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수가 손상된 환자는 세상과 단절된다. 뇌와 신체 사이의 통신망이 끊겨 팔다리가 마비되고 내부 장기도 기능을 잃는다. 방광을 수축하지 못해 소변을 배출하지 못하고, 소화기관도 음식을 밀어내지 못한다. 과학자들이 마비 환자를 다시 세상과 연결할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휴 허(Hugh Herr)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 교수 연구진은 “살아 있는 근육을 컴퓨터로 제어하는 생체 모터인 근신경 구동기(myoneural actuator, MNA)로 만들어 마비 환자의 장기(臟器) 운동을 회복시킬 수 있음을 동물 실험에서 입증했다”고 지난 31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발표했다.
이전처럼 뇌 신호를 인체에 이식한 기계 장치로 보내지 않고 실제 근육과 신경으로 구성된 생체 모터를 컴퓨터로 작동하는 방법이다. 덕분에 뇌와 연결이 끊어진 신체가 기계 도움 없이 자연스럽게 기능을 회복하고, 배고픔이나 촉감 같은 감각도 살릴 수 있다. 연구진은 마비된 장기의 기능을 되살리는 살아 있는 이식 장치를 최초로 개발한 성과라고 밝혔다.
◇생체 근육과 신경세포로 생체 엔진 개발
휴 허 교수는 의공학 분야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7세이던 1982년 암벽 등반을 하다가 사고로 두 다리를 잃고 평생 의족(義足)을 쓰게 됐다. 그는 더 나은 로봇 다리를 개발하려고 MIT에서 기계공학 석사 학위, 하버드대에서 생체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허 교수는 그동안 환자의 생각대로 움직이고 촉감까지 느낄 수 있는 로봇 팔다리를 개발했다. 로봇 다리를 장착하고 다시 암벽을 탔다.
허 교수는 박사후 연구원인 길레르모 에레라-아르코스(Guillermo Herrera-Arcos) 박사, 송현근 박사와 함께 마비 환자의 장기 기능을 되살리는 새로운 과제에 도전했다. 기계 장치를 장기에 이식해 인위적으로 수축할 수 있지만 몸 안에 넣을 만큼 작고 안전하게 만들기가 쉽지 않다. 허 교수 연구진은 기계 대신 생체 모터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송현근 박사는 “기존 근육을 개조해 장기의 움직임을 회복시키는 모터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컴퓨터 신호를 전달할 신경은 이미 뇌와 연결이 끊어진 운동신경 대신 원래 장기에 있는 감각신경으로 대체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각신경의 끝부분이 생체 모터의 근육 섬유와 결합했다.
생체 모터의 작동 과정은 이렇다. 컴퓨터가 소화나 배설을 위해 장기를 수축하는 신호를 계산한다. 이를 생체 모터로 보내면 감각신경의 말단에서 신호 물질인 아세틸콜린이 방출돼 같이 있는 근육이 수축한다. 그러면 장기 근육도 같이 수축해 소변을 배출하고 음식물을 앞으로 밀어낸다. 연구진은 생쥐의 소장 일부에 생체 모터를 붙이고 컴퓨터 명령에 따라 장기가 같이 수축하고 이완되는 것을 확인했다.
문제는 신경 신호의 혼선을 막는 것이다. 에레라-아르코스 박사는 “구동기가 장기를 자동으로 제어하려면 뇌의 제어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뇌와 장기 사이의 통신망이 완전히 복구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체 모터에 운동신경을 연결하면 뇌가 직접 제어해 컴퓨터 명령과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뇌에서 오는 신호를 막고 생체 모터가 오로지 감각신경을 통해 컴퓨터에서 오는 명령만 받도록 했다. 감각신경은 원래 신체 곳곳에서 오는 신호를 수신하고 뇌로 전달하는 역할을 해 생체 모터에 더 적합하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장기가 오로지 컴퓨터와 생체 모터에 의해 작동하는 셈이다. 동시에 컴퓨터가 생체 모터에 보낸 신호가 감각신경을 통해 뇌로 가지 못하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컴퓨터 신호가 환자에게 통증이나 이상 감각을 줄 수 있다.
◇배고픔 느끼고 가상 세계도 현실처럼 감지
생체 모터에 사용한 감각신경은 근육 피로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됐다. 운동신경에서 근육에 신호를 전달하는 케이블 모양의 축삭은 크기가 다양하다. 그러다 보니 가장 굵은 축삭이 먼저 신호를 보내 근육을 빨리 지치게 한다. 반면 감각신경은 축삭 크기가 모두 비슷해 신호가 근육 섬유 전체에 고르게 전달된다. 그만큼 피로를 방지한다. 실험에서 피로 저항성이 260% 향상됐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생체 모터는 장기 기능을 회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감각신경은 컴퓨터 명령을 전달할 뿐 아니라 장기가 수축하는 느낌을 다시 뇌로 전달할 수 있다. 그러면 음식물이 장에서 이동하거나 비워지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포만감이나 배고픔, 또는 방광이 차거나 비워지는 느낌까지 다시 감지할 수 있다.
같은 원리로 가상현실(VR)에서 물체의 촉감을 실제로 느낄 수 있다. 지금까지는 VR 고글을 쓴 사용자가 눈앞에 보이는 물체를 만지면 장갑에 달린 센서가 이를 감지하고 그에 맞는 진동을 발생시켜 촉감을 구현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기계 장치여서 실제 손발처럼 촉감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생체 모터를 이용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연구진은 생쥐의 종아리 근육에 근신경 구동기를 달아 장기와 같은 방법으로 수축시켰다. 다리나 팔이 잘린 환자의 남은 근육도 같은 방식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의미다. 만약 가상현실에서 아바타가 바위를 들면 컴퓨터가 그 동작에 맞게 남은 팔다리에 있는 생체 모터의 근육을 수축시킨다. 이렇게 하면 가상 세계의 촉감을 실제로 느낄 수 있다. 뇌가 생체 모터의 감각신경을 통해 내 근육이 실제로 힘을 쓰고 있다는 신호를 수신하기 때문이다. 촉감을 흉내 내는 기계적 진동이 아니라 생체 조직이 보내는 진짜 고유 감각을 느끼는 것이다.
◇로봇 팔다리 촉감도 회복 가능
연구가 발전하면 로봇 팔다리를 내 몸의 일부처럼 실시간으로 느끼고 제어할 수 있다. 앞서 2024년 허 교수와 송 박사 연구진은 다리를 절단한 환자가 로봇 다리를 100% 뇌로 제어할 수 있도록 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뇌가 보내는 신호를 로봇 다리에 연결한 덕분이다. MIT 연구진은 남은 다리 근육의 운동신경을 로봇 다리에 연결해 뇌 신호가 로봇 동작으로 이어지도록 했다. 그만큼 자연스러운 동작을 할 수 있었다.
앞으로 남은 다리 근육에 감각신경을 가진 생체 모터까지 장착하면 로봇 팔다리에 닿는 촉감을 실제로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도 로봇 팔다리 끝에 센서를 달아 물체가 닿는 느낌을 뇌로 전달할 수 있지만, 생체 모터를 쓰면 더 자연스러운 감각을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논문의 공동 제1 저자인 송 박사는 경기과학고, 일본 나고야대 전기전자공학과를 나와 도쿄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는 MIT에서 생의학의공학 전공으로 받았다. 지금은 로봇 관련 스타트업을 준비하고 있다. 송 박사는 연구 결과가 상용화되려면 과제는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송 박사는 “이번 연구의 핵심은 감각신경으로 마비된 근육을 다시 지배해 생체 근육을 외부 컴퓨터로 제어할 수 있는 구동기로 전환했다는 점”이라며 “현재 연구는 동물 실험으로 가능성을 검증한 단계로 인체에 적용하려면 장기적으로 시스템을 최적화하고 안전성과 효율성을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Nature Communications(2026),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6-70626-6
Nature Medicine(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91-024-029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