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자들에게 감사보고서는 ‘시험지 채점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중에서도 핵심감사사항(KAM)은 회계사가 “이 대목은 위험하니 눈여겨보라”고 찍어준 ‘급소’다. 경영진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크거나 재무제표를 흔들 수 있는 불확실한 대목이라는 뜻이다.

국내 매출 상위 제약사 3곳의 감사보고서를 통해 이들이 안고 있는 ‘재무적 뇌관’이 무엇인지 짚어봤다.

일러스트=챗GPT

① 유한양행: 976억 자산의 운명, ‘타그리소’ 꺾느냐에 달렸다

유한양행은 폐암 치료제 ‘렉라자’의 글로벌 상업화 성과가 무형자산 가치 유지 여부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지목됐다.

현재 유한양행 장부에는 약 976억원이 렉라자의 내부창출 개발비로 계상돼 있다. 내부창출 기술은 시장 가격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미래 현금흐름에 대한 경영진 판단이 자산 가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감사인이 렉라자의 손상 검토를 핵심감사사항으로 지정한 배경이다.

손상 검토는 회사가 자산으로 처리한 개발비(무형자산)의 미래 경제적 가치가 장부금액보다 낮아졌는지 확인하고, 회수 가능한 금액만 남긴 뒤 나머지를 손실(손상차손)로 반영하는 회계 절차다.

렉라자 병용요법은 FDA를 시작으로 유럽, 일본, 한국, 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잇따라 허가를 받았다. 유한양행이 얀센과 체결한 총 9억5000만달러 규모 라이선스 계약 가운데 약 2억7000만달러도 이미 유입됐다. 감사인은 이 같은 성과를 근거로 현재 장부가치가 합리적인 수준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리브리반트'와 '렉라자(미국명 라즈클루제)'. 두 약의 병용요법은 올 초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 비소세포폐암 가이드라인에 1차 치료 선호요법(Preferred Regimen)으로 등재됐다./얀센

다만 기존 1위 치료제인 ‘타그리소’ 대비 얼마나 빠르게 처방이 확대되느냐에 따라 향후 장부 가치 유지 여부는 달라질 수 있다. 타그리소는 현재 글로벌 시장 점유율 약 70%를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 약물이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만큼 처방 확대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향후 손상 검토가 다시 부각될 가능성도 있다.

분기점은 렉라자 병용요법의 전체생존기간(mOS) 결과 발표다. 이지원 흥국증권 연구원은 “mOS 확인은 올해 하반기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시장 기대치를 넘어서는 서프라이즈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② GC녹십자: 432억 ‘큐레보’의 임상 결과, 순이익 흔드는 ‘와일드 카드’ 될까

GC녹십자는 미국 백신 개발사 큐레보 가치 변동이 곧바로 당기순이익에 반영되는 구조가 관건이다.

큐레보는 GC녹십자가 미국 현지 백신 전문가들과 공동으로 투자해 2018년 설립한 백신 개발사다. 현재 대상포진 백신 ‘아메조스바테인’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며 아직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 비상장사다.

감사인의 레이더에 오른 건 GC녹십자가 보유한 큐레보 전환우선주가 기존 ‘관계기업주식’에서 전기 중 ‘당기손익-공정가치측정 금융자산’으로 재분류되면서다. 당기 말 기준 보유 전환우선주는 4만3156주다.

이 자산은 결산 시점의 가치 변동분이 즉시 당기순이익에 반영된다. 즉, 큐레보의 기업가치가 1원만 변해도 GC녹십자의 손익 변동성이 확대되는 구조다.

더욱이 큐레보는 시장 가격이 없는 ‘수준3′ 공정가치 평가 대상이다. 미래 매출 추정과 할인율 등 경영진의 가정이 크게 반영된다.

큐레보의 장부상 공정가치는 당기 말 기준 약 432억원으로 평가됐다.

큐레보 로고./큐레보

다만 올해 하반기 발표가 예정된 임상 2상 결과와 3상 진입 여부에 따라 큐레보의 가치는 달라질 수 있다. GC녹십자는 큐레보와 위탁생산(CMO) 계약도 체결하고 있어 큐레보의 성공 여부는 단순 투자 수익을 넘어 향후 공장 가동률과도 연결된다.

이 때문인지 장부상 수치의 변동성을 관리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됐다. GC녹십자는 보유 중이던 SAFE(조건부 지분 인수 계약) 자산을 당기 중 처분했다.

SAFE는 향후 기업가치 상승 시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권리다. 이를 처분한 것은 장기적인 지분 가치 상승에 따른 ‘업사이드(추가 이익)’를 기다리기보다, 확정된 현금을 확보해 재무 안정성을 꾀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으로 해석된다.

회사 측은 “아메조스바테인은 글로벌 시장에서 두 자릿수 점유율 확보를 목표로 개발 중”이라며 “현재 글로벌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싱그릭스’와 마찬가지로 면역증강제가 포함된 재조합 단백질 백신이지만, 차세대 면역증강제를 적용해 내약성 측면에서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③ 종근당: 887억 ‘환불 부채’ 선반영, 소송 결과 따라 환입 vs 확정 갈림길

종근당은 뇌기능개선제 ‘글리아티린(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 환불부채 규모가 향후 실적 변동성을 키울 가능성이 있다.

환불부채는 반환 가능성이 있는 금액을 미리 부채로 인식하는 회계 처리다. 종근당이 설정한 환불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887억원이다. 1년 사이 365억원이 늘었다.

보건복지부는 2020년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 일부 적응증을 선별급여로 전환하면서 제약사들에 임상 실패 시 처방액 일부를 환수하는 조건의 요양급여 계약 체결을 요구했다. 제약사들은 이후 재평가 임상 실패로 적응증이 삭제될 경우 일정 기간 처방액의 20%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반환하는 데 합의했다.

제약사들은 해당 환수협상 계약이 사실상 강제된 조치이며 법률유보 원칙에도 위배된다는 이유로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지난해 1심에서는 패소했고 현재 항소심을 진행하고 있다.

항소심 판결 결과에 따라 887억원은 실제 지출로 확정될 수도 있고 일부가 이익으로 환입될 수도 있다. 시점에 따라 단기 실적 변동성 확대 요인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지난해 3월 대법원 1부는 종근당 등 제약사들이 제기한 건강보험약제 선별급여적용 고시 취소 청구 소송에 대해 상고 기각을 선고하고, 관련 소송비용까지 모두 원고 측이 부담하도록 했다./뉴스1

글리아티린은 현재도 종근당 처방 실적의 약 11.5%를 차지하는 핵심 품목이다. 다만 선별급여 전환 이후 처방 규모는 감소세로 전환됐다. 지난해 처방액은 1112억원으로 2024년 1213억원 대비 101억원, 약 8.3% 줄었다.

김범준 가톨릭대 회계학과 교수는 “소송 관련 손실은 기업회계기준서(K-IFRS) 제1037호에 따라 현재의무 존재와 자원 유출 가능성, 손실금액의 합리적 추정이 가능할 경우 판결 확정 이전이라도 충당부채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판결이 확정되면 최종 손실금액에 맞춰 추가 인식하거나 환입하는 방식으로 조정하게 된다. 해당 금액은 재무상태표에는 부채로, 포괄손익계산서에는 비용으로 반영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