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채 트이지 않은 아기들이 생후 1년도 되기 전에 이미 ‘속이기’ 행동을 시작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브리스틀대 연구팀이 국제 학술지 ‘인지 발달(Cognitive Development)’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일부 아이들은 생후 8개월부터 기만 행동을 보였고, 생후 10개월 무렵에는 4명 중 1명꼴로 적어도 한 가지 이상 속이기 행동을 보이는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팀은 이번 논문에서 생후 10~47개월 영유아의 기만 행동을 유형별로 정리하고, 부모 설문을 통해 이런 행동을 체계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지 검증했다. 부모 130명이 47개월 이하 자녀의 기만 행동 16가지를 보고했으며, 가장 이른 보고 시점은 생후 8개월이었다. 이후 연구팀은 추가 표본을 활용해 이 설문의 신뢰성을 다시 점검했다.
부모들이 보고한 대표적인 행동은 낯설지 않다. 부모가 “이제 정리하자”고 말했을 때 일부러 못 들은 척하기, 다른 아이에게 주기 싫어 장난감을 숨기기, 초콜릿을 먹고도 안 먹었다고 고개를 젓기, 하지 말라는 행동을 부모 몰래 하기 등이다. 연구팀은 이 가운데 ‘못 들은 척하기’와 ‘숨기기’가 가장 이른 시기에 나타나는 유형이라고 밝혔다. 논문에 따르면 ‘숨기기’는 생후 10개월, ‘못 들은 척하기’는 생후 11개월부터 보고됐다.
기만 행동을 보이는 아이의 비율은 성장할수록 빠르게 늘었다. 연구팀은 생후 16개월이면 25%, 24개월이면 50%, 30개월이면 75%의 아이들이 기만 행동을 보일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속이기 행동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이른 시기부터 단계적으로 발달한다는 뜻이라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또 이미 이런 행동을 보인 아이들은 부모가 체감할 만큼 비교적 자주 기만 행동을 반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 연구를 곧바로 “아기들이 생후 8개월부터 본격적으로 거짓말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번 연구는 아이를 실험실에서 직접 관찰한 것이 아니라 부모 설문을 토대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구팀도 영유아의 이런 행동을 ‘타인의 마음을 정교하게 속이는 행위’라기보다는 들키지 않으려 하거나 불이익을 피하려는 초기 단계의 행동에 가깝다고 했다.
이번 연구는 기존 연구가 주로 2~3세 이후의 ‘거짓말’에 주목했던 것과 달리, 생후 첫해 후반부터 나타나는 초기 단계의 기만 행동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못 들은 척하거나 몰래 무언가를 숨긴다고 해서 이를 곧바로 도덕적 문제로 단정하기보다, 사회적 상호작용과 상황 조절 능력이 자라는 과정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