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부터 중소기업 매출 기준이 10년 만에 최대 1500억원에서 1800억원으로 상향된다. 이에 따라 중견기업으로 넘어갔던 300여 곳이 다시 중소기업으로 분류될 전망이다.
중소기업 기준은 조세 감면, 금융 지원, 규제 완화 등 정부 정책의 적용 대상을 가르는 핵심 잣대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여건에 있는 기업을 골라 보호·지원하기 위한 장치다.
정부는 “실질 성장 없이 매출만 불어나 중소기업을 졸업하는 불합리한 사례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몸집을 키우기보다 중소기업 지위를 유지하며 지원에 안주하는 ‘피터팬 증후군’만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불합리한 졸업 막아야”
26일 중소벤처기업부는 중소기업 분류 기준이 되는 매출액을 상향하는 ‘중소기업기본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중소기업 매출액 범위는 400억~1500억원 이하에서 400억~1800억원 이하로, 소상공인을 포함한 소기업 매출 범위는 10억~120억원 이하에서 15억~140억원 이하로 각각 조정된다. 업종별 실태에 따라 중소기업 44개 업종 중 16개, 소기업 43개 업종 중 12개 업종의 기준이 상향된다.
당초 중소기업계는 매출 상한선을 2500억원까지 올려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정부는 물가 상승률과 업종별 현실을 감안해 일부 업종만 손질했다. 중소기업계가 강하게 요구한 배경에는 코로나19 이후 급격한 물가 상승과 원자잿값 폭등이 있다. 기업 성장과 무관하게 매출이 불어나 졸업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1차 금속 제조업은 알루미늄·동·니켈 등 비철금속 국제 가격이 2015년 이후 60% 이상 올랐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구축 수요 확대도 금속 가격을 끌어올리며 원가 부담을 키웠다. 자동차 제조업 역시 과거 단품 생산 구조에서 조립·납품 구조로 바뀌면서 수익성 개선 없이 매출만 늘어난 경우가 많다.
이런 기업들이 단순히 매출 기준을 넘어섰다는 이유로 세제 감면, 공공조달, 정부 지원사업 등에서 배제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게 중소기업계의 오랜 주장이다. 대표적으로 연구·개발(R&D) 세액공제가 그렇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중소기업정책연구실장은 “현재 일반 R&D 세액 공제율은 중소기업이 25%인 반면 중견기업은 8~20% 수준”이라며 “성장 여력이 있는 혁신 중소기업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이번 조정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한 기업이 중소기업을 졸업하면 적용받는 규제가 57개에서 183개로 세 배 이상 늘어난다. 기업 입장에서는 중견기업으로 넘어가면 혜택은 줄고 규제는 늘어나는 구조다.
◇ 38만 ‘허리 기업’ 핀셋 지원 목소리도
반면 한국 경제의 ‘허리’라고 불리는 중견기업계는 정부가 ‘중소→중견→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성장 사다리를 걷어찼다고 반발한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중견련)는 지난 5월 보고서에서 “현행 매출 기준 상한선은 이미 영국·미국 등 주요국의 두 배 수준”이라며 “3년 매출 평균치를 적용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과 산업 변동도 반영돼 있다”고 지적했다. 또 기준을 넘어서더라도 5년간 중소기업으로 간주하는 졸업 유예제도가 이미 작동하고 있다는 점도 방어 장치로 꼽았다.
이호준 중견련 상근부회장은 “중견기업 5800여 곳 가운데 매출 1조원 이상은 20곳 남짓에 불과하다”며 “3년 평균 매출액이 3000억원 미만인 기업이 85%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정책 지원은 모두 중소기업에 집중돼 기업들이 중견기업으로 올라갈 유인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소기업으로 ‘회귀’한 중견기업 수는 2023년 기준 약 600개에 육박한다.
중소기업계 안팎에서는 범위 상향보다 더 시급한 과제로 ‘허리 기업 핀셋 지원’을 꼽는다. 국내 중소기업 804만개 중 766만 소상공인을 제외하면 중기업 12만개, 소기업 26만개다. 이들 중소기업 38만개가 최소 400만~500만명을 고용하며 한국 경제의 허리를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은 “기업 쪼개기가 얼마든지 가능한 만큼 매출 기준 손질보다 더 중요한 건 수익성과 혁신 역량을 키워 허리 기업을 글로벌로 키우는 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