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부산 강서구의 조선 기자재 기업 KTE에서 구본승 대표가 회사 매출 70% 이상을 맡고 있는 선박용 고압 배전반을 점검하고 있다. /김동환 기자

거대한 선박을 움직이는 심장이 엔진이라면, 선내의 조타 장치와 항해 장비, 펌프, 조명, 냉동 설비, IT·통신 등을 움직이는 건 전기다. 발전기가 만든 전기의 전압을 바꿔 안정적으로 분배하고, 사고(단락·과전류)를 막는 것이 배전반(配電盤)이다. 전기가 끊기면 항해·통신·냉각·안전 장치가 모두 멈출 수 있어, 배전반은 ‘선박의 신경망’으로 불린다.

부산 강서구 녹산국가산업단지 내 조선 기자재 기업 KTE는 배전반 국산화를 목표로 1979년 첫발을 떼 반세기 가까이 한길을 걸어왔다. 이젠 부품 국산화를 넘어 잠수함의 두뇌까지 설계하는 글로벌 기술 기업으로 도약한 공로를 인정받아,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기업중앙회가 뽑는 ‘2025년 명문 장수 기업’으로 선정됐다.

KTE 매출의 70% 이상은 배전반에서 나온다. 이 회사의 배전반은 HD현대중공업·한화오션·삼성중공업 등 주요 조선소에 공급된다. 한국 조선이 초대형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수주로 대호황을 맞았던 지난해 매출 1627억원, 영업이익 194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KTE는 최근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육상용 배전반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잠수함의 두뇌부터 친환경 추진기까지

명문장수기업 로고 /중소기업중앙회

KTE의 역사는 국산화를 향한 집념의 기록이다. 창업주 구자영 회장은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나와 상공부(현 산업통상부) 조선과장을 지냈다. 한국 조선업의 태동기를 목격한 ‘조선 1세대’다. 그는 해외 장비에 의존하던 현실을 바꾸고자 “배전반만큼은 우리 손으로 만들자”며 창업에 나섰다. 자본도 기술도 없던 시절, 직원 60여 명을 일본으로 기술 연수를 보낼 만큼 인재 육성에 승부를 걸었다.

그 뚝심은 위기에서 빛을 발했다. 2000년대 글로벌 금융 위기로 조선업에 한파가 닥치자, KTE는 방위 산업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잠수함의 두뇌’로 불리는 통합 플랫폼 관리 시스템(IPMS)이다. 잠수함 내부의 전력·추진·제어 계통을 통합 관리하는 핵심 장비다. 2012년부터 회사를 이끌고 있는 2대 구본승 대표는 “해외 업체들이 ‘절대 못 만든다’고 했지만 5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국산화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KTE의 기술은 한국 해군의 핵심 함정들에 녹아있다. 한국형 잠수함인 ‘도산안창호함’ 3척과 ‘장영실함’ 3척에 IPMS와 전력 변환 장치, 연료전지 제어 장치 등을 공급했다. 특히 장영실함에는 배터리 이상 징후 시 100만분의 1초 만에 전력을 차단하는 첨단 안전 장치도 납품했다. 최근에는 전기로만 항해하는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용 고압 배전반 납품도 추진 중이다.

◇영업익 30%는 임직원과 공유

KTE는 친환경 에너지 시장도 겨냥하고 있다. 프로펠러 날개 자체를 모터로 회전시켜 소음과 진동을 획기적으로 줄인 친환경 림 구동 스러스터(추진기) 개발에도 성공했다. 에너지 효율이 높아 연안선 등 중소형 선박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건실한 성장과 장수의 이면에는 사람 중심 경영이 있다. KTE는 매년 영업이익의 30%를 임직원에게 성과급으로 지급한다. 구 대표는 “호황의 과실을 직원과 나누지 않으면 다음 불황을 함께 버틸 수 없다”며 “직원들이 회사를 믿어야 기술도 쌓인다”고 말했다. 만 35세 미만 미혼 직원에게 월 20만원의 월세도 지원한다.

구 대표는 ‘조선업 제2의 호황’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사이클 산업인 조선업 경기가 피크를 향해 가는 시점에 한미 조선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가 나왔다”며 “반세기 동안 기술력을 쌓은 KTE는 그 파도를 탈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