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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90년대 학번이다. 대학 시절 캠퍼스시설 중 참새 방앗간처럼 자주 드나든 곳 중 하나는 복사실이었다. 요즘처럼 PDF 파일을 활용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시험기간이면 책이든 노트든 일단 복사하고 친구들과 나눠보는 것이 아무렇지 않았고, 복사실은 시험기간마다 인산인해를 이뤘다. 헌데 이제 책을 복사해주는 곳은 찾기 어렵다. 저작권 때문이다. 여전히 일부 남아있다곤 하지만 적어도 저작권 위반임을 모르진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출판시장, 그 중에서도 중고등학생 교재 시장은 유독 온라인화가 늦다. 영화, 음악, 게임 등 타 콘텐츠 분야와 달리 출판은 디지털 유통 비중이 적은 초기 시장인데다, 그 중에서도 특히 교재는 더욱 그렇다. 얼마전 온오프라인 중고서적 플랫폼에서 e북 대규모 해킹 유출 사건이 있었지만, 유출된 서적 중 중고생 교재는 한 권도 없었다는 것도 그 이유다.
그럼에도 교재의 온라인화 추세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온라인 교육 급성장과 맞춤 교육 수요 증가로 다양하고 세분화된 맞춤형 디지털 교육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고, 중고생 대상 에듀테크 스타트업 몇 곳의 빠른 성장도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이는 불법적 이용을 기반으로 한 성장이란 점에서 아쉽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국내 대표 학습 커뮤니티 두 곳의 월평균 불법 PDF 이용률은 코로나19 이전인 2020년 7월 대비 1100%나 증가했다고 한다. 이는 마치 2000년대 초반 전까지 음악, 영화 등 불법 다운로드 이용이 만연하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합리적 비용으로 합법적 이용
북아이피스는 ‘쏠북’ 플랫폼을 통해 합법적인 저작권료를 인정받고, 인정하는 교육 시장을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쏠북의 서비스는 크게 ▲저작권 거래중개와 ▲저작물 이용거래 두 가지로 나뉜다. 저작권 소유자인 출판사들의 동의를 받은 교재와 교과서 등이 업로드되고, 교육기업이나 학원, 강사 등이 쏠북을 통해 저작권자에게 이용료를 지불하고 필요한 교재나 문제, 지문 등을 사용할 수 있다.
학원 강사들의 경우 이를 기반으로 부교재 등 2차 저작물을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디지털 교육 콘텐츠들도 쏠북에서 거래된다. 2차 저작물은 주로 교육기업, 학원, 강사 등이 저작권을 갖고 있고, 이를 쏠북에 업로드하면 타 학원이나 강사 등 교육시장 종사자들과 학생들이 직접 구매할 수 있다. 학원과 강사들의 경우 부교재 제작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하지만 해당 콘텐츠 이용자는 해당 학원 수강생들로 제한된다. 하지만 쏠북을 통해 타 지역의 학원과 강사들에게 직접 제작한 콘텐츠를 판매함으로써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 콘텐츠 거래액의 일부는 2차 저작물이 참조하거나 인용한 교재의 저작권자인 출판사에게도 돌아간다.
영리 목적으로 교재를 이용하려면 저작권자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무단으로 이용해온 것이 업계의 오랜 관행이다. 그 배경엔 높은 이용료도 한 몫을 한다. 교재 한 권당 연간 적게는 500만원 수준에서 많게는 수 천만 원에 달한다. 메가스터디 등과 같은 메이저 교육기업을 포함해 약 10여곳만이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있고, 그 외엔 대부분 무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서두에 언급한 대로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책을 복사하는 것이 어려워졌지만, 교재만은 예외다. 문제집을 통째로 스캔해 활용하는가 하면, 저작권자 허락없이 무단 편집하기도 한다.
중고생 교재 콘텐츠 시장이 수 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실제 형성된 시장 규모가 50억원 수준인 것도 그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중소규모 학원이나 강사들이 자료를 만들거나 화상 수업을 하기 위해 연간 천여만원을 지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다보니 출판사들도 저작권을 침해당하면서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며 조 단위의 수익창출 기회를 놓치고 있는 셈이다.
쏠북은 학생수 등을 기준으로 이용료를 적게는 2분의1에서 많게는 100분의1까지 낮췄고, 이는 연간 비용으로 환산하면 기업은 10만~150만원, 개인은 2만~10만원 수준이다. 이같이 합리적인 비용을 지불하고 활용하도록 하고 있고, 저작권자인 출판사들은 이를 통해 많게는 연 1억원 이상의 저작권료를 쏠북을 통해 정산받기 시작했다. 특히 고무적인 것은 저작권 침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며 빠르게 성장한 에듀테크 스타트업들도 하나 둘 쏠북을 통해 저작권 이슈 해결에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두번째 도전, 2025년 AI 디지털 교과서가 변곡점
북아이피스는 윤미선 대표의 두 번째 창업이다. 윤 대표는 과거 직장생활을 하면서 일본어 공부를 병행하던 중 일본어 학습 커뮤니티를 개설, 운영한 경험이 있다. 지금만큼 성인교육 플랫폼들이 활성화되기 이전임에도 해당 커뮤니티를 10만명 규모까지 키우며 관련 교재를 여러 권 집필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교육서비스의 불편을 해결하고자 이러닝솔루션 ‘아카데미클라우드’라는 서비스를 만드는 ‘클레비’를 창업했고, 이를 인터넷 강의 전문기업 에스티유니타스에 매각했다.
회사 매각후 에스티유니타스에 합류해 학원 및 과외 강사들을 플랫폼으로 유입시키는 일을 하면서 이러닝 확산과 업계 종사자들의 수익 개선을 위해서는 저작권 이슈의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서비스가 ‘쏠북’이다. 창업 3년차인 최근 시리즈A 투자 유치를 완료했다. 블루포인트, SL인베스트먼트, 서울경제진흥원(SBA) 등 투자사가 신규 투자했고, KB인베스트먼트, 프라이머사제 등 기존 주주도 이번 투자에 참여했다.
최근들어 플랫폼 서비스 기업들의 투자유치가 쉽지 않은 시장 분위기에서 국내 유수 기관들이 쏠북의 성장 가능성에 손을 들어준 것은 괄목할 만하다. 저작권 침해가 만연한 교육시장에서 이용자들이 과연 비용을 지불하겠느냐는 우려도 많았다. 하지만 2023년 현재 YBM, NE능률, 천재교육 등 중고생 교육 출판사 총 16개사가 쏠북과 저작권 중개 계약을 맺었다. 특히 영어 부문은 전국 학원 강사와 관계자 1만명이 쏠북 플랫폼에서 직접 저작권 라이선스를 구매해 사용하고 있다.
2025년 시장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025년부터 교실에서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해 학생 수준별 맞춤 교육을 제공하는 ‘AI 디지털 교과서’가 등장한다. 교육부의 설명에 따르면 도입 초기엔 종이 교과서도 함께 사용하지만, 2028년 이후엔 디지털 교과서로 전면 전환할 수 있다. 교재와 교과서 저작권자인 출판사들은 이 변화를 반기는 분위기다. 유독 느린 교재 출판 시장의 온라인화가 급속화됨과 동시에 저작권 이용에 있어서도 변화가 기대되고 있다.
쏠북은 이같은 거시적 변화에 앞서 선제적으로 업계 플레이어들을 플랫폼에 인입시키고, 합리적 가격으로 콘텐츠를 거래하는 시장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 이는 단지 수 조원의 수익 시장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교재의 바른 이용을 통해 교육의 질을 더욱 높이고, 교육의 기회를 더욱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