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연구개발(R&D) 조직을 재편하며 인재 영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장기 성장 동력 확보와 글로벌 시장 진출 전략의 일환인데, 최근 정부의 약가 정책이 맞물리면서 일부 기업들이 단순 충원을 넘어 조직 체질을 바꾸기 위한 구조 전환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력직 쟁탈전…R&D 인재 이동 가속
7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동아제약, 보령, 삼진제약, 비씨월드제약, 아이엠바이오로직스 등이 최근 R&D, 글로벌 인허가, 마케팅 분야 경력직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신입보다 경력직 채용이 활발해지고 있는데, ‘즉시 전력’ 확보에 초점이 맞춰진 추세적 양상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리더급 외부 인사 영입과 이동도 잇따르고 있다. 외부 전문가를 전면에 배치해 연구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는 시도다.
이달 SK바이오사이언스는 연구 조직을 정비하고 마상호 부사장을 영입했다. 마상호 부사장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GC녹십자, JW중외제약 등을 거친 의약품, 백신 R&D 분야 전문가다.
일동제약은 동아에스티 R&D 총괄을 하던 박재홍 사장을 신임 R&D 본부장(사장)으로 영입했다. 박 사장은 연세대 생명공학 학석사 후 미국 보스턴의대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하버드대 의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내부 승진 중심이던 기존 인사 기조를 깨고 외부 전문가를 전면에 내세운 첫 사례다.
특히 일동제약은 연구조직을 축소했다가 다시 확대하는 방식으로 구조 재편에 나섰다. 2023년 R&D 부문을 분사해 유노비아를 설립하면서 300명대였던 연구인력이 50명 수준까지 줄었지만, 이후 파이프라인 진전에 맞춰 다시 148명까지 늘렸다. 조직도 10개 팀에서 16개 팀으로 확대하며 임상 개발, 제제 연구, 품질관리 등 신약 개발 전 주기를 포괄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박재홍 사장을 R&D 본부장으로 영입해 조직을 사장 직속으로 격상해, 신약 상업화와 글로벌 기술 이전을 염두에 둔 ‘사업화형 R&D’로 전환하고 있다는 평가다.
명인제약은 코스피 상장 이후 외부 인재 영입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한미약품 대표이사 사장을 지낸 이관순 대표와 1990년 명인제약 공채 1기로 입사한 차봉권 사장의 투톱 체제를 구축하고 전문경영인 중심 구조로 전환했다.
생산·품질·연구개발 등 핵심 보직에도 외부 출신 인사를 배치하며 조직 운영 방식 변화를 본격화했다. 다만, 영업 조직은 내부 출신이 맡아 기존 수익 구조를 유지하는 등 단계적 변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동화약품도 한미약품, 일화, 유유제약, 대웅제약 등을 거친 장재원 전무를 연구개발본부장으로 영입했다. 장 전무의 이동으로 공석이 된 유유제약 개발본부장 자리에는 광동제약, 경남제약, 한국팜비오 등을 거친 류현기 상무가 새로 합류했다.
◇약가 인하에 구조 전환 압박…글로벌 인재 확보 ‘사활’
이런 흐름은 정책 환경 변화와 맞물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제네릭 의약품 약가 산정률을 기존 53.55%에서 45%로 인하하는 개편안을 의결했다. 의료비 경감과 함께 제네릭 중심 구조에서 신약 개발 중심으로의 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취지가 깔려 있다.
이에 제약사들은 R&D와 글로벌 사업 역량을 동시에 강화하지 않으면 성장이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엔 영업과 생산이 경쟁력이었지만 R&D와 글로벌 역량이 기업 가치를 좌우해 여기 맞춰 인력 보강과 조직 개편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시장 진출과 계약 수주 확대를 위한 인재 확보 경쟁도 치열하다.
메디톡스는 임상개발본부 총괄로 이태상 상무를 영입했다. 이 상무는 한국얀센에서 20년 이상 근무하며 글로벌 임상 개발 전 주기를 총괄하고 미국·유럽 허가를 주도한 경험이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MSAT(Manufacturing Science and Technology, 제조과학기술) 조직을 확대하면서 독일 바이온텍(BioNTech) 출신 브람텐 카터(Bram ten Cate) 상무를 영입했다.
MSAT는 연구개발(R&D) 단계 공정을 실제 생산 현장에 안정적으로 이전하고, 수율과 품질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조직이다.
지난해 기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연구 전담 인력은 609명으로 이 중 MSAT 담당 인력이 297명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엔 미국 재즈파마슈티컬스 출신 다이앤 블랙(Diane Black) 부사장(EVP) 겸 최고품질책임자(CCO)를 품질경영센터 총괄로 영입했다.
지난해 출범한 삼성에피스홀딩스의 R&D 전담 인력은 총 620명이다. 이 중 박사급 인력이 158명, 석사급 인력이 237명이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연구개발 부문 인력을 전년보다 92명 늘렸다. 이 회사의 연구개발 조직은 의약품과 공정을 개발하는 △연구개발 부문, 임상과 허가 절차, 규제기관 대응 등을 담당하는 △제품 개발 부문, 자료수집과 분석을 수행하는 △데이터사이언스연구소 등으로 나뉘는데, 연구개발 부문 인력을 전년보다 89명 늘렸다. 지난달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연구개발 인력은 총 801명(박사급 69명, 석사급 390명)이다.
황주리 한국바이오협회 대외협력본부장은 “국내 기업들엔 글로벌 임상과 인허가 경험을 갖춘 인재 확보가 중요한데 인재 풀이 제한적인 한계가 있다”며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미래 성장을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의 인재 양성 정책도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