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간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기원했지만 오고야 말았습니다.”

“다른 곳에서 다른 이유로 다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내일은 해가 늦게 뜨면 좋겠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매출에 큰 타격을 입은 여행사 대표가 전 직원을 상대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는 심경을 담은 원고지 12장 분량의 편지를 직원들에게 보냈다. NHN 여행박사는 최근 직원 290명을 상대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는데, 20일까지 215명이 퇴직 의사를 밝힌 상태다.

NHN 여행박사 양주일 대표. /NHN 여행박사

NHN 여행박사 양주일 대표는 지난 10일 사내 조직장들에게 ‘마지막 메일일 것 같네요’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보냈다. 그는 이 글에서 “눈 떠보니 이 시간이네요. 술을 좀 먹고 노트북을 켜고 메일을 보내려다 식탁에서 잠이 들었네요. 몇번을 쓰고 지웠는지 모릅니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드라이하게 사유만 적을까.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전달할까.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이 시간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기원했지만 오고야 말았습니다. 매번 다음을 기약한다고 말씀 드렸지만 그 시간은 언제일지 모르게 아득히 멀어졌네요”라고 썼다.

양 대표는 “누군가는 모든 게 계획이지 않았냐고 분노하시겠지만 이런 이야기만은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6개월 전 부임할 때만해도 좋은 회사 만들어 보겠다는 건 진심이었습니다”라며 “백마디 천마디 말을 해도 납득할 수 없는 말들일 것이고 머리론 이해해도 가슴이 거부할 거 같네요. 그래도 잠시 함께 고민했던 조직장님들께 말씀은 드리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예의라 생각합니다”라고 적었다.

/NHN 여행박사

그는 “여행업에 와서 만난 분과 술 한잔 할 때 그분이 그러시더군요. 여행업은 미래를 가불해서 살아온 것 같다고. 수탁고는 늘었고 통장은 가득했기에 제 살 깎아먹는 줄 모르고 살았다고”라며 “정상이 비정상이고 비정상이 정상같은 이상한 상황이네요. 그냥 지금처럼 살다가 여행이 재개되면 다시 출근하고 일을 하면 좋겠지만 실낱같은 연을 유지하기에도 회사가 숨만 쉬기에도 어려운 상황입니다”라고 했다.

이어 “이 재난은 오래갈 것 같습니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다른 일을 찾으세요. 여행이 재개되더라도 다들 달릴 것이고 그럼 또 마이너스 경쟁이 될 것입니다. 틀림없이 이 업계는 다운사이징으로 갈 거예요”라고 했다.

그는 “어제 노사협의회를 열어 희망퇴직과 정리해고에 대해 이야길 드렸습니다. 그게 뭐 정리해고지 희망퇴직이냐 하시겠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잔고가 없고 대출받아 지원하는 실정입니다”라며 “마음 같아서는 2달, 3달 급여로 하고 싶지만 100만원이 100명이면 1억이네요. 그놈의 그 알량한 돈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양 대표는 “메일을 보내놓고 아침이면 후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글이 뉴스에 퍼질까 두렵기도 하고 그래도 이렇게 쓰는 건 저도 한 사람이라는 거. 제정신으로는 한마디도 못할 거 같아 술 좀 마셨습니다. 술 먹고 메일 쓰는 거 아니라고 배웠는데...”라고 적었다.

이어 “여러분만은 그 사람 어쩔수 없었을 거야라고 생각해주시기를... 다른 곳에서 다른 이유로 다시 만나면 좋겠습니다. 그땐 저도 다른 위치에서요. 내일은 해가 늦게 뜨면 좋겠습니다”라고 글을 맺었다.

NHN 여행박사는 2000년 8월 설립된 여행사다. 일본 전문 여행사로 출발했는데 사세가 커지면서 종합 여행사로 발돋움했다. 2018년 11월 NHN 그룹사에 편입됐다. 양 대표가 이 회사 대표로 취임한 것은 지난 4월이다. 그는 2002년 NHN에 입사해 게임제작지원그룹장·UIT센터장·NHN서비스개발랩장·NHN티켓링크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다음은 양 대표가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 전문

제목 : 마지막 메일일 것 같네요.

눈 떠보니 이시간이네요

술을 좀 먹고

노트북을 켜고

메일을 보내려다

식탁에서 잠이들었네요

몇번을 쓰고 지웠는지 모릅니다

드라이하게 사유만 적을까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전달할까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이 시간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기원했지만

오고야 말았습니다

매번 다음을 기약한다고 말씀 드렸지만

그 시간은 언제일지 모르게 아득히 멀어졌네요

누군가는 모든게 계획이지 않았냐고 분노하시겠지만

이런 이야기만은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6개월전 부임할때만해도

좋은 회사 만들어 보겠다는 건 진심이었습니다

백마디 천마디 말을 해도

납득할 수 없는 말들일 것이고

머리론 이해해도 가슴이 거부할 거 같네요

그래도 잠시 함께 고민했던 조직장님들께

말씀은 드리는게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예의라 생각합니다

여행업에 와서 만난 분과 술한잔 할때

그분이 그러시더군요

여행업은 미래를 가불해서 살아온 것 같다고

수탁고는 늘었고 통장은 가득했기에

제 살 깎아먹는 줄 모르고 살았다고

정상이 비정상이고 비정상이 정상같은 이상한 상황이네요

그냥 지금처럼 살다가

여행이 재개되면 다시 출근하고 일을 하면 좋겠지만

실낱같은 연을 유지하기에도

회사가 숨만 쉬기에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 재난은 오래갈 것 같습니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다른 일을 찾으세요

여행이 재개 되더라도 다들 달릴 것이고

그럼 또 마이너스 경쟁이 될 것입니다

틀림없이 이 업계는 다운사이징으로 갈거에요

어제 노사협의회를 열어

희망퇴직과 정리해고에 대해 이야길 드렸습니다

그게 뭐 정리해고지 희망퇴직이냐 하시겠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잔고가 없고 대출받아 지원하는 실정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2달, 3달 급여로 하고 싶지만

100만원이 100명이면 1억이네요

그놈의 그 알량한

돈이 없습니다...

오늘 낮에 공지를 할 것이고

자세한 내용은 공지를 봐주시길 바랍니다

메일을 보내놓고

아침이면 후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글이 뉴스에 퍼질까 두렵기도 하고

그래도 이렇게 쓰는건

저도 한 사람이라는거

제정신으로는 한마디도 못할거 같아

술 좀 마셨습니다

술먹고 메일 쓰는 거 아니라고 배웠는데...

여러분만은 그 사람 어쩔수 없었을거야라고 생각해주시기를...

다른 곳에서 다른 이유로 다시 만나면 좋겠습니다

그땐 저도 다른 위치에서요

내일은 해가 늦게 뜨면 좋겠습니다

양주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