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기 제조업체 신도리코가 보유한 자사주 비율이 발행 주식 15%를 넘어섰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어 당장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우호적인 제3자에게 매각하거나 전략적 투자자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3세 승계 절차는 사실상 마무리됐으나 남은 지분 이전과 세대 교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변수에 대비해 경영권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일러스트=Gemini

16일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신도리코는 삼성증권과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을 체결하고 분할 매수를 통해 주식을 확보했다. 신도리코는 지난해 10월부터 11월까지 장내에서 보통주 7만 주를 취득했다. 신도리코 자사주 보유량은 152만7250주로, 발행 주식 대비 비율은 14.46%에서 15.15%로 증가했다.

신도리코는 3세 승계 절차를 사실상 마무리한 상태다. 신도리코 최대주주는 통신기기 도소매와 부동산임대업을 영위하는 신도SDR이다. 신도SDR은 신도리코 주식 22.63%를 가지고 있다. 신도SDR의 최대주주는 신도시스템이다.

우석형(71) 신도리코 회장은 우상기 신도리코 창업자의 장남으로, 오너 일가 2세다. 우 회장의 1남 2녀 중 맏아들인 우승협 전무는 우상기 창업자의 손자로, 신도시스템 최대주주에 올라 있는 3세 경영인이다.

우 전무는 신도시스템 주식 약 50%를 보유해 신도시스템→신도SDR→신도리코로 이어지는 지배력을 확보했다. 우 회장은 신도리코 지분 11.78%를 가지고 있다.

우 전무는 1994년생으로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교에서 재무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22년 신도리코에 입사해 2024년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신도리코 지배 구조의 정점이자 우 전무가 최대주주로 있는 신도시스템은 1988년 설립된 회사로 2024년 매출 약 54억원에 불과하다.

복사기 임대나 교육 인프라 구축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했으나 현재는 모두 중단한 상태다. 영업 수익은 배당금 수익과 관계 기업에 대한 지분법 이익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지분법 이익은 다른 회사에 지분을 갖고 있으면서 그 회사가 번 이익 가운데 자기 지분율만큼을 ‘내 이익처럼’ 인식하는 회계상 수익을 의미한다.

그래픽=정서희

우 전무가 입사한 뒤 신도리코 매출은 널뛰고 있다. 2022년 연결 기준 매출 약 3822억원에서 이듬해 4000억원을 웃도는 매출을 기록했으나 2024년 3409억원가량으로 감소했다. 2022년 약 450억원인 당기순이익이 2024년 731억원으로 크게 늘었지만 본업 개선보다 금융 수익 확대의 영향이 컸다. 같은 해 금융 수익은 약 796억원으로 늘었고, 금융 수익 확대와 환율 변동에 따른 외화 환산 이익 등이 맞물리며 순이익이 증가했다.

시장에서는 신도리코가 본업 확대 대신 투자를 병행하며 경영권 안정과 자산 운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분석한다. 신도리코는 2021~2022년 국내외 공장 부지와 사옥을 매각했으나 일본 도쿄 상업용 건물과 성수동 부지 매입에 각각 1218억원, 2200억원을 썼다. 2019년 말 722명이던 직원 수도 2024년 말 285명으로 줄였다.

우 회장 자녀들도 경영 컨설팅에 집중하는 등 본업과 거리를 두고 있다. 우 회장 딸인 우지원 신도리코 전무와 우승협 전무가 운영하는 ‘비즈디움’은 경영 컨설팅과 부동산 임대업을 영위하고 있다. 지난해 경영 컨설팅업을 핵심 사업으로 정하고 기업 투자 담당 인력도 늘렸다.

일각에서는 신도리코가 본업에 집중하지 않는 이유로 ‘편법 승계’를 꼽기도 한다. 지배구조상 3세 승계는 정리됐지만, 우 회장이 보유한 지분을 향후 이전할 때 발생하는 상속·증여세 부담이 남아있다. 신도리코와 같은 상장사는 상속·증여 시 평가일 전후 각 2개월, 총 4개월간의 평균 종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겨 주가가 낮을수록 세금 부담이 줄어든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신도리코의 자산 가치 대비 낮은 시가총액을 지적했다. 그는 “시장에서는 승계나 세금 절감을 염두에 둔 인위적 조정이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기업 자문 전문 변호사는 “최근 3세들이 기존 사업을 직접 키우기보다는 비교적 자본 투입 부담이 적고, 의사 결정과 자금 운용의 재량이 큰 영역에 관심을 두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복합기 제조·판매·임대는 성장 산업도 아니고 실적이 주가 평가나 책임으로 연결될 수 있다”며 “3세들은 기존 사업은 그대로 유지한 채 더 큰 수익을 내고 성과 변동이 적은 영역을 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