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신약 개발 과정에서 ‘기본값’처럼 여겨온 동물 실험을 완화할 전망이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미국 정부가 신약 개발 과정에서 사실상 ‘기본값’처럼 여겨온 동물 실험 체계를 바꾸기 시작했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동물 실험을 대체하는 시험 방법(NAMs·New Approach Methodologies)으로 얻은 결과를 신약 심사에 활용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초안을 최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오가노이드(초소형 인공 장기)와 장기칩(organ-on-a-chip)처럼 아직 검증과 표준화가 진행 중인 대체 시험 데이터도 FDA 심사 과정에서 폭넓게 검토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장기칩은 사람 장기의 구조와 기능을 작은 칩 위에 재현한 실험 장치다.

이번 초안은 사전에 완전히 검증된 상태가 아니더라도 규제 목적에 맞고 과학적 신뢰성을 설명할 수 있다면 제출 자료로 검토할 수 있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다만 인간 생물학과의 관련성, 재현성, 사용 목적의 명확성 등은 갖춰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이번 초안은 대체 시험을 단순 연구 자료가 아니라 규제 검토 대상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미 국립보건원(NIH)도 동물실험 대체시험 관련 기술의 개발·검증·표준화에 1억5000만달러(약 2200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오가노이드와 장기칩 등 인간 기반 연구 기술을 고도화하고, 심혈관 질환과 희귀 질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가능한 평가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는 “FDA의 가이드라인과 NIH의 투자 계획은 동물 실험 대체 기술과 관련해 규제와 연구·개발 지원을 병행하는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제약·바이오 업계는 이번 변화가 신약 개발 속도와 효율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동물 실험은 오랫동안 안전성 평가의 기본으로 여겨졌지만, 동물과 인간의 생리 차이 때문에 실제 임상 결과를 충분히 예측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꾸준히 지적돼 왔다. 반면 오가노이드와 장기칩은 인간 조직 반응을 더 직접적으로 반영할 수 있어 독성 평가나 후보 물질 선별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는 기대를 받고 있다.

다만 대체 시험이 당장 동물실험을 완전히 대체하는 단계에 들어선 것은 아니다. 재현성과 표준화, 질환별 적용 범위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