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년 된 제약사 GC녹십자는 창업자 일가 2세 회장을 필두로 3세 조카들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고(故) 허채경 창업자의 다섯째 아들인 허일섭 GC(녹십자홀딩스) 회장은 현재 지배 구조 정점에 자리 잡고 있다.
창업자 차남인 故허영섭 전 회장의 아들이자 허일섭 회장의 조카인 허은철 GC녹십자 대표와 허용준 GC대표가 실질적 경영을 맡고 있다.
여기에 허 회장의 두 아들도 각각 재무와 해외 사업으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재계에서는 허은철·용준 대표를 중심으로 형성됐던 3세 후계 구도에 변화가 올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2세 허일섭 회장→녹십자홀딩스→녹십자 지배 구조
녹십자의 후계 구도를 보려면 허채경 창업자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5남 1녀를 뒀고 녹십자와 한일시멘트를 세웠다. 녹십자는 둘째 아들인 허영섭 전 회장과 다섯째 아들인 허일섭 회장에게 물려줬다. 허영섭 전 회장이 2009년 별세하며 허일섭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했다. 한일시멘트는 첫째, 셋째, 넷째 아들이 맡았다.
허영섭 전 회장의 장남인 허성수 전 녹십자 부사장은 2005년 경영에 참여했다가 2007년 물러났다. 이후 허영섭 전 회장의 차남과 삼남인 허은철·용준 대표 체제가 자리 잡았다. 그밖에 허일섭 회장의 아들인 허진성 녹십자홀딩스 CFO(최고 재무 책임자)와 허진훈 녹십자 글로벌사업본부 알리글로 팀장을 포함해 창업자 일가 5명이 현재 회사에 재직 중이다.
현재 회사 지배 구조는 허일섭 회장이 쥐고 있다. 허일섭 회장은 지난해 연말 사업보고서 기준 녹십자홀딩스 지분 12.29%를 갖고 있는 최대주주다. 녹십자홀딩스는 녹십자 지분 50.06%를 보유 중이다. 허일섭 회장→녹십자홀딩스→녹십자로 지배 구조의 핵심 고리가 이어지는 것이다.
그는 그밖에 녹십자(0.57%), 녹십자웰빙(0.48%), 녹십자엠에스(10.09%), 지씨셀(0.19%), 지씨지놈(2.15%) 등 상장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다.
3세들도 회사 지분을 보유 중이다. 허은철 대표는 녹십자홀딩스 2.68%, 녹십자 0.25%, 녹십자웰빙 1.69%, 지씨지놈 3.32% 등의 지분을 갖고 있다. 허용준 대표(2.96%), 허진성 CFO(0.78%), 허진훈 팀장(0.72%) 모두 녹십자홀딩스 지분을 들고 있다.
◇삼촌·조카에 사촌까지…3세 후계 구도는 어디로
현재까지는 허영섭 전 회장의 차남인 허은철 대표가 승계 구도에서 한발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허일섭 회장의 장남인 허진성 CFO도 재무를 총괄하는 핵심 보직을 맡고 있다. 차남 허진훈 팀장도 알리글로 해외 사업을 주도하며 성과를 내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를 두고 3세 후계를 단정하기 이르다는 관측도 나온다. 향후 경영 능력을 얼마나 입증하느냐에 따라 승계 구도가 유동적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녹십자 관계자는 “현재 2세 회장이 있기 때문에 (3세 후계 구도에 대해서는) 정해진 바 없다”고 했다.
녹십자는 실적도 반등하는 분위기다. 녹십자의 지난해 연결 매출은 1조9913억원으로 전년 대비 19%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691억원으로 전년 대비 115% 늘었다.
성장의 핵심은 혈액제제(면역글로불린) 알리글로다. 혈액제제는 혈장에 있는 여러 단백질을 성분별로 분리해 만든 의약품이다. 알리글로는 2023년 말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품목 허가를 받은 면역 결핍증 치료제다. 지난해 미국에서 매출 1500억원을 올렸다.
현재 알리글로는 정맥(靜脈) 주사 제형이지만, 회사는 혈액제제를 피하(皮下) 주사 제형으로 개발할 예정이다. 내년 임상 3상에 진입한 뒤 결과에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2031년 FDA 신청을 목표로 하고 있다.
피하 주사는 환자가 병원에 방문하지 않고 스스로 투여할 수 있어 편리하다. 투여 시간도 짧아 시장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고, 수익성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녹십자 관계자는 “글로벌 경쟁사 대부분이 피하 주사 제형을 확보한 상황”이라면서 “초기 정맥 주사로 환자를 확보한 뒤 피하 주사로 전환하는 ‘락인(잠금) 효과’가 가능하다”고 했다.
이지원 흥국증권 연구원은 “알리글로가 미국 시장에 안착한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피하 주사 개발을 통한 포트폴리오 확장이 잠재력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