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가 미국에 2024년 11월 오픈한 'KSC'. 갈비 등을 주력으로 판다. /KSC 인스타그램 캡처

창립 70주년(2025년 기준)을 지낸 도시가스 기업 삼천리그룹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지도표 성경김’으로 잘 알려진 성경식품을 지난해 12월 26일 1195억원에 인수하기로 하면서다. 도시가스와 김. 언뜻 접점이 없어 보이지만, 재계에서는 이번 거래를 삼천리의 신사업 전략이 본격적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해석한다.

이 결정의 중심에는 회사의 신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오너 3세’ 이은선 미래사업총괄 부사장이 있다. 이 부사장은 창업주 고(故) 이장균 회장의 손녀이자, 이만득 명예회장의 막내딸로, 현재 이은백 전략총괄 사장(이 회장의 조카)과 함께 경영 수업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이번 성경식품 인수는 이 부사장이 맡고 있는 ‘미래사업’의 색깔이 비교적 또렷하게 드러난 첫 대형 거래로 꼽힌다.

삼천리는 도매업자인 한국가스공사가 수입한 천연가스를 사들여 일정 마진을 붙인 뒤 경기도·인천 지역에 공급하며 전체 매출의 70%가량을 도시가스에서 올리는 회사다. 안정적인 사업 구조를 갖고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성장 속도는 제한적이다. 신사업 확대를 통한 성장동력 확보가 오랜 과제로 꼽혀온 이유다. 이 때문에 삼천리는 ‘생활문화’를 한 축으로 외식업과 자동차 딜러 사업을 키워왔다.

외식 사업은 100% 자회사 삼천리이엔지를 통해 전개하고 있다. 2008년 중식 브랜드 ‘차이797’을 시작으로, 2017년 한우 전문점 ‘바른고기 정육점’, 2020년 한식 직화구이 ‘서리재’, 2021년 홍콩식 대중음식점 ‘호우섬’ 등을 잇따라 선보이며 외형 성장세를 이어갔다. 최근 외식 매출은 2023년 837억원에서 2024년 923억원으로 증가했다. 다만 삼천리의 2024년 전체 매출(5조1205억원)과 비교하면 기여도는 2%에도 미치지 못한다.

문제는 규모보다 구조다. 매장 수를 늘릴수록 인건비·임차료·식자재비 부담이 함께 커지면서, 매출은 늘어도 수익성이 쉽게 개선되지 않는 외식업의 한계가 분명해졌다는 평가다. 실제 외식 매출이 늘어난 만큼 매출 원가도 가파르게 증가했다. 외식만으로 생활 문화 사업의 존재감을 키우기엔 한계가 뚜렷해진 셈이다.

삼천리그룹이 최근 성경식품의 주식 100%를 약 1200억원에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왼쪽에서 두번째가 이은선 삼천리 미래사업총괄 부사장. /삼천리

이 지점에서 등장한 해법이 바로 ‘김’이다. 1981년 대전에서 출발한 성경식품은 K김 열풍을 타고 최근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지난해 연 매출은 약 1300억원, 이 가운데 40%가 수출, 특히 미국 비중이 압도적이라고 한다. 김은 이미 대한민국 수출 10대 품목에 이름을 올린 검증된 수출 아이템이기도 하다. 업계에서는 외식에서 확보한 고객 접점을 제조·수출형 K푸드로 확장할 수 있다는 이 부사장의 계산이 반영됐다고 본다.

최근 삼천리가 해외 외식 사업에 힘을 싣고 있는 점도 이 같은 해석에 힘을 보탠다. 삼천리는 2024년 1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갈비 전문 한식당 ‘KSC(Kalbi Social Club)’를 론칭했고, 지난달 22일 일본 도쿄에 2호점을 열었다. 삼천리 관계자는 “김 수요가 높은 미국과 일본에서 외식 사업을 전개 중인 만큼, 성경김을 반찬으로 제공하거나 직접 판매하는 방식 등 다양한 시너지를 검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외식은 브랜드 경험의 창구로, 김은 ‘확실한 수출 아이템’으로 승부수로 택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 부사장이 K푸드 열풍을 타고 생활문화 사업에서 확실한 성적표를 받아들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현재 기준 삼천리의 최대주주는 지분 9.18%를 보유한 이은백 사장이다. 이은선 부사장의 지분은 0.67%에 그치지만, 부친인 이만득 명예회장(8.34%)과 두 언니 역시 각각 0.6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 명예회장의 동업자인 유상덕 에스티인터내셔널코퍼레이션 회장 일가도 19.52%의 지분을 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