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22일 경북 의성의 한 야산에서 시작된 불은 초속 10m의 강풍을 타고 북동쪽으로 질주했다. 세찬 불길은 일주일 만에 경북 북부 5개 시·군(의성·안동·청송·영양·영덕)과 경남 산청·하동, 울산 울주까지 휩쓸었다. 산림청은 이 대형산불로 약 10만4788㏊(1047㎢)의 면적이 불탔다고 잠정 집계했다. 이는 서울 면적의 약 1.73배에 달하며, 2000년 동해안 산불 피해 면적(2만3794㏊)의 4배를 넘어섰다. 영남 일대를 휩쓴 이 불로 33명이 숨지고 45명이 다쳤다. 주택·공장 등 건축물 4000여 채가 불탔고, 특히 경북 의성 천년 고찰 고운사와 안동의 명승지인 만휴정 등 국가유산들도 소실되거나 일부 불타는 등 피해를 보았다.
2025년 4월 4일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지구관측위성 랜드샛 9호가 찍은 위색(false color) 위성사진은 그 참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의성에서 시작해 안동·청송·영양·영덕을 거쳐 동해안까지 80㎞ 길이로 뻗은 갈색·붉은색 화마 흔적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부는 이 일대 20여 곳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피해 복구에 나섰지만, 1년이 지난 지금도 이재민 5545명 가운데 3800여 명이 임시 거처에서 생활하고 있다.
국내 위성회사 나라스페이스 어스페이퍼팀은 영남 산불 1년을 맞아 20일 한반도 상공에서 포착한 영남 산불의 상흔과 1년이 지난 현재의 회복 상태를 입체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유럽우주국(ESA)의 코페르니쿠스 센티넬-2 위성과 NASA의 랜드샛 9호가 찍은 영상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산불 진화 이후 1년간 일부 지역에선 생태계 회복이 진행됐지만, 대부분 고지대 피해 지역은 최근까지도 회복이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산청과 의성, 영덕에선 산불로 숲이 사라지면서 급경사 지역에서 토양 유실 위험이 커지며 ‘2차 피해’가 우려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길 지나간 자리, 픽셀이 말하는 회복의 속도
산불 피해 지역의 회복 속도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위성 카메라는 지표면에서 반사되거나 흡수된 적외선과 자외선, 가시광선 등 보이지 않는 빛을 포착하는데, 빛의 이런 성질을 이용하면 지표면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정규식생지수(NDVI)와 정규탄화지수(NBR)는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생태계 자생 능력을 정밀하게 수치로 보여준다. NDVI는 건강한 식생은 광합성 과정에서 적색광을 흡수하고 근적외선은 강하게 반사하는 원리를 이용해 숲의 활력과 산불 이후 회복 속도를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NBR는 근적외선과 단파 적외선 반사 세기 차이를 이용해 산불 피해 수준을 제공한다. 불에 탄 지역은 모든 나무와 수풀이 파괴되고 수분이 모두 증발하면서 단파 적외선의 반사 특성이 크게 변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분석팀에 따르면, 지난해 3월 22일 불이 시작해 379.3㏊를 태운 울산 울주군 지역은 위성 분석 데이터상으로는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이 지역은 산불 직후 피해 산정 과정에서 전체 피해 지역 중 약 79%인 300㏊가 피해 강도 ‘하’ 등급으로 분류됐다. 이번 분석에서 대운산과 불광산 일대의 식생은 다섯 달 뒤인 같은 해 8월 NDVI 값이 정점에 도달하며 폭발적인 생명력을 증명했다. 이 값이 커졌다는 것은 수풀이 건강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농경지 인근 지역에선 수풀이 우거질 여름철에도 평년과 달리 NDVI 수치가 낮게 나타났다. 이는 사람의 활동이 많은 평지의 경우 산악 지역과 달리 생태계 회복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음을 추정케 하는 대목이다. 이번 분석에서는 산불 초기 울주군에서 큰 피해를 본 지역이 회복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증후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경남 산청은 울주보다는 복잡한 회복 양상을 띠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청은 지난해 산불 당시 총 2163.8㏊가 피해를 봤다. 전체 피해 면적 중 ‘하’ 등급이 1751.3㏊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피해 정도가 큰 ‘상’ 등급 138㏊, ‘중’ 등급은 274.5㏊로 넓게 분포해 지역별 복구 여건에는 차이가 난다.
이번 위성 영상 분석 결과, 산청군 전역에서 나무와 풀이 점진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지역적으론 회복 속도에 차이가 나타났다. 지난해 8월까지 지리산 남쪽 구곡산 일대는 대부분의 식생이 제 모습을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하동군 방면으로 이어진 남측 사면은 계속해서 숲의 우거진 정도를 나타내는 NDVI 값이 낮게 나타났다. 이는 산불 피해 강도와 지역별 생육 조건 차이가 함께 작용하면서 설명하기 어려운 회복 과정이 나타난 것으로 해석된다.
건강한 초목과 그을린 지형의 대비로 화재 심각도를 나타내는 NBR값도 지역별 차이가 나타났다. 산불이 꺼진 이후 구곡산 일대 산림은 대부분 회복이 진행되고 있지만, 하동군 방향으로 이어진 피해 지역에서는 나무와 풀이 잘 자리 잡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산불이 발생했을 당시 강력한 열기가 토양 속 수분을 완전히 앗아갔거나 식생 하부 조직까지 파괴했음을 의미했다.
산청군의 데이터는 식생 회복이 단순히 계절 패턴을 따르기보다는 지형적 조건과 연소 강도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NBR값은 시간에 따라 비슷한 패턴을 보이지만, NDVI는 지역별로 변동성이 커지는 등 단순한 계절 패턴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회복 과정을 보였다.
의성·영덕, 8만4000㏊ 거대한 흉터
지난해 영남 산불로 경북 의성과 영덕에서는 모두 8만4404.3㏊의 면적이 불탄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시 면적의 약 1.4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상’ 등급 피해 지역은 1만1260.9㏊, 중 등급은 1만7275.9㏊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는 등 상황은 더욱 엄중했다.
의성 지역의 분석 결과, 산불 직후인 4월과 비교해 8월에는 식생의 생장 활동이 활발해지고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전년 같은 시기와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였다. 의성에선 상 등급 피해지가 특정 지역에 집중되지 않고 비교적 고르게 퍼져 있어 전체 생태계 시스템이 동시다발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분석됐다.
하 등급 피해 지역은 시간이 흐르면서 NBR값이 커지며 복구가 진행되는 모습이 확인됐지만, 중·상 등급 피해지가 넓게 퍼져 있어 전체 식생 회복 속도가 다른 피해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느리게 나타났다. 재보험사와 국가 재난 관리 당국이 향후 수년간 계속해서 이 지역을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산청 산불 이후 산사태 위험지역 늘어
위성 영상은 산림과 숲의 소실뿐 아니라 인간 공동체가 입은 내상도 가감 없이 포착한다. 분석팀이 정부 통계지리정보서비스(SGIS)의 100m 해상도 주택 격자 데이터와 위성 피해 구역을 겹쳐서 분석해 봤는데, 지난해 산불의 피해가 숲에만 그치지 않고 삶의 터전까지 심각하게 침범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산불 당시 울산 울주군은 산지를 중심으로 불이 번지면서 주거지 피해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산청군은 군 내 총 1만4537채 중 주거지 40채가 피해 범위에 들어갔다. 특히 경북 의성군부터 영양군에 이르는 광역 피해 지역에서는 가옥과 건물 총 11만7071채 중 4436채가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위성 데이터는 이처럼 현장 조사가 힘든 오지 마을의 피해까지 선제적으로 파악하는 강력한 도구로 활용된다. 특히 2차 재난 예측과 사후 검증에서 빛을 발한다. 나무와 풀이 불에 타서 사라진 경사면은 비가 내리면 흙이 지지력을 잃고 진흙더미로 변한다.
분석팀은 정규탄화지수 차이(dNBR)라는 수치와 지형 경사도를 이용해 영남 산불 이후 피해 지역에 산사태 취약 지역이 발생한 사실을 확인했다. 산불 전후 NBR값의 차이를 알면 산불 피해 강도를 알 수 있다.
울산 지역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 덕분에 위험도가 낮았다. 하지만 산청 지역은 급경사지와 골짜기가 있는 지형 특성으로,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실제 산불이 나고 4개월 뒤인 지난해 7월 793㎜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을 때 이번 분석에서 확인된 취약 지역에서 산사태가 났다.
나무와 풀이 사라진 땅이 큰비가 내리면 어떻게 시한폭탄으로 변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의성과 영덕을 잇는 지역 또한 주거지와 인접한 급경사지를 중심으로 지금도 잠재적 위험이 확인되고 있다. 선제적 예방 관리가 시급한 상황이다.
위성 영상은 산불 피해 이후의 상황을 ‘복구 중’ 혹은 ‘완료’와 같은 단순한 구분을 넘어, 어디에서 회복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어디에 새로운 위험이 등장하는지 구체적인 공간 지식을 제공한다. 이런 데이터는 정책 담당자에게 복구 우선순위 설정과 예산 배분을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근거를 제공한다. 재보험사 관점에서는 복구 이후에도 남은 위험을 반영해 향후 손실 가능성을 더 현실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된다.
참고 자료
나라스페이스 어스페이퍼, https://ep.naraspace.com/
저비용 우주발사체와 소형위성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시간 지켜보는 시대가 왔다. 위성은 이제 국방은 물론 재해와 재난 감시, 손해 사정, 산업 동향 분석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은 우주 경제 시대를 맞아 국내 위성 서비스 기업 나라스페이스와 인공위성 영상 데이터를 국방과 산업, 경제, 사회, 국제 분야 보도에 접목해 분석하는 ‘위성으로 본 세상’과 ‘위성으로 보는 경제’라는 스페이스 저널리즘 시리즈를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