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1호기는 지난 40년 동안 부산시 전체가 약 8년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했습니다. 올해부터 지금 보이는 설비들이 순차적으로 해체됩니다.”
지난 18일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1호기 터빈건물 3층.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현장 관계자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거대한 터빈 3대와 발전기, 복수기, 배관, 펌프가 층층이 들어서 있었다. 터빈은 증기의 힘으로 회전해 발전기를 돌리는 장치, 복수기는 터빈을 거치고 나온 증기를 다시 물로 식히는 장치다. 원자로에서 올라온 증기로 전기를 만들던 이 설비들은 한때 발전소의 심장부였지만, 이제는 해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리 1호기는 국내 첫 상업원전이다. 1977년 최초 임계를 거쳐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했고, 2007년 계속운전 허가를 받은 뒤 2017년 6월 영구정지됐다. 이후 2021년 5월 해체 승인을 신청했고, 규제기관 심사를 거쳐 지난해 6월 최종 해체계획서 승인을 받았다.
다만 해체 승인을 받은 지 9개월 가까이 지났다고 해서 현장이 곧바로 철거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해체 승인 직후 바로 터빈이나 발전기를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해체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 작업이 먼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터빈 건물 안에는 산업 현장에서 쓰이는 가설 발판과 가시설물인 ‘비계’가 세워져 있었고, 배관과 기기 외부 보온재를 철거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권하욱 한수원 공사관리부장은 “고리 1호기가 1970년대에 지어진 만큼, 당시 쓰인 보온재에 석면 성분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어 성분 분석을 거쳐 순차적으로 철거하고 있다”며 “인체에 유해한 물질인 석면을 먼저 제거해야 배관과 기기 철거도 본격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체는 비방사선 구역부터 시작된다. 비방사선 구역은 말 그대로 방사선 관리가 필요 없는 공간으로, 터빈 건물과 일부 야드 지역(발전소 외곽) 설비가 여기에 해당한다. 한수원은 올해 상반기 중 보온재 철거와 작업 준비를 마무리하고, 하반기에는 복수탈염설비실(복수기에서 돌아온 물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설비)과 외곽 일부 탱크·설비 같은 비교적 작은 비방사선 설비부터 해체에 들어갈 계획이다. 연말부터는 터빈과 발전기 해체도 본격화할 예정이다. 해체된 터빈과 발전기는 철강 업체를 통해 재활용된다.
원자로 건물 내부처럼 방사선 관리가 필요한 구역은 지금 당장 뜯어낼 수 없다. 현재 고리 1호기의 사용후핵연료가 저장조에 보관돼 있기 때문이다. 사용후핵연료는 발전에 쓰고 난 뒤에도 열과 방사선이 계속 나와, 별도로 냉각하고 보관해야 하는 핵연료를 말한다. 이 연료를 밖으로 옮기기 전에는 원자로 건물 내부 해체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없다.
한수원은 고리 제3발전소 앞 주차장 부지에 건식저장시설을 지어 2031년 하반기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사용후핵연료를 그쪽으로 옮긴 뒤 방사선 관리구역 해체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방사선 관리구역 해체 단계에 들어가면 원자로 건물 내부 대형 기기인 증기발생기, 원자로냉각재펌프, 가압기 등을 먼저 빼내고, 이후 원자로 내부 구조물과 원자로 압력 용기까지 순차적으로 해체한다. 이 과정에서는 사람 대신 장비를 최대한 투입한다. 증기발생기는 작업자 피폭을 줄이기 위해 원격 제어 방식으로 해체하고, 원자로 내부 구조물은 수중 작업용 전문 장비를 활용해 절단한다. 원자로 압력용기는 로봇 팔에 달린 절단 장비와 와이어 톱을 이용해 절단한다.
이후에는 비방사선 구역의 잔여 구조물과 터빈 건물 지상·지하 구조물 철거, 잔류 방사능 측정, 안정성 검토, 부지 복원 순으로 절차가 이어진다. 한수원 측은 2035년부터 부지 복원 작업에 들어가 2037년 전체 해체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전체 사업 기간은 약 12년이다.
해체 과정에서 나오는 폐기물 처리도 중요한 과제다. 권 부장은 이를 처리하기 위한 별도 지원시설을 구축해 금속 폐기물 제염(방사성 오염물질을 줄이거나 제거하는 작업)과 절단, 포장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오염이 낮은 금속은 제염을 거쳐 폐기물 양을 줄이고, 방사성 폐기물은 관련 기준에 따라 별도로 관리한다.
현장을 둘러보니 고리 1호기 해체가 여러 변수를 안고 있는 작업이라는 점도 드러났다. 실제 터빈 건물 안에는 고리 1·2호기 사이를 나누는 격벽이 세워져 있었지만, 멈춘 고리 1호기 설비 사이로 재가동 준비가 한창인 고리 2호기의 기계음이 계속 들렸다. 두 원전이 그만큼 가까이 맞닿아 있어, 이런 환경에서는 향후 1호기 철거가 본격화할 때 진동과 분진, 비산물질이 2호기 설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에 대해 한수원 측은 “해체 작업은 고리 2호기의 설비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진행된다”며 “격벽 설치와 공정 조정, 별도 안전관리를 병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정지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해체·SF규제사업 PM은 해체 승인 이후 6개월마다 사업자로부터 해체 상황을 보고받고, 현장 점검을 통해 해체계획서와 법령에 맞게 준비가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초 첫 점검에서는 아직 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되기 전이어서 큰 문제는 없었지만, 실제 해체가 본격화하면 지금보다 더 촘촘한 점검이 필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고리 1호기와 같은 원전은 미국에서 여러 차례 해체가 진행된 바 있고, 현지에 직접 방문해 검사 방식과 해체 진행 과정을 확인했다”며 “국내 첫 원전 해체 사례인 만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고 감독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