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투자(나는 그때 투자하기로 했다)에선 현업 투자자가 왜 이 스타트업에 투자했는지를 공유합니다.

매년 2회씩 수백 개 기업 가운데 기수마다 10개에서 15개 기업을 선정하는 스파크랩은 특별한 섹터(분야) 없이 제너럴하게 선발하는 게 특징이다. 그중 나의 투자 원칙 중 하나는 ‘강한 열정, 강한 포커스를 가진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창업 생태계에서 100개 중 99개는 대개 창업에 실패한다. 하지만 강한 열정을 바탕으로 풀고 싶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사명감이 있는 팀들은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고 이끌어 나간다. 더블미를 통해 이러한 부분을 느끼게 되었다.

2015년 창업한 더블미(Double Me)는 자체 볼류메트릭(Volumetric) 비디오 캡처 기술을 개발해 온 스타트업이다. 더블미 김희관 대표와의 만남은 약 7년 전 본투글로벌센터에서 일하는 지인의 소개로 시작됐다. 강남역 모 카페에서 만난 김희관 대표는 3D 콘텐츠 제작을 하는데 너무 많은 인력과 시간이 소요되고 비용도 상당히 많이 든다는 문제점을 이야기했다. 3D 그래픽을 만드는 전문가와 전문 장비 활용이 필요하고 장비가 갖춰져 있어도 최종 모델이 나오기까지 3~4,000만 원의 비용과 약 한 달 정도 기간이 소요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김희관 대표는 전문적인 기술 없이 카메라를 이용하여 스캔하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착안하여 볼류메트릭 비디오 캡처 기술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스튜디오 내 설치된 수십 개의 카메라를 일정한 각도로 촬영해 홀로그램으로 또 다른 나를 구현했고, 이 과정을 단순화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 끝에 3D카메라 1대만 있다면 누구나 실시간으로 고화질의 홀로그램을 생성하고 공유할 수 있는 ‘홀로포트’ 기술을 개발했다.

김희관 더블미 대표 /스파크랩

◇너무 빨랐던 VR 창업과 피보팅

스파크랩에 합류하기 전에 게임 업계에 몸담았던 나는 3D 콘텐츠가 가진 어려움은 일찌감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업에 대해 공감과 흥미를 느꼈다. 지금으로 따지면 ESG나 클라우드 산업이 주목받듯이 그 당시 주목을 받았던 분야는 VR·AR산업이었다. 무엇보다 김희관 대표의 VR 산업에 대한 열정, 팀의 사업 능력이 충분했고, 사업도 아이디어 단계가 아닌 어느 정도 구상된 상태라 더욱 믿음이 갔다. 김호민 대표와 이한주 대표(스파크랩 공동대표)를 설득해 더블미를 스파크랩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으로 영입하게 됐다.

2015년 전세계 게임계는 오큘러스(Oculus)사에서 개발한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 기기에 열광하는 시기였다. 이 기기는 기존 디스플레이와 달리 화면과 사용자의 시선을 완전 분리하고 사용자의 시선을 쫓아가는 기능을 갖췄다. 오큘러스 기기를 시작으로 가상현실, 즉 본격적인 VR 시대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머리에 뒤집어쓰기만 하면 가상현실 속에서의 게임을 직접 체험할 수 있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이름을 들어봤을 만한 유수의 플랫폼 운영사들이 VR 시장 진출을 선언하면서 수많은 기업이 VR이라는 새로운 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시작했다. 1년 뒤에는, VR 선도주자인 게임 플랫폼 운영사들이 만든 VR이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처음 기대와 달리, 대중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했다. 게임 업계에 종사한 나는 평소에도 VR 제품에 관심이 많았고, 더블미를 스파크랩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영입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점을 직접 경험해보기로 했다.

그 당시 미국에서 VR 기기를 800달러에 구매했는데, VR을 운영할 만큼 3D 그래픽카드 성능이 높은 PC를 따로 구매해야 한다고 들었을 땐 놀라서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반 PC는 성능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에 게임을 실행할 수 있는 성능 좋은 PC를 구매해야 한다고 안내를 받았다. PC의 가격은 2,500달러였다. PC를 사지 않으면 게임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PC도 함께 구매하게 됐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었다. 내가 구매한 VR은 벽 위에 센서를 설치해야만 실행할 수 있다고 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으면서도 장비를 샀으니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우선 집안에 설치 가능한 포토그래퍼 라이트 스탠드로 대체하여 장비를 모두 구매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많은 사람이 쉽게 사용하고 접근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VR이 궁금해서 기기를 사고, 고성능 PC도 사고, 센서 설치 비용까지 들인 경험을 통해 내린 결론은 ‘이 시장은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었다. 실제로 국내 시장의 경우 VR 헤드셋이나 AR 글라스 등 디바이스 장치가 너무 비싸고, 해외 제품에 의존하여 보급이 정체되어 있었기 때문에 게이머들이나 일반 소비자들의 관심도마저 떨어졌다. 투자 업계에서도 VR·AR 분야의 성공사례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스타트업의 기술 개발이나 투자 유치가 쉽지 않았다. 스파크랩 5기 데모데이에서 더블미가 성공적인 IR을 마쳤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더블미의 미래와 비전은 충분했지만, VR 분야에 대한 관심이 내려가 후속 투자를 받지 못했었다.

다른 VR·AR 업계의 스타트업도 상황은 마찬가지로 어려웠고 하나둘씩 사업을 접어갔다. 하지만 더블미는 달랐다. 처음에 6대의 카메라로 3D 홀로그램을 만들었다면 이후에는 2대로, 이제는 1개의 3D 카메라만으로도 고화질 볼류메트릭 비디오를 촬영할 수 있는 기술을 구현했다. 이 기술을 통해 국내와 해외를 오고 가며 약 6년 동안 정부의 연구 과제로 160억 원을 유치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VR 분야에 대한 우려 속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기술을 고도화해 나갔다는 점이다. 국내외 가리지 않고 정부 연구 과제를 부지런히 수행하며 더블미는 꿈을 키워왔다. 나 또한 열심히 하는 더블미의 모습을 보며 사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피보팅을 도왔다.

◇VR과 AR을 결합한 메타버스 기술, 마침내 때가 왔다

마침내 더블미는 2020년 자체 개발한 홀로포트 및 홀로포트 엣지 기술 기반으로, AR, VR이 결합한 혼합현실(MR) 공간을 만들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 ‘트윈월드’ 서비스를 만들었다. 기존의 VR, AR 앱들은 개발사 측에서 이미 만들어 둔 가상현실 콘텐츠였다면, 트윈월드는 사용자가 특별한 전문 지식 없이도 앱을 통해 직접 VR, AR로 즐길 가상의 공간을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이다. 이를 통해서 사용자의 현실 공간에 가상 세계를 적용하는 실세계 메타버스(Real-World Metaverse)를 즐길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때가 왔다. VR, AR의 최대 단점인 가격이 비싸다는 점과 사람들에게 대중화되어 있지 않은 점, 이 두 가지 난제가 기술의 혁신으로 해결됐다. 기기가 보편화 되고 가격이 저렴해졌다. 코로나 19로 인해 비대면이라는 키워드가 주목을 받으며 새로운 차원의 세계인 메타버스(Metaverse)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다시 VR, AR의 시장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사업이 잘되기 위해서는 환경적인 면과 사람들의 대중화가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잘된 이유는 한 집마다 컴퓨터가 한 대씩 보급됐고, 컴퓨터를 켜면 인터넷을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바일 시장도 그렇다. 모바일 기기의 혁신은 모든 사람이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블미는 6년이라는 세월 동안 VR, AR 시장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자신의 분야에 몰두했다. 볼류메트릭 비디오 캡처 기술을 이용한 홀로포트 기술을 개발해 사용자가 원하는 모든 공간을 지정해 비디오나 이미지, 오디오 등 다양한 3D 콘텐츠를 배치할 수 있다. 사용자가 직접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함으로써 콘텐츠의 양과 질을 보완했다. 또한 일반 사용자들이 많이 사용하여 메타버스 세계가 보편화할 수 있도록 PC와 모바일로 다운로드가 가능한 트윈월드를 제공했다. 서비스 출시 이후 1년여 만에 누적 사용자가 5만 명에 달했다.

스타트업이 성공하려면 팀도 중요하고 운과 타이밍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업에 집중해야 할지를 잘 아는 사람이 성공한다고 생각한다. 더블미 김희관 대표는 타이밍은 안 맞았지만, 사업의 포커스를 찾아냈고 사업 분야에 대한 집중과 열정도 가진 창업가였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메타버스가 화두인 지금 더블미의 그동안의 노력이 꼭 빛을 발했으면 좋겠다.

지금의 메타버스는 꾸며져 있는 가상의 세계에서 자기만의 캐릭터를 만들고 컨트롤하는 형태지만, 더블미는 메타버스를 뛰어넘는 혼합현실 기술을 구현해 가상과 현실 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미러월드를 제공하기 위해 또 다른 도전 중이다. 이러한 기업을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스파크랩 또한 더블미의 도전과 성장, 끊임없는 노력에 공감하고 함께 이어 나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