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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똑똑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죠. 사업도 누가 시켜서 시작한 셈이고, 취업도 지도교수님이 가라고 해서 갔고요. 대학도 원했던 학과를 갈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다른 학과를 골라서 갔어요. 그런데 두 가지는 자신 있어요. 하나는 ‘잘 듣는 것’, 그리고 둘째는 ‘눈 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죠. 누군가 ‘이런, 이런 기능과 제품이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하면 일단 그 문제를 풀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요. 제품이나 사업에 걸림돌이나 문제가 생기면 걱정이 많아서 어떻게든 해결해야 직성이 풀려요. 그러니까 물어뜯어야 하는 것이 있으면 절대 놓지 않죠. 그렇게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창업은 어떤 꿈을 꾸고 해야할까요. 수백, 수천억원의 엑싯이나 유니콘의 꿈? 해적왕? 아니면 일론 머스크처럼 ‘인간의 화성 시대’와 같은 거창한 꿈이나 ‘탄소배출 제로와 노 플라스틱’ 같은 소셜임팩트와 사회적 사명감? 레터를 쓰는 저희도, 스타트업에 뛰어든 많은 이들도 이런 슈퍼스타 창업가를 아이돌로 삼아 일에 몰두합니다. 하지만 다른 창업의 길도 있습니다.
작년말,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이 카이스트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당시 질문 중 하나가 ‘저는 전형적인 소시민입니다. 사회적 문제 해결이나 건설적인 비전도 없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창업하면 안 될 것 같은데, 따끔한 조언 부탁드립니다’였습니다. 당시 장병규 의장의 답은 이랬습니다. “개인적으로 질문 주신 분과 같은 생각을 가진 창업도 많아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10여년 전 ‘야후 재팬’ 내 작은 섹션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회사가 인상 깊어 기억나는데, 구성원 대부분이 Remote로 일하고 정직원 수도 예닐곱 정도였지만 연매출이 약 20억 넘었습니다. 다수 구성원들이 경력과 전문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형태였습니다. 이처럼 ‘외부 투자자가 거의 없고, 창업자의 경력에 부합하는, 수익창출에 집중한’ 창업도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꼭 거창한 꿈만이 창업의 길을 갈 수 있는 원동력은 아니라는 것이죠.
오늘 소개할 창업자, 김기덕(41) 씨앤테크 대표가 그런 창업자입니다. 씨앤테크는 IoT 기기를 통한 동산담보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입니다. 금융업계 종사자가 아니라면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대출의 영역을 기술과 접목해 개척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그만큼 생소하지만, 독보적인 회사기도 하죠. 정작 이 회사의 법적 창업자는 김기덕 대표가 아닙니다. 원래 있던 법인이 MVP 제품조차 만들지 못해 폐업 직전까지 몰렸고, 투자사 요청으로 삼성전자 출신 엔지니어였던 김기덕 대표가 구원투수로 투입된 회사입니다. 결국 김 대표가 지분을 모두 인수하고 제2의 창업처럼 다시 시작하게 됐습니다. ‘등 떠밀리 듯이 대표가 됐다’지만, 현재 모두가 알만한 금융기관들이 씨앤테크가 개발한 센서와 동산담보 데이터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입니다.
동산 담보 없는 한국 기업 대출은 반쪽짜리라던데요. 그런데 은행 입장에선 대형 사기 때문에 동산 대출을 꺼리는 이유가 있다고요.
“네. 동산(動産), 말 그대로 움직이는 자산이죠. 토지나 건물처럼 움직여서 옮길 수 없는 재산은 부동산. 동산은 그 반대말이고요. 이 동산을 담보로 은행이 내주는 대출이 ‘동산 대출’ 입니다. 2017년 제가 대표 취임했을 당시, 우리나라 중소기업 자산이 대략 1000조쯤 됐습니다. 그 중 동산이 600조원, 부동산이 400조원이고요. 그런데 기업 공시를 자세히 보면 대부분의 기업들이 부동산을 담보로는 대출을 자주 받지만, 설비나 재고를 담보로 대출 받는 것은 보기 힘듭니다. 한국 중소기업의 부동산 담보 대출 규모는 360조원으로 자산 대비 90%였고요, 동산담보 대출 규모는 2017년 기준 2000억원이 조금 넘었습니다. 부동산으로는 담보물의 90%가 대출이 나오는데, 동산으로는 0.03% 정도 나오는 것이죠. 훨씬 가치가 큰 담보물이 곳곳에 있는데, 정작 그걸 담보로 돈이 들어가고 있지 않는 셈이고요.
스타트업의 VC투자금처럼, 제조 중소기업들에게 담보 대출은 성장 연료 같은 중요한 요소입니다. 미국은 동산담보 대출이 수백조원 단위, 일본도 수십조원 단위입니다. 그래서 2010년대 초반, 한국도 정부 차원에서 동산 담보를 활성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제조 중소기업들의 성장을 돕기 위해서요. 그런데 육류 재고를 허위 수출해 수천억원의 담보 사기를 벌였던 사건, PC 재고를 담보로 대출을 받았는데 알고보니 빈 박스만 쌓아뒀다는 등. 몇 번의 사고가 벌어지고 나서 금융기관들이 동산담보를 꺼리게 됐습니다. 땅과 토지는 움직일 수 없지만, 설비와 재고는 부품을 떼서 몰래 팔 수도 있고 재고를 박스만 두고 슬쩍 빼돌릴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2012년 씨앤테크가 창업했군요. 그런데 정작 대표님은 당시 이곳에 없었다면서요.
“네. 당시 삼성전자에서 터치패널 반도체 설계하고 있었고요. 이런 일련의 사건이 터지고 나서 ‘기술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로 창업에 뛰어든 기업이 여럿 있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스마트폰이 보급됐고, 통신망과 CCTV를 적절하게 활용하면 동산 감시를 할 수 있다고요. 그러면 은행이 믿고 중소기업 대출을 내줄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는 아이디어였죠. 그런데 누구도 이 아이디어가 구현된 제품을 만들어 양산에 성공하고, 보급해 성공적으로 운용한 사례가 없었습니다.
씨앤테크도 그런 회사 중 하나였고요. 카이스트 대학원 선배인 이용관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대표가 어느날 전화해서 ‘네가 가줬으면 하는 회사가 있다’고 하더군요. 알고 보니 블루포인트파트너스가 씨앤테크의 투자사였더라고요. 2016년 쯤 씨앤테크에 왔는데 정말 시제품 하나 없이 직원 셋있는 회사였어요. ‘IoT를 이용해 동산담보의 페인포인트를 해결한다’는 아이디어 한줄 뿐이었고요. 제가 연구소장이 됐고, 삼성전자에서 센서 개발하던 이력을 살려 제품을 만들고 테스트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2017년쯤이었나요. 창업자셨던 대표님이 결국 회사를 폐업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제가 주식과 대표자리를 이어받게 됐고, 2018년 금융위원회 앞에서 ‘동산 담보 통합관리 시스템’을 시연한 다음 기업은행이 첫 고객으로 계약하면서 본격적인 제 사업이 시작됐습니다. 어찌보면 이용관 선배한테 낚인 셈이고요.”
씨앤테크가 만든 IoT 단말기를 설비에 붙이면 5000만원 대출이 나온다고요?
“공장 설비와 재고 자산에 대한 데이터 수집과 모니터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주요 은행과 지방 핵심 은행, 캐피털사, 기술보증기금과 신용보증기금 등 동산 대출을 내주는 주요 금융 기관이 고객사고요. 은행에서 동산 대출을 내줄 때 조건이 씨앤테크의 단말기 설치가 조건으로 걸려있는 것이죠.
단말기는 손바닥만 한 센서고요. 설비의 위치·진동·자기장·소음 등을 수집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서버로 전송하고 프로그램을 통해 모니터링합니다. 담보물의 위치, 설비 가동 패턴까지 모두 분석해서 일종의 담보물 등급을 나누고 이상이 생기면 상황실에 근무하는 팀원들이 곧장 업체 사장님한테 전화를 하죠.
한번은 경북 공단에 있는 공장 설비가 갑작스럽게 강원도 정선으로 이동했습니다. 알고리즘이 이상 패턴을 바로 보고했고, “큰일 났다. 사장님이 도박에 빠져서 강원랜드까지 설비를 끌고가서 팔려고 한다!”고 난리를 쳤죠. 알고보니 정선에서 열리는 박람회로 가시는 것이었죠. 진짜 박람회가 정선에서 열렸고, 사장님은 다시 기계를 끌고 공장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커피 원두 로스팅 기계도 담보로 잡은 적이 있습니다. 모든 중소기업의 가동 패턴이 있어요. 사장님이 매일 오전 11시에 커피를 볶고, 1시에 작업을 마칩니다. 이 패턴이 수년간 반복하다가 한동안 로스팅이 멈추거나 갑자기 다른 시간에 로스팅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회사가 어려워졌거나 원자재를 빨리 사용해 재고를 모두 처분하고, 설비를 몰래 팔고 잠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이상 패턴도 감시대상으로 지켜봅니다. 이렇게 현재 2만 5000군데 담보물에 단말기가 붙어 있고요. 단말기를 부탁해 대출을 받은 중소기업은 대략 5500곳이 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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