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과학자가 담뱃속 식물인 니코티아나 벤타미아나(Nicotiana benthamiana)를 키우고 있다. 벤타미아나는 성장 속도가 빨라 치료물질 생산에 애용되고 있다. 이스라엘 연구진이 담뱃잎에서 정신질환 치료에 쓸 수 있는 환각 물질 5종을 동시에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호주 퀸즐랜드 공대

만우절인 지난 1일, 담뱃잎으로 우울증과 거식증, 알코올 중독을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농담이 아니었다. 버섯이나 식물, 두꺼비에서 나오는 천연 환각 물질들을 실제로 담뱃잎에서 생산한 것이다. 모두 예전부터 환각제로 썼지만, 최근 정신 질환에도 효과가 있는 치료물질로 주목받고 있는 물질들이다.

이날 아사프 아하로니(Asaph Aharoni) 이스라엘 바이츠만 과학연구소 식물환경과학과 교수 연구진은 “식물과 동물, 균류에서 나오는 트립타민 계열의 환각 물질 5가지를 담배속(屬) 식물의 잎에서 동시에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렸다.

담뱃잎이 종합 제약 공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미 독감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에볼라 백신부터 면역증강제, 모유 영양분까지 다양한 의약품이 담뱃잎에서 생산됐다. 담뱃잎은 성장 속도가 빨라 치료 물질을 대량 생산하기 쉽다. 정제 과정도 간단해 안전성이 높다는 장점도 있다. 특히 제약산업 기반이 부족한 저개발 국가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환각 물질을 생산하는 마법버섯과 소노란 사막 두꺼비. 천연 환각 물질이 거식증과 우울증 등 정신질환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면서 치료제 후보물질로 주목받고 있다./위키미디어 커먼스

◇버섯, 두꺼비의 환각 물질, 담뱃잎서 생산

동화를 보면 마녀가 커다란 단지에 독버섯과 독초, 두꺼비처럼 가까이하기 싫은 것들을 몽땅 넣고 끓여 사람을 홀리는 마법의 약을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인류는 예전부터 자연에서 얻은 물질을 환각제로 썼다. 대표적인 예가 마법버섯의 실로시빈이다.

마법버섯은 예로부터 시베리아 유목민들부터 남아메리카 마야 부족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종교 의식이나 질병 치료에 쓰였다. 실로시빈은 몸 안에서 실로신으로 바뀌면서 행복감을 유발하는 세로토닌 호르몬과 작용해 환각 작용을 일으킨다.

최근 천연 환각 물질이 정신 질환 치료제로 변신하고 있다.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연구진은 2023년 마법버섯의 실로시빈 성분이 음식을 거부하는 거식증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전에 기존 약이 듣지 않는 우울증이나 알코올 중독도 버섯의 환각 성분으로 치료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바이츠만 연구소 과학자들은 천연 환각 물질 5종을 담뱃잎에서 생산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마법버섯의 실로시빈, 실로신과 열대 식물 2종에서 나오는 디메틸트립타민(DMT), 소노란 사막 두꺼비의 피부샘에서 분비되는 부포테닌과 5-메톡시-DMT다. 연구진은 버섯과 식물, 두꺼비의 환각 물질 생산 유전자와, 쌀·물냉이에서 추출한 보조 효소 유전자 등 9가지 유전자를 담배속 식물인 니코티아나 벤타미아나(Nicotiana benthamiana)에 주입해 잎에서 환각 물질 5종이 동시에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전통적으로 환각 물질은 식물이나 버섯, 두꺼비 등 야생 동식물에 의존했다”며 “치료용 정신 활성 화합물을 얻기 위해 이런 동식물을 채취하는 것은 서식지 파괴와 남획 우려를 불렀다”고 밝혔다. 동식물 대신 담뱃잎 재배로 이런 화합물을 얻는다면 생태계 파괴라는 문제를 막을 수 있다.

아마존에 사는 사이코트리아(Psychotria)속 식물들과 호주 고유종인 아카시아 아쿠미나타(Acacia acuminata)는 잎과 꽃, 줄기 등 다양한 곳에서 환각 물질을 생산했다./Science Advances

◇대량 생산에 적합, 성분 업그레이드도

환각 물질 생산 공장으로 담뱃잎을 택한 것도 신의 한 수이다. 벤타미아나는 호주가 원산지인 식물로, 연초를 만드는 니코티아나 타바쿰(Nicotiana tabacum)과 같은 담배속이지만 종(種)은 다르다. 바이츠만 연구소 과학자들이 이 식물을 환각 물질 생산에 쓴 것은 아미노산인 트립토판을 많이 만들기 때문이다. 천연 환각 물질은 모두 트립토판을 원료로 만들어진다.

담뱃잎은 이미 코로나19 대유행기에 백신 생산에 활용됐다. 캐나다 바이오 기업인 메디카고(Medicago)와 영국 제약 기업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2022년 2월 세계 최초로 담뱃잎으로 만든 코로나19 백신 코비펜즈(COVIFENZ)를 캐나다에서 승인받았다.

메디카고는 벤타미아나에 코로나바이러스의 유전자를 넣어 바이러스 유사 입자를 만들었다. 담뱃잎에서 추출한 입자는 겉모양은 바이러스와 똑같지만, 유전물질이 없어 인체에 들어가도 복제되지 않는다. 그만큼 안전성이 높다. 또 식물에는 사람에게 병을 옮기는 바이러스가 감염되지 않아 추가 정제 과정도 필요 없다. 2024년 미국 과학자들이 모유의 영양 성분을 담뱃잎에서 생산한 것도 아기에게 쓸 수 있을 만큼 안전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더 큰 장점은 속도이다. 담배는 성장 속도가 빠르기로 유명하다. 5월 초에 모종을 심으면 두 달 지나 2m 넘게 자란다. 기존 방식처럼 달걀에 바이러스를 주입해 백신을 만들면 6개월이 걸리지만, 담뱃잎 백신은 6주면 된다. 유전물질인 mRNA(메신저 리보핵산)로 만드는 코로나 백신도 생산 속도가 비슷하지만, 대량 생산은 식물 재배가 훨씬 쉽다.

이스라엘 연구진은 환각 물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그대로 담뱃잎에 옮긴 게 아니다. 일종의 업그레이드 작업도 했다. 두꺼비가 분비하는 환각 물질인 5-메톡시-DMT는 자연에서는 농도가 너무 낮다. 연구진은 인공지능(AI)인 알파폴드3으로 두꺼비의 합성 효소 단백질이 가진 문제점을 찾았다. AI는 유전 정보를 기반으로 단백질의 구조적 결함을 찾았다. 유전자에 이를 보정하는 돌연변이를 일으켜 담뱃잎에 주입했더니 생산량이 두꺼비보다 40배 증가했다.

바이오앱의 그린백신 생산용 담뱃잎 재배실 전경. /포스코인터내셔널 제공

◇의약품 만드는 농업, 파밍

제약업계에서는 이번 연구 결과가 파밍(pharming)의 가능성을 다시 입증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파밍은 약(pharmaceutical)과 농업(farming)의 영어 단어를 합친 말이다. 말 그대로 유전자를 변형한 식물이나 동물에서 치료 물질을 얻는 농업 기술을 말한다.

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인 리서치앤드마켓(Research and Markets)은 지난해 말 발표한 보고서에서 2024년 25억6000만달러(3조8577억원) 규모였던 글로벌 파밍 시장이 연평균 8%씩 성장해 2030년까지 40억6000만달러(6조1172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담뱃잎을 이용한 파밍은 코로나 백신 전부터 효능을 입증했다. 일본에서는 독감 백신을 담뱃잎에서 만들었고, 국내에서도 바이오앱이 돼지열병 바이러스를 막는 백신을 세계 최초로 담뱃잎에서 생산했다. 파밍은 담뱃잎 농사를 누구보다 잘 아는 담배 회사들의 신성장 동력이 될 수도 있다.

담뱃잎에서 코로나 백신을 생산한 메디카고는 스위스 담배 회사인 필립 모리스 인터내셔널의 투자를 받았다. 영국 담배 회사인 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BAT)도 미국 자회사인 켄터키 바이오프로세싱(KBP)과 함께 담뱃잎으로 코로나 백신을 개발했다. KBP와 메디카고는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인 지맵(ZMapp) 개발에도 참여했다. 지맵은 에볼라 바이러스를 공격하는 세 가지 종류의 항체로 구성됐는데, 모두 벤타미아나종 담뱃잎에서 생산됐다.

축산업도 파밍에 참여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09년 미국 GTC 바이로세러퓨틱스가 염소의 젖에서 추출해 개발한 항응고제 에이트린(ATryn, 상품명)을 승인했다. 혈액을 굳게 하는 트롬빈을 막는 단백질 의약품으로, 혈전(피떡)을 방지한다. GTC는 인간의 항트롬빈 유전자를 염소 수정란에 주입하고 대리모 자궁에 착상시켰다. 이렇게 태어난 유전자 변형 염소 암컷은 인간의 항트롬빈 단백질을 젖과 함께 분비했다.

2015년 미국과 유럽에서 허가받은 카누마(kanuma)도 유전자 변형 닭이 낳은 달걀의 흰자로 만든 파밍 의약품이다. 장기에 지방이 축적되는 치명적 유전질환을 치료하는 약이다. 인간의 지방 분해 효소를 닭 유전자에 넣었다.

참고 자료

Science Advances(2026), DOI: https://doi.org/10.1126/sciadv.aeb3034

Nature Food(2024), DOI:https://doi.org/10.1038/s43016-024-00996-x

Nature Medicine(2023), DOI: https://doi.org/10.1038/s41591-023-02455-9

Nature Medicine(2021), DOI: https://doi.org/10.1038/s41591-021-013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