. 반면 윤동열 건국대 교수는 “근로 시간 유연화는 필요하지만, 평균 관리, 휴식권 보장, 기록 의무 등과 결합된 패키지로 설계되지 않으면 제도 남용 위험이 크다”고 우려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