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기초과학연구원(IBS)

더 이상 인공지능(AI)이 과학 연구의 속도와 방식을 바꾼다는 말은 새롭지 않다. AI 덕분에 계산은 빨라졌고, 예측은 정교해졌으며, 설계는 사람이 손으로 따라가기 어려운 수준까지 복잡해졌다. 기술이 강해질수록 ‘AI가 정말 연구자의 자리를 대신하게 될까’, ‘그렇다면 연구자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은 더 선명해진다.

2024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지난 6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가진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AI가 단백질 설계 연구를 완전히 바꿔놓았다”면서도 “AI는 어디까지나 도구”라고 선을 그었다. AI로 더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연구의 방향을 정하고 결과의 의미를 가려내는 책임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베이커 교수는 AI로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단백질을 설계해 생명과학의 지평을 넓힌 인물이다. 그는 지금도 의약품 개발과 상용화를 목표로 단백질 설계에 AI를 활용해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한국이 AI 바이오와 단백질 설계 분야에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요소로도 컴퓨팅 자원이나 인프라보다 인재와 연구 문화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AI 시대일수록 연구 경쟁력은 더 좋은 모델 하나보다, 좋은 연구자를 모으고 연결할 수 있는 환경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단백질 구조 예측은 물론 원하는 기능을 하는 새 단백질을 설계할 수 있다./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 연구진 홈페이지

◇ “AI는 강력한 도구지만, 질문을 고르는 일은 인간의 몫”

-단백질 설계 연구에서 AI가 차지하는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

“우리 연구실은 2018~2019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AI 기반 방법론 개발에 집중했다. 지금도 더 복잡한 단백질을 설계하기 위한 다음 세대 AI를 만들고 있다. 방법론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지난 6년간 해온 거의 모든 일에 AI를 활용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AI가 과학기술 연구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연구자를 대체할까.

“아니다. 대체할 수 없다. AI는 아주 강력한 도구일 뿐이다. 예전에는 시퀀싱(유전자 서열을 읽는 기술) 자체가 하나의 큰 연구 프로젝트처럼 느껴졌다면, 지금은 시료를 넣으면 다음 날 결과를 받는 게 일상적인 분석이 됐다. AI도 결국 그런 식의 도구가 될 것이라고 본다.”

-AI의 한계는.

“AI로 단백질을 설계하고 실험실에서 이를 검증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것을 실제 의약품으로 만들어 임상을 통과시키는 과정이다. 이 단계는 공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고 아직은 생물학과 의학에 대한 이해가 완전하지 않다. 그래서 AI가 곧바로 혁신을 이루기 어려운 영역이다. AI가 제조 공정에서 더 잘 작동할 단백질을 설계하는 보조 역할은 할 수 있지만, 임상 개발 전체를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역할을 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AI가 단백질 설계를 잘하게 될수록 인간 연구자에게는 어떤 역량이 중요한가.

“핵심은 여전히 질문이다. 무엇이 중요한 문제인지 정하는 일, 설계 결과를 어떻게 시험할지 짜는 일, 그리고 AI가 내놓은 결과를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일이 중요하다. 결국 과학의 기본 질문은 바뀌지 않는다.”

-한국도 AI 바이오와 단백질 설계 분야에 크게 투자하고 있다. 한국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려면 컴퓨팅 자원, 인재, 실험 인프라, 데이터 중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가장 중요한 것은 인재다. 경쟁력은 결국 좋은 연구자를 확보하고, 그들이 흥미로운 문제를 오래 파고들 수 있게 지원하는 데서 나온다. 다만 단백질 설계는 이 분야만 따로 밀어준다고 성장하는 분야가 아니다. 기초과학, 바이오, 화학, 컴퓨터 같은 기반 연구가 함께 탄탄해야 하는 만큼, 한국도 다양한 연구 기반을 지원하면서 그 위에서 단백질 설계 분야를 성장시키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한국의 젊은 연구자들과 대학원생들에게 해줄 조언은.

“미래를 너무 계산하기보다, 그 순간 가장 흥미롭고 열정을 느끼는 문제를 붙잡아라. 과학은 계획표대로 흘러가기보다 관심 있는 질문을 깊이 파고드는 과정에서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단백질 접힘과 구조 예측에 대한 흥미에서 출발해 단백질 설계까지 오게 됐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말 관심 있는 문제를 오래 생각하고, 자신과 잘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다.”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가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2024 노벨상 시상식에서 스웨덴 칼 16세 구스타프 국왕으로부터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고 있다./뉴스1

◇ ‘공동의 뇌’가 되는 연구실… “향후 나노머신·농업 연구 관심”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협업하며 흥미로운 문제를 파고들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만드나.

“나는 연구실에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는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연구실에 매일 음식을 무료로 준비해 둬 누구든 와서 대화하게 한다. 또 비밀 없이 모든 것을 공유한다. 어려운 문제는 각자보다 함께 풀 때 더 잘 풀린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공동의 뇌(communal brain)’라고 부른다. 각 연구자가 신경세포(뉴런)처럼 서로 연결돼 상호작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거의 늘 연구실에 있다. 그래야 누가 어려움을 겪는지, 어디서 돌파구가 나왔는지를 바로 파악하고 도울 수 있다.”

-노벨상 수상 이후 강연과 외부 일정이 많아졌을 텐데 어떻게 균형을 맞추나.

“대부분의 초청은 거절한다. 이번 한국 방문은 아내와 함께 한국을 찾고 싶었고, 한국인 제자들과의 인연도 깊어 예외적으로 성사됐다. 지금도 예전처럼 연구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금 하는 연구 외에 5~10년 뒤 다뤄보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다만 나노머신 분야에 큰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나노머신은 분자나 단백질 수준에서 특정 기능을 수행하도록 설계한 초미세 기계 시스템을 뜻하는데, 의학뿐 아니라 기술 전반에서 응용 가능성이 크다. 농업도 흥미로운 분야다. 지구가 더워지는 만큼 더 높은 온도에서도 안정적인 식물을 만드는 데 단백질 설계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 지금과 같은 연구를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계속 새로운 주제를 찾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쉽게 지루해지는 편이다.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흥미가 생긴 문제는 계속 붙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남들이 이미 하고 있는 일과는 다른, 새로운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가게 된다.”

-과학자로서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딱히 하나의 궁극적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연구실에서 학생·박사후연구원들과 함께 일하며 새로운 것을 발견해 가는 과정 자체가 즐겁다. 물론 신경퇴행성 질환처럼 풀어야 할 큰 문제는 많지만, 꼭 하나의 목표를 정해 두기보다는 중요한 문제를 붙들고 함께 풀어 가는 과정 그 자체가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