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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투자하기로 했다] 코너에선 현업 투자사의 대표, 심사역이 내가 왜 이 스타트업에 투자했는지 배경과 스토리를 공유합니다.
비엘큐는 전자제품 ‘선 체험 후 구매’ 서비스 ‘테스트밸리’를 운영하는 스타트업이다. 비엘큐 홍솔 대표를 처음 만난 건 작년 2월, 소풍의 자체 모집 채널 ‘월간소풍’을 통해서였다. 대표님께서 소풍에 IR 덱을 보내셨고, 그때는 테스트밸리를 베타 런칭한 후 20일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나는 평소에도 IT전자제품에 관심이 많고, 갖고 싶은 기기가 있으면 눈앞에 아른거려 써보고 싶은 욕구가 굉장히 큰 사람이다. 다른 것을 갖고 싶은 욕심은 크게 없지만 IT전자제품 만큼은 욕심이 있어서, 마음 속에 한번 들어온 기기는 몇 달을 고민하거나 ‘사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결국 결제 버튼을 누르곤 한다.
구매하고 써보면 나에게 맞아서 잘 쓰는 것이 있는 반면, 몇 주 쓰다가 서랍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서랍이나 창고 정리를 할 때 여기저기서 나오는 전자기기를 보면 ‘그때는 왜 그렇게 갖고 싶었을까’ 하며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이런 나에게 홍솔 대표가 제안한 ‘먼저 써보고 구매하는’ IT전자제품 체험 서비스는 흥미로웠다. 써보고 싶지만 쉽게 구매할 수 없었던 고등학교 시절이나 20대 초반에 이런 서비스가 있었으면 덜 고민하고 덜 부담스러워서 너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 한편으로는 30대 중반이 된 지금은 바로 사는 게 편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교차했다.
◇직접 겪은 문제에서 시작한 창업자와 고객으로 니즈가 있었던 심사역
홍솔 대표는 대학생 때 패션 직구 대행사업을 했었고, 경험 없이 창업해서 고생했다보니 창업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서 컨설팅 회사와 카카오모빌리티를 거쳐 한 스타트업의 전략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바로 창업하고 싶은 욕구를 참고 짧은 시간에 다양한 간접 경험을 하면서 실력을 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테스트밸리 전에는 프로토타입 형태로 두 가지 아이템을 더 시도했었고,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 같아서 바로 접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어떤 것을 할지 고민하다 예전에 본인이 수면을 돕는 IT전자제품을 구매하던 경험에서 느꼈던 불편함을 떠올려 테스트밸리를 만들었다고 했다.
런칭 후 20일을 운영해보니 바로 이용자 반응이 나타나길래 ‘이건 한번 걸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 본격적으로 해보고자 초기 액셀러레이터를 찾는 중이었다. 투자 일을 해보니 “창업가와 심사역은 어떤 관계가 바람직한가요?”라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내 생각에는, 본인의 니즈로 창업한 창업가와 고객으로 니즈가 있는 심사역이 만나는 것이 가장 좋은 조합이다. 홍솔 대표와 나는 그렇게 만났다.
◇변화하기 어려운 IT전자제품 유통 구조, ‘과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에 대한 상상력
IT 전자제품의 유통구조는 대기업 제조사 중심으로 돌아가거나 제품 판매를 위해 과도한 마케팅·홍보를 하는 구조로 돼있다. 쉽게 바뀔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테스트밸리의 ‘체험 구매’라는 아이템은 흥미롭지만, 이벤트성이 커 본질적인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이 들었다.
다만, 팀이 제안하는 체험 구매라는 방식이 시대적 변화의 흐름에 맞고, 과도한 마케팅 중심이 아니라 고객의 ‘선(先) 사용’을 중심으로 한 체험 유통 구조를 만들수만 있다면, 앞으로는 전자기기 회수에 이르기까지 더 다양한 유통 혁신 플랫폼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마켓컬리가 농식품 유통을 변화시키고, 무신사가 패션의 유통을 변화시켰다면 과연 전자제품 유통 구조의 변화를 이 팀이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만든다면 어떤 형태로 만들 수 있을까, 사업의 방향성 아래 임팩트를 창출할 수 있을까 등 다양한 상상을 했다.
초기 투자의 경우, 사실 서비스에 대한 상상력이 중요하다. 테스트밸리는 당시에 베타 서비스를 막 런칭한 20일 된 서비스였기 때문에, 앞으로 무한한 방향성이 있었다. 이럴 때는 팀이 만들어낸 하나의 조각과 대표자의 비전을 듣고는, 심사역 나름대로 상상력을 펼쳐 이 팀이 어디까지 만들어 갈 수 있는지 심사역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심사역에게 중요한 것은 비즈니스와 산업을 분석하는 분석력이다. 그러나 초기 단계일 수록 분석력보다 상상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투자심의보고서를 작성할 때 ‘내가 대표님 얘기를 토대로 소설을 한 편 썼구나’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리고 1~2년 뒤 투자심의보고서를 다시 열어봤는데 내가 투자 당시 상상했던 모습이 현실로 그려지고 있을 때, 심사역은 큰 희열을 느낀다.
◇“문제는 유통이야” MZ세대를 위한 전자상가가 될 수 있을까…임팩트 창출 가능성은?
핵심은 유통이었다. 비엘큐가 그리는 그림이 완성되려면 오래된 유통 구조에 혁신이 필요했다. 비엘큐는 기획 및 운영·관리 등 부문에서 전자제품 유통에 이미 전문성이 있는 팀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분들이라면 지금의 유통구조를 바꿔 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자기기의 고객 구매 결정 과정을 보면, 단순한 관심에서 시작해서 정보를 탐색하고 구매를 결정하고, 제품을 사용하고 이후 재판매하거나 폐기하게 된다. 이 중에서 ‘찾고 탐색하는 부분’에서 과도한 광고비가 쓰이는 문제가 있다. 고객이 고민에 시간을 너무 많이 쓰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비엘큐는 구매 전 ‘선 경험’을 먼저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광고비를 낮추고 실사용자의 고민을 줄여준다는 점에서 하나의 포인트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풍은 투자 심의에서 비즈니스(재무적 가치)도 보지만 소셜 임팩트(사회적 가치)도 같은 선상에 본다. 팀을 발굴해온 담당 심사역이 팀의 소셜 임팩트를 설득하지 못하면 투자가 부결되는 경우도 있다. 테스트밸리 투심 때도 꽤 긴 토론이 있었다. 우리는 선 경험부터 체험 구매에서 끝나지 않고 IT전자제품 사용 후 회수까지 고객이 상호연결될 수 있는 ‘선순환 유통 구조’를 만들 수 있다면 소셜 임팩트를 창출할 거라고 결론 내렸다. IT 전자제품 중 스마트폰만 놓고 보더라도 연간 판매량이 무려 15억대가 넘는다. 글로벌 생산 과정을 거쳐 일방향적으로 유통되는데 사용 후 폐기 및 재활용에 관한 유통 구조는 분절되어 있다. 소풍은 테스트밸리가 제품 사용 경험 및 구매 이후의 회수 과정까지 일련의 유통 과정을 설계할 수 있다면, IT 전자제품의 새로운 유통체계를 만들어 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속가능한 소비 및 생산양패턴 구축’은 UN SDGs 12번 항목에 해당하기도 한다.
초기 투자를 하다보면 ‘지금 임팩트가 있다’와 ‘임팩트 창출 가능성이 있다’의 차이를 많이 생각하게 된다. 초기 스타트업들이 곧장 임팩트를 창출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앞으로 ‘임팩트 창출 가능성’이 있다는 확신이 들면 투자한다. 테스트밸리는 앞으로의 가능성을 놓고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게 해준 곳이다. 작년 베타 테스트를 진행할 때 프리시드 투자와 시드 투자를 유치했던 비엘큐는 MZ세대 중심으로 비즈니스가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최근 시리즈A 투자 유치도 마쳤다. 이번 투자 유치를 통해 전자기기 재사용을 위한 수리 공장을 구축할 계획이고, 체험과 재사용 리퍼브 중심으로 IT전자제품 유통체계를 더 고도화하고 있다. ESG가 최대 화두인 지금, 비엘큐가 앞으로 더 나아가 IT전자제품의 체험과 구매 그리고 사용·재사용·폐기까지 순환구조를 만들어 큰 임팩트를 만들어 내는 기업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