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데르발스 반도체 질화붕소(BN)를 비틀어 적층해 형성한 모아레 양자우물 모식도./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내 연구진이 기존 반도체 기술로는 구현이 매우 어렵다고 여겨졌던 심자외선 영역에서 빛을 효율적으로 내는 새로운 반도체 소재 구조를 개발했다. 심자외선은 자외선 가운데서도 파장이 특히 짧은 200~280㎚(나노미터·10억분의 1m) 구간을 말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김종환 포스텍 교수와 조문호 기초과학연구원(IBS) 단장 연구진이 반데르발스 반도체를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양자우물’ 구조를 구현해 심자외선 발광 효율을 크게 높였다고 20일 밝혔다. 연구진은 기존 알루미늄질화갈륨 계열 소재와 비교해 발광 효율이 20배 이상 향상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20일 게재됐다.

반도체 광원 기술은 그동안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 영역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디스플레이, 레이저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이보다 더 짧은 파장의 자외선 영역으로 기술 개발이 확장되고 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세균과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데 쓰일 수 있는 심자외선 광원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문제는 효율이다. 현재 자외선 LED는 주로 질화갈륨 계열 반도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여기에 알루미늄을 섞어 알루미늄질화갈륨으로 만들면 더 짧은 파장의 빛을 낼 수 있다. 하지만 파장이 200~240㎚ 수준으로 짧아질수록 효율이 급격히 떨어진다. 이 구간에서는 광원 효율이 1% 아래로 내려가는 경우가 많아,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운 영역 가운데 하나로 꼽혀 왔다.

연구진은 이 한계를 넘기 위해 구조 자체를 바꾸는 접근을 택했다. 이들이 활용한 것은 ‘반데르발스 층상 구조’를 가진 질화붕소(BN)다. 반데르발스 물질은 한 층 안에서는 원자들이 단단히 결합돼 있지만, 층과 층 사이는 비교적 약하게 붙어 있어 얇게 떼어내거나 서로 다른 각도로 쌓기 쉽다.

연구진은 질화붕소 층을 서로 약간 비틀어 쌓았을 때 전자를 매우 좁은 공간에 가두는 특별한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구조를 연구진은 ‘모아레 양자우물’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양자우물은 전자 같은 입자를 아주 작은 공간에 가둬 특정한 에너지 상태를 만들도록 하는 구조를 뜻한다. 반도체 소자에서 빛의 파장이나 효율을 조절할 때 자주 쓰이는 개념이다. ‘모아레’는 두 겹의 무늬를 살짝 어긋나게 겹쳤을 때 새로운 큰 무늬가 나타나는 현상을 말하는데, 원자층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즉, 원자층을 살짝 틀어 쌓으면 전자들이 움직이는 방식이 달라지고, 그 결과 기존과 다른 성질의 빛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이번 연구의 의미는 단순히 효율을 높였다는 데만 있지 않다. 그동안 반데르발스 물질에서 나타나는 양자현상 연구는 주로 그래핀처럼 매우 얇은 2차원 박막 중심으로 진행돼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3차원 결정 형태의 질화붕소를 비틀어 쌓는 비교적 단순한 방식만으로도 독특한 2차원 양자우물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한편 심자외선은 강한 살균 효과 때문에 병원, 학교, 대중교통 같은 다중이용시설에서 관심을 받아 왔다. 다만 현재 많이 거론되는 260㎚ 안팎의 자외선은 인체 피부나 눈에 해를 줄 수 있어 사용에 제약이 있다. 반면 200~230㎚ 대역의 이른바 ‘파장이 더 짧은 심자외선’은 피부 바깥층을 깊게 통과하지 못해 상대적으로 안전할 가능성이 있는 파장대로 연구돼 왔다.

이번 성과는 바로 그 200~230㎚ 구간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낮은 발광 효율 문제를 풀 실마리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고효율 광원이 실제 소자로 이어진다면, 사람이 많은 실내 공간에서 공기나 표면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차세대 위생 기술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다.

김종환 교수는 “반데르발스 물질에서 나타나는 고유한 모아레 양자물리 현상을 2차원에서 3차원 물질로 확장하는 개념적 전환”이라며 “이 연구는 향후 새로운 양자물질 설계와 차세대 광소자 개발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 자료

Science(2026)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eb20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