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비만 치료제 시장을 주도하는 ‘위고비’의 핵심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가 일부 국가에서 특허가 풀린다. 인도·중국 등 세계 인구의 약 40%를 차지하는 시장에서 특허 장벽이 낮아지는 것이다. 특히 인도에서는 40곳이 넘는 제약사가 위고비 복제약(제네릭) 50여 종 출시를 준비 중이다. 중국에서도 다수 제약사가 복제약 출시 절차를 밟고 있다.
◇월 15달러로 가격 낮아질 수도
노보 노디스크가 개발한 위고비의 주성분 세마글루타이드 복제약은 올해 캐나다, 브라질, 튀르키예에서도 출시될 전망이다. 투약 비용이 월 300달러 이상(미국 기준)이었던 위고비는 복제약이 본격 공급되면 가격이 급격히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분석에선 가격 경쟁이 본격화할 경우 인도에서는 월 15달러 수준까지 낮아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이는 복제약 출시가 잇따르고 공급이 안정된다는 전제에서 나온 전망치다. 특허 만료를 계기로 고가(高價) 의약품이 대중 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한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비만 신약이 더 이상 소수 고소득층만 접근 가능한 약이 아니라 대중적 치료 옵션으로 바뀔 가능성이 커졌다.
과거에는 신약 특허가 만료돼도 자본과 기술력이 뛰어난 일부 기업이 주로 시장에 진입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인도·중국의 대규모 제네릭 생산 기반이 비만약 시장에 한꺼번에 진입한다는 점에서 파급력이 크다. 앞으로 비만 치료제 가격이 낮아지면, 더 많은 계층이 접할 수 있어 시장 규모는 대폭 커질 것으로 보인다.
◇비만약 시장 규모 300조원 전망
지난해 WHO(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성인 과체중 인구(2022년 기준)는 25억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비만 인구는 약 8억9000만명이다. 비만·과체중 인구가 빠르게 늘면서 비만 치료제 수요도 급증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일부 시장조사 기관은 2030년 비만 치료제 시장 규모가 2000억달러(약 300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본다. 항암제와 달리 비만 치료제는 장기 복용이 필요한 데다, 잠재 환자 수가 압도적으로 많아 시장 확장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매출 순위 변동 전망에서도 나타난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비만·당뇨 치료에 사용되는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가 2030년 매출 340억달러(약 50조원)로 세계 1위 의약품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지난해 매출 320억달러(추정)로 선두였던 항암제 키트루다는 2030년에는 170억달러 수준으로 9위까지 밀릴 것으로 예상됐다. 키트루다는 2023년부터 글로벌 매출 1위를 지켜온 대표적인 블록버스터(연 매출 10억달러 이상 의약품)다.
키트루다는 한국에서 2028년 물질 특허가 만료될 예정이다. 미국에서는 2028년부터 핵심 특허 만료가 시작된다. 이후 바이오시밀러가 대거 출시되면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만 치료제는 세계적으로 비만·과체중 인구가 많아 특허 만료로 가격이 낮아지면 오히려 시장이 더 커지는 구조를 보이고 있다. BCG가 2030년 글로벌 매출 톱 10으로 예상한 의약품 가운데 마운자로, 오젬픽, 젭바운드, 위고비, 카그리세마(현재 개발 중) 등 5종이 비만 치료에 쓰이는 약이다. 비만 관련 약이 상위 10위 의약품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비중이 커진다고 전망하는 것이다.
◇“한국, 비만 신약 개발 서둘러야”
일각에서는 비만 치료제 시장의 현재 흐름이 반도체 산업과 유사하다고 본다. 초기에는 소수 기업이 기술로 시장을 독점하지만, 이후 특허가 풀리면 다수 기업이 진입해 가격 경쟁이 벌어지고 시장이 급격히 확대되는 구조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비만 치료제는 단순한 의약품이 아니라 장기 복용 기반의 플랫폼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한국은 이 변화에서 다소 애매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평가다. 혁신 신약은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고, 저가(低價) 복제약 생산은 인도와 중국이 장악하는 가운데, 한국은 아직 비만 관련 혁신 신약을 상용화 단계로 개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면 글로벌 빅파마는 먹는 비만약을 비롯해 고용량, 근육 보존형, 장기 지속형 등 환자 편의를 높인 비만 신약을 앞다퉈 출시하며 격차를 벌리고 있다. 비만 치료제가 향후 글로벌 제약 시장의 중심축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