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시장과 골목 상권을 살리자는 취지로 시작된 온누리상품권이 일부 병원의 매출 부양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9월 병의원 등을 포함한 12개 업종을 온누리상품권 사용 가능 업종으로 추가했는데, 시행 1년 만에 병원이 가장 큰 수혜처로 떠오른 것이다. 특히 비급여 진료비를 상품권으로 결제하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일부 병원은 온누리상품권만으로 한 해 10억원 안팎의 매출을 올리는 등 특수를 누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 결제액만 1년 새 350억
본지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중소벤처기업부 자료에 따르면, 온누리상품권 가맹 업종이 확대된 지난해 9월 10일부터 올해 8월 31일까지 1년간 상품권 사용처로 새로 등록한 병의원 1777곳의 결제액은 348억3000만원이었다. 같은 기간 상품권 사용이 가능해진 학원·노래방·골프장·역술원 등 전체 12개 업종 가맹점 3654곳의 결제액은 457억7000만원이었다. 병원 사용액이 전체 결제액의 76%를 차지한 것이다.
온누리상품권의 병원 결제액은 시행 첫 달 1억원이 채 안 됐으나, 올해 8월엔 87억원으로 급증했다. 온누리상품권 결제액이 5억원이 넘는 병원도 전국에 13곳이나 됐다. 특히 하루 내원자 250명 수준인 세종시의 물리치료 전문 A 정형외과는 1년간 온누리상품권 결제액만 13억여 원이었다. 경기도 군포의 B 치과(10억2400만원), 대전 서구의 C 의원(9억9500만원), 서울 종로 D 의원(9억3600만원), 구로 E 치과(9억3500만원) 등도 온누리상품권만으로 10억원 안팎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집계됐다.
이 병원들의 경우 온누리상품권이 환자 유인 효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온누리상품권은 종이 상품권이 5%, 모바일 상품권이 10% 할인된 가격에 판매된다. 10만원짜리 비급여 진료를 받고 온누리상품권으로 결제하면 9만원에 진료를 받는 셈이 된다. 일부 병원은 홈페이지나 소셜미디어에 ‘온누리상품권 사용 가능’ ‘할인된 가격에 진료 가능’이라는 식의 홍보 문구를 내걸기도 한다.
현재 병의원의 경우 매출 규모에 상관없이 소상공인 밀집 상권 내에 있으면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이 될 수 있다. 중기부는 “상품권 할인은 정부가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혜택이지 병원이 직접 할인하는 것이 아니므로, 의료법상 환자 유인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도수 치료 등 과잉 진료 규제를 추진 중인 보건 당국 기조와는 엇박자라는 지적이 나온다.
◇“연 매출 기준 제한 시급”
온누리상품권은 전통 시장과 골목 상권 매출을 늘려 내수를 진작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정부는 3조~4조원 수준이었던 온누리상품권 발행 목표치를 올해 5조5000억원까지 늘리며 힘을 싣고 있다. 그러나 병원 결제액이 신규 가맹 업종 전체 사용분의 4분의 3을 차지할 만큼 쏠림이 심해지면서 ‘정작 전통 시장이나 골목 상권에 온누리상품권이 제대로 돌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 때문에 국회에서는 온누리상품권 가맹 자격에 연 매출 제한(30억원 이하)을 두는 법안이 발의됐다. 대형 병원 등 고매출 업종으로 혜택이 집중되는 것을 막고 영세 소상공인이 제도의 효과를 보도록 하자는 차원이다. 김원이 의원은 “도수 치료를 주로 하는 것으로 보이는 대형 병원에서 온누리상품권 수억 원대 결제가 이뤄지는 것은 제도의 본래 취지와 맞지 않는다”며 “온누리상품권 발행을 무조건 늘리기보다는 영세 소상공인 중심의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