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박장시의 서진시스템 4공장에서 로봇 팔 두 대가 높이만 2.4m에 이르는 ESS(에너지저장장치)의 후면 접합부를 용접하고 있다. 이 공장에선 배터리 셀을 만드는 것만 빼고 ESS 한 대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핵심 부품 150여 개를 모두 생산한다. /장우정 기자

“치지직, 치지직.”

지난달 19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북동쪽으로 50㎞ 떨어진 박장시(市). 서진시스템 4공장에선 로봇 팔 두 대가 길이 6m, 폭 2.9m, 높이 2.4m의 20피트급 ESS(에너지저장장치)의 후면을 오가며 쉼없이 용접 불꽃을 튀겼다.

20피트급 ESS는 해상용 표준 컨테이너 안에 약 1만개의 배터리 셀과 공조·소화 설비를 탑재해 만든 초대형 이동식 보조배터리다. 운송이 쉽고 블록처럼 쌓아 용량을 자유롭게 늘릴 수 있다. 이 회사 베트남 법인 김태홍 부사장은 “용접 중인 제품은 대당 5메가와트시(MWh)를 저장하는 주력 제품”이라며 “관세 문제로 보류됐던 미국발 주문이 재개되면서 공장이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축구장 100개를 합친 면적(70만㎡·약 21만 평) 부지 안에 들어선 6개 공장은 거대한 제조 요새였다. 카트를 타고 돌아본 1~6공장에선 시뻘건 쇳물을 틀에 붓는 주물 공정부터 판금·금형·가공·도장, 최종 조립에 이르기까지 ESS 한 대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제조 공정이 이뤄지고 있었다.

◇베트남 이어 美서도 ESS 생산라인 가동

서진시스템의 핵심 경쟁력은 이런 완벽한 내재화다. 다른 ESS 제조사들이 부품을 사와 조립하는 것과 달리, 원자재 가공부터 완제품 조립까지 한 공장에서 다 해결한다. 컨테이너 프레임뿐 아니라 배터리 셀을 묶는 랙(Rack), 화재를 막는 배터리관리시스템, 전력변환장치, 심지어 케이블까지 만든다. 배터리 셀을 제외한 ESS 핵심 부품 150여 개가 이곳에서 탄생한다.

글로벌 1위 ESS 기업 미국 플루언스가 2021년부터 서진에서 납품받는 것도, 한국 배터리 3사가 이곳에 물량을 맡기는 것도 이 같은 원스톱 제조 역량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은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납품된다. 서진시스템이 ‘ESS계 폭스콘(애플 아이폰을 만드는 대만의 세계 최대 OEM 업체)’이라 불리는 이유다. 이런 제조 시스템은 반도체 금형 엔지니어로 밑바닥부터 기술을 익힌 창업자 전동규 대표의 이력과 맞닿아 있다. 그는 지금도 1년의 절반 이상을 베트남에 머물며 생산 라인 하나하나를 직접 챙긴다.

그래픽=박상훈

◇로봇 파운드리 시장에도 출사표

1996년 통신장비 부품사로 출발한 서진시스템은 반도체 장비, ESS로 영토를 넓히며 지난해 매출 1조원(추산)을 달성했다. ESS가 전체 매출의 37%를 차지한다. 3~4월에는 미 텍사스 공장을 가동하며 현지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낸다. 수주 잔고를 고려할 때 올해 매출은 1조8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게 증권가 전망이다.

반도체 장비 사업도 또 하나의 핵심 축이다. 웨이퍼 이송 장비부터, 파워박스 등 핵심 부품을 만들어 글로벌 고객사에 납품한다. 최근 인쇄회로기판(PCB) 생산도 시작했다. 중국산 부품을 배제하려는 기류에 힘입어 수혜를 보고 있다. 중국의 저가 공세에도 PCB 국산화를 고집해 온 전략이 빛을 보는 것이다.

서진시스템은 제조 역량을 내세워 로봇 파운드리(위탁생산) 시장에도 뛰어든다는 구상이다. 이미 국내 대기업 자동화 생산라인에 들어가는 로봇 팔을 소량 OEM으로 제작해왔다. 로봇 사업을 총괄하는 성동수 사장은 “휴머노이드의 팔과 다리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액추에이터용 고출력 모터, 초박형 잠금장치, 고정밀 감속기 등 핵심 부품을 자체 제작할 수 있는 점이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ESS(에너지저장장치)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한 시점에 공급하는 대용량 배터리. 리튬이온 배터리 등을 기반으로 충·방전을 제어하는 장치와 관리 소프트웨어로 구성된다. 발전량이 불규칙한 태양광·풍력의 전력 공급을 안정화하고, 급증하는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에 대응하는 필수 인프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