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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투자(나는 그때 투자하기로 했다)에선 현업 투자자가 왜 이 스타트업에 투자했는지를 공유합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년 뒤인 2025년 국민 다섯 명 중의 한 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 수준인 0.78명에 그친 가운데 대한민국이 2045년 세계 1위 고령국가가 될 것이라는 UN의 예측은 더 이상 웃어 넘길 이야기가 아니게 됐다. 사회가 요구하는 생산성과 서비스의 수준은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반면 노동 인구는 점차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로봇은 더 이상 상상의 대상이 아니라 현존하는 사회 문제를 해결할 핵심 수단이 되었다.

퓨처플레이는 로봇에 진심인 투자사이다. 2D/3D 센서, 관절 등 핵심 부품부터 제조 로봇과 서비스 로봇 밸류체인의 전방위에 걸쳐 활발히 투자해왔으며 광의의 로봇까지 포함한다면 드론, 자율주행차, 미래항공 모빌리티, 심지어 소형 위성 발사체까지 지난 10년 간 30여 곳의 성공적인 로봇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왔다. 앞으로의 10년을 위해 퓨처플레이는 어떤 로봇 스타트업을 주목하고 있을까?

유명한 테크 애널리스트이자 벤처투자자인 Benedict Evans는 2020년 a16z 블로그에서 지난 50년간의 신기술 수용 과정을 설명해 주는 혁신의 S커브를 소개했다. 지난 50년간 혁신의 역사는 메인프레임, PC, 인터넷, 스마트폰 등의 인프라가 등장하고, 거기에서 파생된 어플리케이션이 부가가치를 쌓아 올리는 식으로 반복되었으며 어플리케이션의 등장 속도가 둔화되는 시점에 다음 인프라가 등장해 혁신의 축적을 이어 왔다는 것이 주요 맥락이다. 로봇 산업의 기회를 살펴볼 수 있는 여러 관점이 있겠지만 같은 프레임워크를 적용해보자.

로봇의 본질은 동작하는 기계 장치이므로 로봇 산업의 주요 인프라가 하드웨어라고 가정해보면, 당분간 시장에는 두 갈래의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기회는 Universal Robotics, Intuitive Surgical, Boston Dynamics, Amazon Robotics(Kiva Systems), Tesla와 같이 새로운 섹터에 적용될 독보적인 하드웨어 플랫폼을 만들어 인프라를 구축하는 쪽이고, 두 번째 기회는 이렇게 개발된 로봇이 더 잘 활용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쪽이다. 일본의 로봇 천재들이 모여 우주 정거장, 우주 궤도 등에서 작업 가능한 창의적 형태의 로봇을 빠르게 쏟아내고 있는 GITAI가 전자의 대표적 사례라면,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나비프라는 후자의 사례다.

나비프라 이미지. /나비프라

◇10mm 이내 정밀도,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물류 로봇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천장이나 바닥, 주요 구조물에 바코드나 마커를 부착해 정해진 코스를 따라 물품을 운송하는 ‘AGV(Automated Guided Vehicle)’와 2D/3D 센서를 통해 주변 환경을 센싱해 지도를 만드는 동시에 본인의 위치를 추정해 자율 주행하는 ‘SLAM(Simultaneous Localization And Mapping) 기반 AMR(Autonoumous Mobile Robot)’ 두가지다.

AGV는 공장이나 공정이 변경될 때마다 바코드를 재부착해야 하고, 바코드가 훼손되면 위치 추정에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있어 현장에서는 점차 완전 자율주행 방식의 AMR을 선호하는 추세다. 그러나 공장에서 저비용으로 도입 가능한 AMR의 경우 정확도가 높지 않아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고가의 라이다, 모터드라이버 및 외산 소프트웨어를 통해 보조해야 하는 한계가 존재한다.  나비프라는 자체 소프트웨어를 통해 적정 성능의 AMR, 라이다, 모터 드라이버로도 10mm 이내의 초정밀 제어와 수십대 규모의 통합 관제를 가능하게 하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나비프라에 투자한 첫 번째 이유는 기술력이다. 나비프라의 사업 모델을 처음 들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언제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10mm 이내의 정밀도를 갖기 위해서는 온갖 요소들이 다 노이즈로 작용한다. 우선 작업 환경의 벽이나 선반을 지도상에 표현하는 라인 한 줄부터 특정 제조사 모터 드라이버에 정지 명령을 내리고 0rpm에 도달하기 까지의 수십ms의 딜레이, 로봇 제조사의 라이다 부착 위치 조립 공차, 고속으로 움직이는 로봇에서 2,700개의 라이다 빔을 쏘았을 때 첫 빔과 마지막 빔의 오차, 직진 및 회전, 물류 적재에 따라 하드웨어의 기구학적 문제로 발생하는 오차까지 정밀 주행 환경에서는 모두 노이즈로 작용한다.

나비프라는 자체 알고리즘과 수많은 경험으로 축적한 노하우를 통해 실험실 스케일이 아닌 실제 물류 현장(메모리 사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1km2 이상 면적)에서 노이즈를 제어하며 정밀 주행을 실현시키며, 이러한 정밀성을 기구학적으로 차이가 있는 고객사의 이기종 로봇, 해당 로봇이 사용한 다양한 종류의 라이다, 구동기, 제어기, 감속기에 관계없이 구현해낸다.

주변을 정밀인식하는 나비프라. /나비프라

◇전문성을 자랑하지 않는 20년 로봇 전문가

나비프라에 투자한 두 번째 이유는 나비프라 박중태 대표가 쌓아 온 경험 때문이다. 박중태 대표의 IR을 처음 듣는 투자사는 당황할 수 있다. 회사가 가진 모든 강점을 영혼까지 끌어 모아 어필해도 모자란 발표 시간에, 박중태 대표는 언제나 소박한 자료를 가지고 별것 아닌 듯 겸연쩍게 이야기하고 약속할 수 없는 계획은 이야기조차 꺼내지 않기 때문이다. 고려대 박사, LG전자, 삼성중공업 연구원, 클로봇 CTO를 거치며 로봇 자율주행만 20년 이상 연구해 온 전문가인데 가지고 있는 수많은 강점을 자랑하지 않으니 담당 심사역 입장에서는 발표를 들으며 조마조마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을 두고 지켜 보다 보면 ‘적게 약속하고 많이 전달하는’ 박중태 대표의 성격마저 사업에 필요한 또 다른 강점임을 알게 된다.

산업계에서 투자업계로 넘어올 때 필자가 가지고 있던 가설은 ‘혁신은 대기업의 인프라와 학계의 연구성과 그리고 스타트업의 실행력의 교집합에서 가속화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것이, 랩 스케일의 연구성과를 산업계에 적용하기까지 넘어야 할 허들이 수 없이 존재한다. 스케일이 달라 발생하는 기술적인 디테일은 말할 것도 없고, 기업 내에서 우리(스타트업)를 긍정적으로 보는 팀과 실제 고객이 되는 팀이 다르고, 우리가 설득한 임원은 언제나 바뀌며, PoC후 본격적인 계약 시점이 되면 수십 가지의 스펙과 업체 등록을 위한 여러 조건을 제시하고, 거래 규모에 걸맞은 담보 등을 요구하는 대기업 고객은 아무리 실행력이 있다고 한들 막 창업한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상대하기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대학원에서 연구한 기술과 대기업, 스타트업 양쪽에서 축적한 사업화 경험을 토대로 나비프라를 창업한 박중태 대표는 필자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교집합 안에 있는 사람이다. 박중태 대표는 폭 넓은 경험을 통해 로봇 소프트웨어 솔루션으로 단기간 내 직접적으로 대기업 고객을 유치하기 힘들다는 것을 명확히 이해하고, 하드웨어 업체와 SI 업체가 장악하고 누가 협력사로 선정될지도 불투명한 구도 속에서 로봇 제조업체, 라이다 업체, 모터 업체, 설비 업체 등과 연계한 Bottom-up 세일즈로 창업 첫 해 7억 원에 가까운 매출을 발생시켰는데 이는 초기 스타트업에게 거의 아트에 가까운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박중태 나비프라 대표. /나비프라

이 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고 그보다 더 많이 전달하는’ 박중태 대표의 태도가 고객과 파트너에게 큰 신뢰를 주었을 것이다. 나비프라는 퓨처플레이와 만도 테크업 플러스 프로그램을 함께 할 때도 늘 약속했던 목표보다 더 빠르게 더 많이 성취해왔다.

나비프라에 투자한 세 번째 이유는 나비프라가 가진 앞으로의 가능성 때문이다. 나비프라는 Navigation과 Infrastructure의 합성어다. 지금 나비프라가 풀고 있는 것이 네비게이션으로 물류 현장의 범위에서 풀 수 있는 문제들이라면, 앞으로 로봇을 정밀 제어할 외부 인프라 장치까지 더해진다면 풀 수 있는 문제의 범위는 훨씬 넓어진다.

“창고 내부에서만 움직이는 물류 로봇이 숙련된 지게차 운전자가 창고와 옥외 야적장을 가로 지르며 수행하는 복잡한 테스크를 모두 대체할 수 있을까?”, “서빙 로봇은 추가 인원이 갑작스럽게 합류하여 테이블을 옮겨 붙이고 섞어 앉은 손님들에게 흘리지 않고 국물 요리를 배송할 수 있을까?” 서비스로봇 시장이 확대되고 로봇의 사용환경이 다변화될수록 나비프라가 인프라 기반 정밀 주행 기술로 풀 수 있는 문제, 생산할 수 있는 부가가치도 빠르게 늘어날 것이다. 나비프라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