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소기업은 인건비·법인세 등 비용 증가, 내수와 수출 부진, 자금난에 코로나라는 ‘4중고(重苦)’에 허덕이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에 조선일보와 중소기업중앙회는 18일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관에서 전문가들과 중기인들을 초청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중소기업 정책 포럼’을 열었다. 중기 생존 전략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다. 포럼에 참가한 전문가들은 맞춤형 금융 지원, 디지털 전환, 유연한 노동 환경 조성, 입법 지원 등 네 가지 해법을 제시했다.

◇"스위스, AI로 30분 만에 대출"

“정부의 자금 지원은 결국 돈 빌려주고 대출 갚으라는 것이다. 뿌리가 없는데 계속 물 줘봤자 다 썩어버린다.”(나동명 한국전시행사산업협동조합 이사장)

“현재의 ‘대출’ 중심 정책을 중소기업의 성장을 위한 ‘민간 투자’로 과감히 전환해야 한다.”(이병헌 중소기업연구원장)

중기의 최대 애로인 자금난은 포럼의 주요 화두였다.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은 “내년에 기업 신용을 평가할 때, 올해 매출이 아닌 최근 3년 내 최고 매출액을 쳐주는 등 별도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기술력 위주의 평가를 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18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포스트 코로나 시대, 중소기업 정책포럼’ 특별좌담회 참석자들이 코로나 방역을 위해 마련된 투명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발표를 듣고 있다. /오종찬 기자

정부가 중기·소상공인에 대해 긴급 금융 지원에 나섰지만 정작 현장에선 돈이 돌지 않는다는 하소연도 나왔다. 이에 대해 국회 산자중기위 위원장인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부 정책에 소극적인 은행엔 패널티를 부과하거나, 코로나로 발생한 부실 대출에 대해선 (은행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해외의 중기 지원 사례를 배우자는 제언도 나왔다. 현재 미국은 직원 500인 이하 중소기업에 최대 1000만달러(약 119억원)를 무담보로 빌려주고, 이를 통해 고용을 유지하면 대출 상환을 면제해 주는 PPP(Paycheck Protection Program)를 운영하고 있다. 이병헌 중기연구원장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PPP 자금을 증액하는 한편 자금 절반은 50인 이하 소규모 업체에만 대출해 주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했다. 또 “스위스 연방정부는 소상공인이 민간 은행을 통해 30분 만에 무이자로 현금을 대출받을 수 있도록 했다”며 “은행이 보유한 소상공인 신용 정보와 인공지능을 활용해 대출 심사를 자동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중기 양극화...'K자 회복' 안 돼"

중소기업 일자리 대책과 기업에 대한 규제를 없애는 것도 이날 포럼의 주요 화두였다. 김기문 회장은 “실업자에 대한 지원이 커지면 근로자 의욕이 낮아지고, 짧은 취업과 실직을 번갈아 하며 실업급여를 반복 수급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정부 정책 방향이 실업자 보호에서 고용 촉진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했다.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은 “노동시장에 유연성을 불어넣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응할 수 없다”고 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 이정동 대통령 경제과학특보, 이병헌 중소기업연구원장.

중기 지원 입법에 대해 이학영 의원은 “대·중소기업과 원청·하청업체가 협력해 이룬 결과를 공유하는 ‘협력 이익 공유제’”를, 이철규 의원은 “주 52시간제, 기업 승계·상속세 등 규제를 과감히 혁파하는 수준의 입법”을 제시했다.

이날 토론회 좌장을 맡은 ‘축적의 시간’ 저자인 이정동 대통령 경제과학특별보좌관(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은 “중소기업 생존과 성장 문제 논의엔 여야가 따로 없다”면서 “많은 정책 지원이 가시화되고 있지만, 효율성도 제대로 점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번 토론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김기문 회장은 “코로나가 끝나는 포스트 코로나 시기에 대기업은 회복하고 중소기업은 역성장하는 ‘K자형 회복’이 나타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