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최근 조직 개편을 통해 인수합병(M&A)팀을 신설했다. 빠르게 진화하는 기술 환경과 글로벌 빅테크와의 경쟁 속 기술력을 가진 국내외 기업을 인수해 성장하겠다는 것이다.
M&A는 기업이 빠르게 기술을 확보하고 성장 속도를 높이기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M&A는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의 핵심 전략으로,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중요하다.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이자, 자본력을 지닌 대기업과의 융합을 통해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 발판이 된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은 지난 9일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기술 전쟁 시대, 대기업과 기술 스타트업의 M&A가 보다 활성화돼야 한다”며 “이번 삼성전자의 M&A팀 신설을 계기로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에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유 원장은 삼성·동양·일진그룹 등에서 기획실장과 대표이사를, 동국대·숙명여대·차의과학대에서 MBA(경영학석사) 교수와 경영대학원장 등을 역임한 경제 전문가이자 스타트업·혁신 생태계를 분석해 온 연구자다.
그가 올해 출판한 <경제의 역설>은 <유니콘> <판단과 선택> <리더의 오판> 등에 이어 네번째로 세종도서에 선정됐다. 한 저자가 세종도서에 4번 선정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세종도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출판문화진흥원이 국내 출판사들의 양서 출판 의욕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사업이다. 최근 1년간 출판된 책들에 대해 판매량을 고려하지 않고 각 분야 전문가들이 오직 ‘좋은 책’인지 여부를 가려 선정한다.
◇“스타트업 생태계, 오픈이노베이션 활성화돼야”
유 원장은 삼성이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벤처투자 조직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번에 별도 M&A팀을 만들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상징성이 큽니다. 삼성이 ‘앞으로 적극적으로 기업을 인수하겠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던진 겁니다. 기존 내부 R&D 중심 성장에서 벗어나, 외부 기술과 사업을 적극적으로 흡수하는 역동적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죠. 오픈이노베이션을 본격화하겠다는 의미이며, 나아가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융합 생태계가 빠르게 확장될 수 있다는 신호입니다.”
유 원장은 인터뷰 내내 대기업과 유망 기술 스타트업·중소기업의 연결을 힘주어 말했다. 이는 최근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언급한 ‘대기업·중소기업·스타트업·소상공인이 연결된 융합 생태계 구상’과 궤를 같이한다.
유 원장은 “국내 산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일방적인 협력 구조를 갖췄다”며 “새로운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이 합류해 혁신을 만드는 구조가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는 재무적 투자자(FI)가 투자하고 기업공개(IPO)로 엑시트하는 구조만 너무 강조됐다”며 “FI는 결국 이익 실현이 목적이라 기술 판단이나 전략적 시너지 판단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삼성과 같은 전략적 투자자(SI)는 해당 분야 전문 기업이라 필요한 기술을 빠르게 판단하고 투자·인수를 결정한다”며 “스타트업이 실질적인 성장 곡선을 그리려면 SI와 지분 협력, 전략적 투자, M&A를 통해 시장과 기술을 함께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유 원장은 미국에서 기술 스타트업이 투자 없이 바로 M&A로 엑시트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을 언급하며, 한국도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령화 시대, 가업승계 아닌 M&A가 생존 해법”
유 원장은 한국 사회가 직면한 고령화 문제와 기업 구조 변화에 주목하며, M&A가 그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고령화가 심화되면, 중소·중견기업의 가업승계 이슈는 더욱 커진다”며 “현실적으로 후계자가 없는 기업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M&A는 기업의 지속성을 확보하는 핵심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는 ‘가업승계냐 M&A냐’가 아니라 ‘어떻게 M&A를 통해 산업 경쟁력을 재편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논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유 원장은 고환율 장기화 등 불안정한 대외 환경이 기업 전략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원·달러 환율이 1450원을 넘어섰고, 1400원대 고착화 가능성이 크다”며 “기업 전략을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 대기업은 환헤지가 가능하지만 중소기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고환율은 에너지와 원자재 값을 끌어올려 기업 경영에 어려움을 준다.
그는 “미 관세 압박, 미중 갈등 등 대외 변수도 겹쳐 있는 상황”이라며 “과거처럼 환율이 언젠가 다시 떨어질 거라는 안일한 생각은 위험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