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미국 조지아주 한국 배터리 공장에서 발생한 대규모 구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중소기업들의 미국 비자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런 가운데 정부 조사 결과 미국에 진출한 중소기업 10곳 중 7곳이 최근 3년간 관광·단기 상용 비자인 ESTA(전자여행허가)나 B-1을 통해 출장 인력을 파견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절차가 간단하고 비용이 저렴해 단기 비자를 선택해왔지만, 이번 사건처럼 예기치 못한 위험에 그대로 노출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조지아 사태 관련 미국 수출 중소기업 비자 애로 사항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 기업 68곳 중 76.5%가 ESTA·B-1 등 단기 비자를 이용해 단기 인력을 파견했다고 답했다.
상당수는 출입국 문제를 겪지 않았지만, 이 가운데 21%는 입국 심사 과정에서 추가 조사를 받았고, 일부(1.9%)는 입국이 거부됐다. 반면 현지 시장 진출을 위해 미국 전문직(H-1B)이나 주재원(L-1) 비자를 시도한 기업은 20%에 불과했다. 기업들은 발급 절차가 복잡하고 소요 기간이 길며 비용이 크다는 점을 주요 애로로 꼽았다.
이번 조사는 중기부가 조지아 사태 직후인 지난 8~12일 중소기업중앙회 등 유관 협단체를 통해 3300여 미국 수출 기업을 대상으로 긴급 실시한 것이다. 다만 미국 현지에 법인이나 공장 없이 단순 수출만 하는 기업이 포함됐고, 사안의 민감성 탓에 응답 기업은 68곳에 그쳤다.
설문에선 응답 중소기업의 절반 가까이(45.6%)가 건설·설치·시운전·애프터서비스(AS) 등 현지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단기 인력 파견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STA 활용도가 높았던 배경이다. 응답 기업 4곳 중 1곳(25%)은 조지아 사태로 ‘인력 수급 애로’와 ‘프로젝트 지연’ 등 기업 경영에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답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비자 단속 강화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기업도 32.4%에 달했다.
중소기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지원은 ‘한·미 간 단기 파견 전용 비자 신설 협의’(47%)였다. 업종별 비자 쿼터 확대(19.7%), 법률·행정 지원(13.7%), 단속 사례·동향 정보 제공(11.1%)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의 비자 쿼터 확보와 대기업의 협력 필요성을 동시에 강조한다. 허윤 서강대 교수는 “미국이 H-1B 수수료를 1인당 10만달러로 올리려 한다는데, 이는 중소기업 1년 연봉을 훌쩍 넘는다”며 “원청 대기업이 협력사의 비자 문제를 돕고 정부도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박사도 “대기업 공장 건설 초기에는 협력사 핵심 인력이 투입되는데, 문제가 생기면 타격이 크다”며 “민관 협력에 대·중소기업 상생이 더해져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18일 외교부·산업부와 중기부, 재계·중소기업 단체가 함께하는 ‘비자 문제 개선 범부처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종배 의원은 “조지아주 사태와 같은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정부가 책임 있게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며 “특히 취약한 중소기업들의 비자 지원 대책을 정부가 꼼꼼히 챙겨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