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를 앞둔 한 식당 입구에 '영업종료'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장련성 기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 직원입니다. 지원금 드립니다.” 올해 1월 자영업자 장모씨는 정책자금을 직접 취급하는 정부기관의 이런 문자를 받고 소진공 부산중부센터에 문의차 전화를 걸었다가 깜짝 놀랐다. ‘없는 직원’이라는 답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을 사칭한 불법 브로커(제3자 부당개입)의 접근이었다.

지난 6월 한 경영컨설팅 업체에 입사했던 오모씨는 입사 직후 곧바로 퇴사했다. 회사가 정책자금 대출을 대행하면서 신청 기업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활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씨는 해당 업체를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했다.

4일 소진공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소진공은 지난해 정책자금 사후관리 과정에서 이 같은 브로커 개입 사례 23곳을 적발했다. 총 5억4000만원 규모의 정책자금이 브로커를 통해 흘러갔고, 이 가운데 2개 업체(5500만원)에 대해서만 전액 환수가 이뤄졌다.

브로커들은 지원 자격이 안 되는 기업에 접근해 대출을 보장해주겠다며 대가를 요구하거나, 매출 증빙 서류를 허위로 꾸며내다 적발됐다. 장씨 사례처럼 정부기관 명함을 위조하거나 공무원을 사칭하는 경우도 있었다.

폐업을 앞두고 점포 철거비나 재창업 지원비 신청 등을 고려하는 ‘벼랑 끝’ 자영업자도 브로커의 표적이 되고 있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폐업자 수가 100만명을 돌파하자 이들의 재기를 돕기 위한 소진공의 정책자금인 ‘희망리턴패키지’ 예산 집행액이 지난해 1684억원에서 올 상반기에만 3115억원으로 두 배 늘어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실제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100만원만 주면 대출 보장”, “사업계획서·재무제표까지 다 써 드립니다, 수수료는 대출금의 10%”라는 식의 글이 확인된다.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는 브로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경찰청, 네이버 등 포털과 공조하며 단속을 강화하고 있으나 ‘사각지대’는 여전한 상황이다. 특히 대출·폐업 지원금을 받기 위한 복잡한 절차가 그대로 남아 있는 한, 정보·시간적 여유가 부족한 자영업자들이 브로커 손을 잡을 가능성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원이 의원은 “코로나19와 경기침체로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에 서 있다”며 “긴급 경영안정자금 및 폐업·재창업 지원 정책자금이 불법 브로커의 먹잇감이 되지 않도록 중기부는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경찰 등과 공조해 소상공인을 적극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