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5년 채색 판화 '향고래 포경'./위키미디어 커먼스

향고래의 박치기가 처음으로 카메라에 포착됐다. 19세기 포경선을 침몰시켰다고 소설까지 나온 공포의 박치기가 선원들의 허풍이 아니라 고래의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확인된 것이다. 왜 고래가 서로 박치기를 하는지 이유는 아직 알 수 없다. 과학자들은 추가 연구를 통해 사회적 결속을 다지는 놀이의 일종인지, 아니면 수컷들의 치열한 서열 경쟁인지 밝혀낼 계획이다.

영국 세인트 앤드루스대의 알렉 버렘(Alec Burslem) 박사 연구진은 “2000년부터 2002년 사이 북대서양 아조레스 제도와 발레아레스 제도에서 향고래들이 서로 머리를 부딪치는 모습을 드론으로 촬영했다”고 23일 국제 학술지 ‘해양 포유류 과학’에 발표했다. 향고래의 박치기가 과학적으로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포경선 침몰시키던 헤딩, 첫 목격

향고래는 몸길이가 15m이고 몸무게가 50t에 이르는 대형 고래이다.범고래나 돌고래처럼 이빨로 먹이를 무는 이빨고래류 중 가장 크다. 뇌 용량도 고래 중 단연 1위이다. 향고래는 19세기부터 선박을 들이받아 침몰시키는 공포의 대상으로 알려졌다. 미국 작가 허먼 멜빌이 1851년 발표한 소설 ‘모비 딕’의 주인공이 바로 향고래이다.

세인트 앤드루스대 연구진은 포르투갈 아조레스대, 스페인 고래 연구소인 아소시아시온 투르시오프스(Association Tursiops)와 함께 북대서양에서 드론을 띄워 향고래들을 추적했다. 3년 연구 끝에 향고래들이 서로 들이받는 사례를 3건 포착했다. 두 사례는 어린 수컷으로 추정되는 개체 간 충돌로 추정되며, 한 번은 수컷이 머리로 암컷의 몸통을 들이받은 사례였다.

충격량은 수컷이 암컷을 공격한 사례가 200킬로뉴턴으로 가장 컸다. 암컷의 몸 중심선이 눈에 띄게 밀려날 정도였다. 뉴턴은 1㎏ 질량을 초당 1m의 가속도로 가속시키는 힘이다. 1.5t 무게의 자동차가 시속 100㎞로 벽을 들이받을 때 충격량이 41킬로뉴턴이라고 보면 향고래의 헤딩이 얼마나 큰 충격을 줬을지 짐작할 수 있다. 배라도 침몰시킬 만한 힘이다.

실제로 27m 길이의 범선형 포경선인 미국 에식스호는 1820년 11월 20일 남태평양에서 향고래의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모비 딕의 모티브가 된 사건이다. 당시 일등 항해사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향고래는 500m 거리에서 평소보다 두 배 속도로 돌진해 배를 들이받았다. 향고래가 배를 침몰시킨 사례는 에식스호 외에 여러 건 더 있다.

어린 수컷으로 추정되는 향고래 두 마리가 나란히 헤엄치다가(왼쪽) 방향을 바꿔 정면으로 박치기를 하는 모습(오른쪽)./Marine Mammal Science

연구진은 향고래가 왜 박치기를 하는지 명확하게 밝히지 못했다. 가설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수컷 간 경쟁이다. 실제로 이번에 박치기를 한 고래는 대부분 수컷들이었다. 하지만 고래의 헤딩은 진화에서 유리했을 가능성이 낮다. 고래는 머리에서 초음파를 발생해 위치를 파악하고 동료와 의사소통을 하기 때문이다.

다른 가능성은 고래들이 박치기를 놀이로 한다는 것이다. 어린 고래가 자라서 겪게 될 경쟁이나 구애, 성적 행동을 연습하고 준비하는 과정일 수 있다. 이는 다른 포유류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행동이다.

실제로 어린 수컷들이 박치기를 할 때 생식기를 노출하는 모습도 관찰돼 성적인 맥락과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연구진은 향고래가 왜 박치기를 하는지 이해하려면 앞으로 더 많은 관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행히 과거와 달리 드론이라는 신기술이 등장해 앞으로 더 많은 관측 사례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서서 자는 미스터리한 존재

향고래는 용연향(龍涎香)과 고래 기름을 얻으려고 무분별하게 남획하는 바람에 개체 수가 급감한 멸종위기종이다. 용연향은 향고래의 장내 분비물이 뭉쳐져 배출된 것으로, 최고급 향수의 향 고정제로 사용됐다. 향고래는 18세기만 해도 전 세계에 110만마리 이상이 살았지만 상업적 포경이 본격화되면서 1880년까지 29%까지 감소했다고 추정된다.

향고래를 살리려면 어떤 존재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하지만 거대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모르는 점이 많다. 물속에서 머리를 위로 하고 선 채 잠자는 행동이 대표적인 예이다. 고래나 돌고래는 잠을 잘 때에도 한쪽 뇌는 깨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혹시 천적이 다가올지 몰라 숙면에 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늘 한쪽 눈을 뜨고 있으며 헤엄도 치고 호흡도 한다. 하지만 향고래는 뇌 전체가 완전히 휴식 상태에 빠져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스위스 사진작가인 프랑코 반피는 2017년 1월 28일 카리브해 도미니카 앞바다 수심 20m에서 세로로 서서 10~15분간 숨도 쉬지 않고 잠을 자는 향고래들을 촬영했다./Franco Banfi

영국 세인트 앤드루스대의 패트릭 밀러(Patrick Miller) 교수 연구진은 2008년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향고래가 서서 잔다는 사실을 처음 발표했다. 관찰 결과 향고래는 수면에서 수직으로 내려가다가 방향을 180도 바꾸어 머리를 위로 한 채 온몸에 힘을 빼고 떠오르면서 잠에 빠졌다.

서서 자는 시간은 아주 짧았다. 수면 시간을 재보니 전체 시간 중 단 7.1%에 그쳤다. 짧게는 6분에서 길어야 24분이었다. 이는 수면 시간 비중이 32%인 흰고래나 42%인 귀신고래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 연구진은 뇌 전체가 완전한 숙면으로 짧은 시간에도 원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참고 자료

Marine Mammal Science(2026), DOI: https://doi.org/10.1111/mms.70153

Current Biology(2008), DOI: https://doi.org/10.1016/j.cub.2007.1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